
기후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 역할을 중요하게 수행해야 할 정부는 그 지혜를 모을 의지는커녕 아예 무지하다. 기후위기라는 지옥행 열차는 운전을 하는 운전자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운전자는 자신이 모는 차량이 멸종을 향해 달리는 지옥행 열차가 아니라 자신을 떠받드는 명품 차량 정도로 오해하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도 그린스완(Green Swan) 개념과 같이 회복과 재생의 경제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와 같이 투자자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핵마피아와 석유마피아에 휘둘리며 재생에너지 목표 비율을 줄이고도, 스스로를 공정과 상식이 있는 합리적인 지도자로 여기고 있다. 전쟁마피아가 원하는 대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무책임한 언행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애초에 모두를 위한 정치가 불가능한 사람이 살얼음판 위에서 ‘대장놀이’를 하는 것쯤으로 보인다. 집권하고 있는 이들이 성찰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 까닭에, 이들은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라고 여기지만, 심각한 비합리적인 토대에 기반하여 ‘집단자살’(지난해 7월 기후회담에서 유엔사무총장은 지금 우리에겐 ‘집단행동’ 또는 ‘집단자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다)을 선택하고 있는 폭주기관차로 보인다. 성장주의라는 낡은 관념과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맹신을 ‘기준’으로 두고 있는 까닭에,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여 살기 위한 정치는 구상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는 이미 직면한 기후위기에 내던져졌다.
2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가스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가스비 인상에 따른 난방비 폭등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2023.01.26 ⓒ민중의소리
폭염, 태풍, 장마, 산불 이어 역대급 한파
역대급 폭염, 역대급 태풍, 역대급 장마, 역대급 산불 등이 이어지다 이번 겨울에는 다시금 역대급 한파가 찾아왔다. 이 한파 역시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의 한 모습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북극에 냉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남하하며 한파는 다시금 찾아왔다. 한파를 이겨내기 위해 가스보일러를 돌리지만, 시민들이 마주한 것은 난방비 폭탄이다. 난방비를 둘러싸고 네탓내탓 공방이 뜨겁지만, 난방비 폭탄 역시, 기후위기 적응을 준비할 생각이 없는 정치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내던져진 기후위기시대의 한 장면이다. 뜨거워지는 지구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전환 노력이 가속화하는 방향에서, 화석연료 중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낮은 LNG가 브릿지 에너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LNG의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상승했다. 여기에 지난해 초 전쟁을 수행하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의 밸브를 잠그며 유럽의 LNG 비상상황이라는 악재가 겹쳐 가격이 급등했다. 난방비는 ‘네탓내탓’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기후위기의 문제이며,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과 같은 미봉책이나 다름없는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세계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그 외 다른 주요 곡창지대도 홍수나 가뭄으로 흉작이 되었다. 이미 수많은 국가에서 극심한 식량위기가 예상되지만, 물가가 오를 뿐 욕망의 식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국가들에서 식량위기는 아직 관심 밖이다. 식량위기는 우리가 마주한 또 하나의 기후위기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국가 중 최하위에 속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여겨야만 한다. 동시에 전염병의 시대 역시 기후위기의 결과이며, 엔데믹의 서막을 알린 코로나19 이후 더욱 극심해진 저출생은 한국사회가 예측보다 더 빠르게 인구절벽을 마주하게 했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 방식과 마찬가지로 약자를 착취하고 억압, 차별하는 것이 일상인 승자독식의 이 사회는 많은 ‘루저’를 주변화하며 승자를 채찍질한다. 인간답게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살률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자기 한 몸을 건사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에서 자녀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존엄한 삶을 살 가능성이 낮게 여겨지는 세상에 자녀가 태어나 생존하도록 요구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저출생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난 서울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던 여성 세 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현장 신림동 반지하 주택 모습. 2022.08.09 ⓒ민중의소리
기후위기, 식량위기, 저출생...시스템 전환만이 해법
성장만능주의라는 낡은 관념을 여전히 판단의 기준으로 위치시키며 과도한 욕망의 시스템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권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비용도 감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지도, 재생에너지에 크게 투자도 하지 않는다. 개인들의 개별적인 실천과 만족감에 머물기에는 너무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류 생존의 문제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기후위기라는 지옥행 열차’에 인류가 올라타 있지만, 개인이나 몇 단체, 몇 국가만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발견하고 있다. 관성적인 무력감, 혹은 관성적인 낙관을 넘어서야 한다. 근현대에 인류가 살아온 방식을 어느 것도 포기하려 하지 않을 때,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길 때 모든 가능성은 끝난다. 이미 과학자들은 보수적인 통계에서조차 비극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하더라도 절멸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 스스로를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의 목적과 방식을 재정립하는 수준의 결정적인 방식의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망가진' 지구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후위기시대의 적응 단계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인권과 다양성의 관점이다. 인류가 지구를 착취한 방식은 인간을 착취하고 주변화한 방식과 동일 닮아있다. 함께 생존을 고민해야 할 기후위기에서 가장 먼저 피해받는 사람들은, 착취를 한 사람이 아니라 착취를 당했던 사람들, 차별받았던 사람들이다. 반지하 참사가 그랬고, 가라앉고 있는 섬나라가 그러하며, 가장 먼저 식량위기에 놓인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이 그렇다. 차별받기 때문에 ‘바이러스’ 그 자체로 여겨지고 혐오가 확산되었던 것이 그랬다. 인간을 향한 착취와 차별, 주변화를 끝내는 것은 지구의 착취를 끝내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시스템의 완전한 전환. 생명돌봄 세상에 우리는 적응해야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치적 조치들을 정부가 취해야 한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가운데 난방비 폭탄은 기후위기시대 정부의 역량을 심판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시대에 필요한 재분배와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정부는 시민들이 심판을 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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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만, 그 역할을 중요하게 수행해야 할 정부는 그 지혜를 모을 의지는커녕 아예 무지하다. 기후위기라는 지옥행 열차는 운전을 하는 운전자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운전자는 자신이 모는 차량이 멸종을 향해 달리는 지옥행 열차가 아니라 자신을 떠받드는 명품 차량 정도로 오해하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도 그린스완(Green Swan) 개념과 같이 회복과 재생의 경제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와 같이 투자자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핵마피아와 석유마피아에 휘둘리며 재생에너지 목표 비율을 줄이고도, 스스로를 공정과 상식이 있는 합리적인 지도자로 여기고 있다. 전쟁마피아가 원하는 대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무책임한 언행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애초에 모두를 위한 정치가 불가능한 사람이 살얼음판 위에서 ‘대장놀이’를 하는 것쯤으로 보인다. 집권하고 있는 이들이 성찰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 까닭에, 이들은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라고 여기지만, 심각한 비합리적인 토대에 기반하여 ‘집단자살’(지난해 7월 기후회담에서 유엔사무총장은 지금 우리에겐 ‘집단행동’ 또는 ‘집단자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다)을 선택하고 있는 폭주기관차로 보인다. 성장주의라는 낡은 관념과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맹신을 ‘기준’으로 두고 있는 까닭에,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여 살기 위한 정치는 구상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는 이미 직면한 기후위기에 내던져졌다.
