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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다양성훈련저는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래요. - "I would prefer not to be."


저는 대학생 때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를 처음 읽었습니다.어떤 역자의 판본을 읽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인공인 바틀비가 반복하여 발화했던 문장의 원문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 보았던 기억은 떠오릅니다.


"I would prefer not to be."*


저는 이 문장을 처음 알게 된 이후 지금도 종종 떠올려 보곤 해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느끼기에) 불필요하거나 그것이 폭력, 억압, 위계, 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느낄 때.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낫겠어요. 혹은 더 명료하게,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문장으로 돌려 스스로 해석해 보다가 결국은 '저는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래요.'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역에 있는 '일반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직접 요구하거나, '분위기' 또는 '관습'에 따라 해야만 하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어요. 그 선택의 가장 큰 예라면 바로 공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를 포기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해야 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은 사실에 가깝지만요. 수학과 영어가 어렵고, 사회탐구 영역은 도무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리"를 익히고, 그대로 "외워야만 한다"고 강요 받았던 모든 내용들이 '나의 삶'에 불필요하게 느껴졌지요. 그런 중에도, 저는 기형도, 허수경, 최승자의 시집과 전경린, 신경숙, 오정희, 박완서의 소설을 읽었어요. 헬무트 호르눙의 "블랙홀과 우주"를 읽었고, 뉴턴지를 읽었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었지요. 그건 제가 궁금하다고 느끼고, 알고 싶어지는 '지식'들이었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것들이었어요. 저는 그때도, 지금도 그것을 확신합니다.


학교에서 진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경쟁의 구도와 자본주의의 폐단을 '학습'하고 '체화'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표일리 없는데, 왜 '학교'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국가에서는 청소년들이 그것을 학습하도록 방치해두고 있는 것일까요? 왜 청소년들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까요? 왜 그것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 어려워졌을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늘 '다양성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교차하는 정체성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배우고 싶고,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가 조금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 학교와 학교의 공동체가 바라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 생기는 간극을 좁히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이 서로를 이해하고 모두가 포함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우리'는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것을 서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직면한 '우리의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혹은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

* "다양성훈련"을 더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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