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수리(자료사진) ⓒpixabay
자기계발 강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40년을 산 늙은 독수리는 자신의 낡은 부리를 바위에 부딪혀 부러뜨리고, 발톱과 깃털을 스스로 뽑아내며 150일의 고통을 견딘 뒤 새로운 삶을 얻어 30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다. 멋진 독수리의 사진과 웅장한 음악이 곁들여지면 ‘나도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끓어오른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독수리는 부리가 없으면 곧 죽는다. 150일은커녕 며칠도 버티기 어렵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서 감동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고통 속에서도 버티고, 극복하고, 돌파하라는 메시지, 죽음의 문턱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한다는 요구다. 여기서 실패의 원인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다. 변화하지 못한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비슷한 이야기는 반복된다. 투명한 유리벽에 여러 번 부딪힌 물살이는 결국 유리벽이 제거된 후 먹이가 눈앞에 있어도 도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작은 나무에 묶여 있던 코끼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탈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이 두 이야기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도전하지 않은 개인, 극복하지 못한 개인, 머물러 있는 개인을 지적하며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너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구조, 정상성에 의한 차별, 권력의 격차, 정치경제적 조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구조가 사라진 자리에는 언제나 개인만 남는다.
이 서사들은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대표적인 것이 ‘매기 이야기’다. 한 수조 안에 포식자를 넣으면 다른 물살이들이 긴장하여 도망다니느라 더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실제로는 포식자는 스트레스와 소진을 증가시키고, 많은 개체를 탈락시킨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이 있어야 성장한다.”고 익숙하게 말한다. 이 문장은 익숙하지만 위험하다. 경쟁은 일부를 살아남게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을 탈락시킨다. 그리고 그 탈락은 언제나 개인의 실패로 번역된다.
한국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도 경쟁이 가장 극심한 사회 중 하나다. 10대, 20대, 30대, 4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그 배경에는 과로와 경쟁, 그리고 고립이 지목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을 당연한 것, 마땅한 것, 어쩔 수 없는 것, 심지어 좋은 것으로까지 받아들인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말로 인간은 위협과 경쟁 속에서 더 잘 성장하는 존재일까?
연구는 오히려 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안전한 환경, 신뢰 관계, 돌봄의 조건 속에서 인간은 더 잘 배우고, 더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더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인간은 경쟁적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존재다.
자기계발 서사는 이 사실을 지우고 대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의지로 환원한다. “왜 더 노력하지 않았는가”, “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한다. 이 질문들은 공정해 보이지만, 하나의 전제를 숨기고 있다. 모두에게 동일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는 전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 놓여 있고, 누군가는 같은 선택을 했을 때 훨씬 더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선택지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업에 성공한 이야기, 직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야기, 몸을 바꾸고 삶을 바꾼 이야기 등 불굴의 정신과 강한 의지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묻게 된다.
‘왜 나는 못할까?’라는 질문은 성공 스토리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성별, 장애, 건강, 가정환경, 자산, 네트워크, 지식, 기술, 노하우, 시대적 배경, 운과 기회 등)에 대한 생각해 볼 기회를 가린다. 또한 같은 도전을 했지만 같은 결과를 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가장 교묘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코이의 법칙’이다. 작은 어항에서는 작게 자라고, 큰 강에서는 크게 자란다는 물살이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당신의 작은 어항을 떠나라.”는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결국 이 말은 “네가 작은 이유는, 작은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코이가 작게 자라는 이유는 그의 생각이 아니라, 조건 때문이다. 우리는 코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작은 어항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큰 강에 접근할 수 없는가? 구조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이것이 자기계발 신화의 핵심 구조다.

사무실과 일자리(자료사진) ⓒpixabay
AI와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시대다. 많은 기업들이 대규모 인력 감축을 예고하고 있고, 인간의 노동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지금 가장 많이 들리는 질문은 “AI 시대에도 끝까지 남는 직종은 무엇인가? 어떤 기술을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인간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배워왔다. 이제는 AI와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고 한다.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묻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우리는 계속 살아남아야만 하는 구조 속에 있는가?”이다. 살아남는 것을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삶을 살 순 없을까?
인터넷에는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에 남겼다고 알려진 글이 떠돈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 사용하는 언어,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와 같은 내용이다. 이 글이 실제 그의 글이라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공감하며 공유한다. 나는 그 내용이 우리가 잊고 있는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통해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도생의 세계에 갇혀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혹은 나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나도 살기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 각자 견디고 각자 노력하는 “선택”을 하게 강요받는다.