폭염, 태풍, 장마, 산불 이어 역대급 한파
역대급 폭염, 역대급 태풍, 역대급 장마, 역대급 산불 등이 이어지다 이번 겨울에는 다시금 역대급 한파가 찾아왔다. 이 한파 역시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의 한 모습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북극에 냉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남하하며 한파는 다시금 찾아왔다. 한파를 이겨내기 위해 가스보일러를 돌리지만, 시민들이 마주한 것은 난방비 폭탄이다. 난방비를 둘러싸고 네탓내탓 공방이 뜨겁지만, 난방비 폭탄 역시, 기후위기 적응을 준비할 생각이 없는 정치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내던져진 기후위기시대의 한 장면이다. 뜨거워지는 지구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전환 노력이 가속화하는 방향에서, 화석연료 중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낮은 LNG가 브릿지 에너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LNG의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상승했다. 여기에 지난해 초 전쟁을 수행하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의 밸브를 잠그며 유럽의 LNG 비상상황이라는 악재가 겹쳐 가격이 급등했다. 난방비는 ‘네탓내탓’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기후위기의 문제이며,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과 같은 미봉책이나 다름없는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세계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그 외 다른 주요 곡창지대도 홍수나 가뭄으로 흉작이 되었다. 이미 수많은 국가에서 극심한 식량위기가 예상되지만, 물가가 오를 뿐 욕망의 식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국가들에서 식량위기는 아직 관심 밖이다. 식량위기는 우리가 마주한 또 하나의 기후위기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국가 중 최하위에 속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여겨야만 한다. 동시에 전염병의 시대 역시 기후위기의 결과이며, 엔데믹의 서막을 알린 코로나19 이후 더욱 극심해진 저출생은 한국사회가 예측보다 더 빠르게 인구절벽을 마주하게 했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 방식과 마찬가지로 약자를 착취하고 억압, 차별하는 것이 일상인 승자독식의 이 사회는 많은 ‘루저’를 주변화하며 승자를 채찍질한다. 인간답게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살률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자기 한 몸을 건사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에서 자녀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존엄한 삶을 살 가능성이 낮게 여겨지는 세상에 자녀가 태어나 생존하도록 요구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저출생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저출생...시스템 전환만이 해법
성장만능주의라는 낡은 관념을 여전히 판단의 기준으로 위치시키며 과도한 욕망의 시스템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권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비용도 감수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지도, 재생에너지에 크게 투자도 하지 않는다. 개인들의 개별적인 실천과 만족감에 머물기에는 너무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류 생존의 문제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기후위기라는 지옥행 열차’에 인류가 올라타 있지만, 개인이나 몇 단체, 몇 국가만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발견하고 있다. 관성적인 무력감, 혹은 관성적인 낙관을 넘어서야 한다. 근현대에 인류가 살아온 방식을 어느 것도 포기하려 하지 않을 때,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길 때 모든 가능성은 끝난다. 이미 과학자들은 보수적인 통계에서조차 비극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하더라도 절멸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 스스로를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의 목적과 방식을 재정립하는 수준의 결정적인 방식의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망가진' 지구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후위기시대의 적응 단계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인권과 다양성의 관점이다. 인류가 지구를 착취한 방식은 인간을 착취하고 주변화한 방식과 동일 닮아있다. 함께 생존을 고민해야 할 기후위기에서 가장 먼저 피해받는 사람들은, 착취를 한 사람이 아니라 착취를 당했던 사람들, 차별받았던 사람들이다. 반지하 참사가 그랬고, 가라앉고 있는 섬나라가 그러하며, 가장 먼저 식량위기에 놓인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이 그렇다. 차별받기 때문에 ‘바이러스’ 그 자체로 여겨지고 혐오가 확산되었던 것이 그랬다. 인간을 향한 착취와 차별, 주변화를 끝내는 것은 지구의 착취를 끝내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시스템의 완전한 전환. 생명돌봄 세상에 우리는 적응해야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치적 조치들을 정부가 취해야 한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가운데 난방비 폭탄은 기후위기시대 정부의 역량을 심판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기후위기시대에 필요한 재분배와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정부는 시민들이 심판을 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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