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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김지학의 세상다양] 능력주의 사회가 만든 죽음의 국가 -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의 책임을 묻는다


대한민국은 22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평균 40명의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숫자는 개인의 비극이 우연히 반복된 결과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특정한 방식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탈락시켜 온 결과다. 자살률 1위 국가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실패한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실패를 방치해 온 사회의 기록지다.

정상성의 기준이 인간을 죽인다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인간을 구분한다. 시험과 성적, 학벌과 학력, 취업과 소득, 결혼 여부, 생산성과 효율성, 이 기준들은 중립적인 평가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폭력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정상성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으로 규정되고, 그렇게 낙인찍힌 사람은 그 ‘구조적 폭력’을 온전히 자신의 실패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정상성’이란 모두를 포함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배제를 위함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하도록 설계된 기준이다. 이 사회에서 탈락은 일시적인 경험이 아니라 존재의 결함으로 낙인찍히는 사건이 된다. 한국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사회다. 한 번 밀려나면 안전망 없이 추락한다. 정상성은 차별을 낳고, 차별은 배제를 낳으며, 배제는 고립을 만든다. 그리고 고립은 자살로 이어진다. 자살 문제를 개인의 정신력이나 취약성으로만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이 구조적 폭력을 보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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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국화 한 송이 ⓒpixabay


‘시험사회–능력주의–자살’이 혐오와 폭력으로 연결된다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는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시험사회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의 결과다. 이 사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점수와 스펙, 성과로 끊임없이 서열화한다. 능력주의는 이를 ‘공정한 경쟁’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탈락자를 대량 생산하고 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체계다. 이 구조에서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낙인이 된다.


시험은 인간을 가르고, 능력주의는 탈락을 정당화하며, 사회는 고립을 방치하고, 그 끝에 자살이 놓인다. ‘시험사회 → 능력주의 → 낙인과 탈락 → 고립 → 자살’이라는 도식은 명확하다. 이 구조는 자살에서 멈추지 않는다. 탈락의 공포와 불안이 누적될수록 사회는 더 쉽게 혐오와 폭력의 언어로 기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사회 구조 속에서 분석하지 못하고 타인의 탓(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탓)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 이것이 능력주의의 정치적 기능이다. 극우적 목소리와 혐오 표현, 약자에 대한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서로를 밟고 위로 올라가도록 설계된 경쟁 사회의 부산물이다. 이 사회에서 자살과 혐오는 같은 뿌리를 갖는다. 능력주의는 실패한 사람에게는 죽음을,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타인을 얕보고 배제할 이유를 제공하는 체제다.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 이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자살은 자발적 선택이나 온전한 선택이 아니다. 이는 권력과 자원의 분배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누가 버틸 수 있고, 누가 무너지는지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조건을 제공하는지에 달려 있다.


시험 성적으로만 평가받아야 하는 청소년과 청년, 위험한 노동에 내몰리는 비정규직·하청·플랫폼 노동자, 성차별과 성폭력에 두려워해야 하는 여성, 평가절하된 돌봄노동을 강요당하는 여성, 시민권을 제한받는 장애인과 성소수자, 가난과 고독 속에 방치된 노인들, 이들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의 안전, 함께 사는 사회를 중심 가치로 두지 않은 국가가 만들어낸 사회의 결과다.


국가는 경쟁을 완화하지 않았고, 탈락 이후의 삶을 설계하지 않았으며, 고립을 끊는 돌봄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을 강화하고 탈락, 고립,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게 하고 있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는 국가는 사실상 자살을 방치하는 국가다. 혹자는 “자살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너무 감정적이며 선동적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국가의 정치적 책임을 정확히 가리키는 이름이다.


자살률을 줄인 나라들은 무엇을 했는가


자살률을 유의미하게 낮춘 나라들은 분명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살을 국가 차원의 구조 문제로 인식했고, 막대한 공공 예산을 투입했다는 점이다. 핀란드는 자살 사망 사례를 정밀 분석해 1차 의료와 지역사회 개입으로 연결했고, 일본은 모든 지자체에 지역 기반 자살 예방 계획을 의무화하며 중앙정부가 재정으로 책임졌다. 영국 역시 20년 넘게 국가 자살예방 전략을 유지하며 보건·교육·노동 정책을 결합해왔다.


우리는 이미 자살의 원인(경쟁, 교육, 노동, 빈곤, 차별, 혐오, 고독 등)을 알고 있다. 자살의 원인을 하나하나 줄여가는 것이 자살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다. 문제는 우리가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 왔다는 데 있다. 해외 사례들은 자살은 줄일 수 있으며, 국가가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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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모습. 2025.2.24 ⓒ뉴스1

예방이 아니라 전환이다 : 포함국가·돌봄국가로

자살 문제는 상담전화나 캠페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사회 구조의 전환이다. 성과와 이윤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과 돌봄을 중심에 둔 국가로 이동해야 한다.

포함국가·돌봄국가는 인간을 구분하지 않는 사회다. 모든 사람의 다양성과 존엄을 인정하고, 재분배의 책임을 감당하며,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만들고, 모두의 의사결정권과 사회참여를 보장하는 국가다. 교육부터 정책과 예산까지, 국가의 존재 이유를 포함과 돌봄에 두어야 한다.

자살을 줄이겠다는 말은 곧 이 사회를 덜 잔인하게, 더 친절하게 만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어야 한다. 자살 1위 대한민국은 배제와 방치의 결과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탈락이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길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국가는 더 이상 중립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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