우리는 이제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각자가 벽을 부수며 살아가는 사회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벽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우리 이제 이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자. 일부만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누구도 탈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 경쟁이 아니라 돌봄이 작동하는 사회,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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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자료사진) ⓒpixabay
자기계발 강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40년을 산 늙은 독수리는 자신의 낡은 부리를 바위에 부딪혀 부러뜨리고, 발톱과 깃털을 스스로 뽑아내며 150일의 고통을 견딘 뒤 새로운 삶을 얻어 30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다. 멋진 독수리의 사진과 웅장한 음악이 곁들여지면 ‘나도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끓어오른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독수리는 부리가 없으면 곧 죽는다. 150일은커녕 며칠도 버티기 어렵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서 감동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고통 속에서도 버티고, 극복하고, 돌파하라는 메시지, 죽음의 문턱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한다는 요구다. 여기서 실패의 원인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다. 변화하지 못한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비슷한 이야기는 반복된다. 투명한 유리벽에 여러 번 부딪힌 물살이는 결국 유리벽이 제거된 후 먹이가 눈앞에 있어도 도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작은 나무에 묶여 있던 코끼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탈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이 두 이야기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도전하지 않은 개인, 극복하지 못한 개인, 머물러 있는 개인을 지적하며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너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구조, 정상성에 의한 차별, 권력의 격차, 정치경제적 조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구조가 사라진 자리에는 언제나 개인만 남는다.
이 서사들은 경쟁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대표적인 것이 ‘매기 이야기’다. 한 수조 안에 포식자를 넣으면 다른 물살이들이 긴장하여 도망다니느라 더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실제로는 포식자는 스트레스와 소진을 증가시키고, 많은 개체를 탈락시킨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이 있어야 성장한다.”고 익숙하게 말한다. 이 문장은 익숙하지만 위험하다. 경쟁은 일부를 살아남게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을 탈락시킨다. 그리고 그 탈락은 언제나 개인의 실패로 번역된다.
한국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도 경쟁이 가장 극심한 사회 중 하나다. 10대, 20대, 30대, 4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그 배경에는 과로와 경쟁, 그리고 고립이 지목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을 당연한 것, 마땅한 것, 어쩔 수 없는 것, 심지어 좋은 것으로까지 받아들인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말로 인간은 위협과 경쟁 속에서 더 잘 성장하는 존재일까?
연구는 오히려 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안전한 환경, 신뢰 관계, 돌봄의 조건 속에서 인간은 더 잘 배우고, 더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더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인간은 경쟁적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존재다.
자기계발 서사는 이 사실을 지우고 대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의지로 환원한다. “왜 더 노력하지 않았는가”, “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한다. 이 질문들은 공정해 보이지만, 하나의 전제를 숨기고 있다. 모두에게 동일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는 전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 놓여 있고, 누군가는 같은 선택을 했을 때 훨씬 더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선택지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업에 성공한 이야기, 직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야기, 몸을 바꾸고 삶을 바꾼 이야기 등 불굴의 정신과 강한 의지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묻게 된다.
‘왜 나는 못할까?’라는 질문은 성공 스토리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성별, 장애, 건강, 가정환경, 자산, 네트워크, 지식, 기술, 노하우, 시대적 배경, 운과 기회 등)에 대한 생각해 볼 기회를 가린다. 또한 같은 도전을 했지만 같은 결과를 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가장 교묘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코이의 법칙’이다. 작은 어항에서는 작게 자라고, 큰 강에서는 크게 자란다는 물살이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당신의 작은 어항을 떠나라.”는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결국 이 말은 “네가 작은 이유는, 작은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코이가 작게 자라는 이유는 그의 생각이 아니라, 조건 때문이다. 우리는 코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작은 어항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큰 강에 접근할 수 없는가? 구조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이것이 자기계발 신화의 핵심 구조다.
사무실과 일자리(자료사진) ⓒpixabay
AI와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시대다. 많은 기업들이 대규모 인력 감축을 예고하고 있고, 인간의 노동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지금 가장 많이 들리는 질문은 “AI 시대에도 끝까지 남는 직종은 무엇인가? 어떤 기술을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인간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배워왔다. 이제는 AI와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고 한다.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묻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우리는 계속 살아남아야만 하는 구조 속에 있는가?”이다. 살아남는 것을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삶을 살 순 없을까?
인터넷에는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에 남겼다고 알려진 글이 떠돈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 사용하는 언어,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와 같은 내용이다. 이 글이 실제 그의 글이라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공감하며 공유한다. 나는 그 내용이 우리가 잊고 있는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통해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도생의 세계에 갇혀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혹은 나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나도 살기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 각자 견디고 각자 노력하는 “선택”을 하게 강요받는다.
우리는 이제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각자가 벽을 부수며 살아가는 사회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벽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우리 이제 이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자. 일부만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누구도 탈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 경쟁이 아니라 돌봄이 작동하는 사회,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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