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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김지학의 세상다양]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진심인 일본, 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개최할 때부터 도쿄를 무장애(Barriere Free) 도시로 만들고자 계획했다. 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며 전 세계의 선수단과 관광객을 초청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를 환대할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1973년부터 건설부(현재의 국토교통부)의 주도로 공공 건물을 무장애건물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1975년에는 ‘신체 장애인의 사용을 고려한 디자인(Design Materials Considering Use by Persons with Physical Disabilities)’이라는 자료를 발간했다. 자료는 휠체어 이용인을 고려한 공공 화장실의 레이아웃(공간 배치)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쿄나 오사카처럼 큰 도시에선 70~80년대에 지은 오래된 건물에도 장애인 화장실과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976년 유엔(UN) 총회는 1981년을 국제 장애인의 해(IYPD, the International Year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로 선포하며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일본은 유엔의 IYPD 선포 이후 1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하며 1993년에 장애인 기본법(the Basic Act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을 제정한다. 일본은 국가의 인구 변화의 양상을 살폈고 저출생과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의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 정책일 뿐만 아니라 노인 정책이었다. 무장애(배리어프리)가 특정한 사람들(장애인들)만을 위한 정책이자 실천으로 여겨져 ‘내가 내는 세금으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나를 위한 것’으로 느껴지게 실행됐다. 지금 당장은 일시적으로 비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되고 노인이 되면 누구나 질병과 장애를 갖게 된다는 연유에서다.


도쿄 화장실(TTT,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중 에비수 공원에 설치된 화장실 ⓒ도쿄 화장실(TTT,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홈페이지


2020년 도쿄는 다시 한번 올림픽을 개최하며 도시의 무장애성을 한 번 더 점검했다고 한다.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며 도쿄 화장실(TTT, The Tokyo Toilet)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했다. 시부야구에 17개의 공공화장실을 추가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안도 타다오(Tadao Ando)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에게 디자인과 건축을 맡겼다. 심미적으로도 아름다우며 어떤 유형의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용 가능한 공공화장실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본의 무장애(배리어프리) 정책은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도 누군가에게는 장애물(Barriere, 배리어)이다’라고 판단한다. 성별 구분은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에게만 불편한 것은 아니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 자신과 성별이 다른 사람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자녀(어린이)와 자신의 성별이 다른 양육자, 자신과 성별이 다른 자신의 부모(노인)를 돌봐야 하는 성인 자녀, 장애인과 장애인의 활동지원사의 성별이 다른 경우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성별로(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어 있는 장애인 화장실과 가족 화장실이 여전히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지정성별이 여성인 어린이와 지정성별이 다른 양육자와 함께 가족화장실에 간다면 우리는 가족화장실(여성)로 가야 할까, 아니면 가족화장실(남성)로 가야 할까? 내가 만약 휠체어를 이용하는 어머니와 장애인화장실을 간다면, 장애인화장실(여성)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장애인화장실(남성)으로 가야 할까?

2025년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 세 명(두 명은 도쿄 거주, 한 명은 오사카 거주)에게 오사카 엑스포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보았는지 물어봤다. 세 명 모두 도쿄나 오사카 같이 큰 도시에는 공공기관이나 큰 건물에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갖추는 것이 디폴트(기본값)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주변에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은 온라인 기사들을 보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문제는 화장실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돈(세금)으로 엑스포 행사장을 만들고 행사 종료 후에는 카지노로 바꾸려 한다는 계획에 분노와 우려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KBS와 JTBC 등의 언론사들이 오사카 엑스포가 흥행에 참패를 했다고 보도하며(일주일만에 60만명이 방문했다는 말과 전시관에 들어가는데 한 시간씩 대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함께 말하고 있어 모순된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엉터리 분석이라 기가 막힌다. 첫째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성중립 화장실’이라고 표현)이 문제인 것처럼 보도했다. 둘째로 ‘줄 서기 시스템이 문제라고 보도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나 성중립 화장실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를 “흥행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심각한 비약이다. 줄서기 시스템은 사람들을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게 하고 한 전시관 당 그 안에 인원수를 조절해서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자 고안한 시스템일 것이다. 줄 서기를 안 하고 인원수 조절을 하지 않아서 전시관 내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게 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는 휠체어 이용인이 들어가서 이동할 수 없다. 지팡이나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도, 유아차와 함께 해야 하는 사람도 이동하기 불편하고 위험하다. 성추행이나 소매치기와 같은 범죄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오사카 엑스포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 디자인도 산뜻하다. ⓒarchexist 인스타그램


오사카 엑스포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통해 ‘우리 엑스포는 누구나 올 수 있는 엑스포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신체 사이즈와 상관없이, 성별이 다른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두 명이나 세 명이 화장실을 함께 써야 되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가 올 수 있는 행사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환대와 환영 그리고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국가별 전시관, 아름다운 건축물과 자연환경 등 엑스포는 엑스포에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그것들을 우리 중 일부의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실천이다.

공간은 의식을 지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은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보고 경험하는 공공화장실이 비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고 성별이분법에 딱 맞는 시스남성이나 시스젠더 여성만 사용할 수 있고 적당한 신체 사이즈를 가지고 있는 성인들만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공적인 공간은 비장애인 시스젠더 성인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의 삶이 나의 삶과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것이 선거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담한 일이다. 우리 모두는 삶의 어떤 시기에 목발을 사용할 수도 있고 휠체어나 스쿠터를 사용할 수도 있다. 보청기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고 요루/장루 주머니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치매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 몸의 상태와 상관없이 어디든 이동하고 어딜 가서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싶다.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이동이 불가능해진다면 나는 집에 갇혀 살아야 하거나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한다. 이동 문제와 화장실 문제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 정책과 노인정책이 같이 가면 시민들을 충분히 설득해 가며 무장애 화장실, 무장애 건물, 무장애 도시, 무장애 국가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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