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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김지학의 세상다양] 극우와 공존할 수 있는가?

2017년 1월 21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사모의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가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민중의소리



내 SNS 타임라인에는 “극우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논의가 오가고 있다. “극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리고 “공존”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따라 나의 답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나는 10년 전 한국다양성연구소를 만들고 인권활동가로, 사회운동가로 살면서 “극우”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토론회나 집회에서 ‘빨갱이’, ‘변태’, ‘죽어라’, ‘지옥에 가라’ 등의 언어폭력과 ‘밀침’이나 ‘피켓으로 때리기’ 등의 육체적 폭력을 경험하기도 하고 온라인에서는 나에 대한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가족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SNS에서 사진을 내린 경험도 있다. 나는 내 주변 가까이 그런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권활동가, 인권교육활동가로 살면서 내 생각이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바람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극우와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뤄보려 한다.

우선 공동체와 사회를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공동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공동체로 나뉠 수 있다. 먼저, 선택할 수 없는 공동체 중에서 한 사람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동체는 가정(또는 주 양육자들과 이루게 되는 공동체)일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종교집단이 있다. 특히 어린이일 때 자신의 선택권이 없이 주 양육자들에 의해 종교집단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점차 자신이 원하는 공동체를 직접 찾아가거나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 가족도 나에게 주어진 가족이 아닌 내가 직접 선택한 가족을 만들 수 있고 취미나 관심사 등으로 만나고 모이게 되는 공동체도 내가 직접 선택하게 된다. 내가 선택하는 공동체에서는 나의 안전과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을 논의하며 만들어 갈 수 있다. 서로의 안전을 챙기고 서로를 돌보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찾아가거나 만들어 가는 것이 자신의 삶을 평화롭고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속한 작은 공동체(가족, 교실, 부서 등)들에선 나와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고 보장하는 것(혹은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회는 불가능하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극우(혹은 극우적인 사람들)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평등, 평화, 인권, 다양성,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사회 속에 공존할 수밖에 없다. 공존하기 싫다고 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그 수와 세력을 줄일 수는 있다.

이 과정에는 사회적인 방법과 개인적인 차원의 방법이 있다. 먼저 사회적인 방법은 사회가 발전해 감에 따라 차별, 억압, 폭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뒤처졌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의 의미는 부의 성장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해지는 평등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이유이고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이자 진보다. 그렇게 차별, 억압, 폭력을 옹호하는 세력은 퇴보하고 축소돼야 한다. 지금은 그 수가 너무 많고 세력도 너무 강하다. 그렇게 되려면 공교육과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의 방법으로는, 한국다양성연구소가 다양성훈련을 하면 참여자들과 함께 연습하는 대화 방법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클라라(CLARA)라는 대화법이다.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과도 관계를 해치지 않고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먼저 침착해야 한다(Calm). 화를 내거나 흥분하면 관계에도 좋지 않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다음은 경청이다(Listen). 상대방이 하는 말에 반박을 하기 위해서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왜 그런 말을 하는지(생각이나 신념의 뿌리를) 알 수 있도록 경청한다. 다음은 상대방을 인정한다(Affirm).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동의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이 단계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있더라고요’, ‘그런 말 저도 들어봤어요’가 있다. 그렇게 한 후에 상대방에 언급한 주제에 대한 반응을 한다(respond). 이때 상대방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전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접속사(그러나, 그런데, 하지만)을 쓰지 않고 “그리고”를 쓰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로 말을 이어가며 새로운 정보를 추가한다(add information). 전체 과정을 이어서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저도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읽었던 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오더라고요’와 같이 진행된다.

이 대화법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가 있다. 첫 번째 자세는 사람과 문제(차별적인 발언)를 분리하는 것이다. 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람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문제적인 존재와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도 않다. 그 사람에게 쉽게 화가 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좋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두 번째 자세는 그저 다른 정보를 제시해 주는 것이라는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너는 틀렸고 내가 맞아. 너는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해’와 같은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이 한마디 말로 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목표도 내려놓는 게 좋다. 나는 그저 이 사람에게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뿐이다. 이 사람은 이런 기회들이 쌓여서 언젠가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작은 바람 정도만 가지는 것이 좋다.

이 대화법을 연습하다 보면, 간혹 ‘왜 약자들만 노력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올 때가 있다.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쉽게 막 하는데, 우리만 신중하고 정중하게 대응해야 하냐?’와 같은 반응도 있다. 우리가 이러한 대화법을 익혀가며 대화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적대적으로 논쟁을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도 높고 사회변화를 위해서도 더 효과적인 대화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나오미 울프가 한 말인 “우리의 싸움의 방식은 우리가 만들려는 세상을 닮아야 한다”는 말을 믿는다. 상대방이 저속하고 저열하다고 해서 내가 똑같이 반응하면 나는 어떠한 변화도 만들 수 없다.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우리의 싸움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어야 한다. 그럴 때 더 효과적이다.

클라라 대화법은 아주 많은 경우 상당히 효과적이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효과적이고 수업 시간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학생에게 대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매우 효과적인 대화법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항상 클라라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관계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의 어떤 발언은 즉각 멈춰져야 하는 발언도 있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인 사람도 있다.



서로의 존재와 생각을 인정하는, 혐오와 차별이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pixabay



사회적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당사자(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들이 자기 자신이 가진 정체성에 대해서 비하적인 표현, 공격적인 표현,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침착하게 클라라를 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좋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알려줄 순 없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는 ‘지지자 가시화 운동’이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사회에 많이 드러내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며 사회 변화에 핵심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그 일을 당연한 임무처럼 맡겨놓을 수는 없다. 한 흑인 남성이 KKK단원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적인 생각들을 바꾼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 사례로 인해 ‘극우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여러 논의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사례가 매우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용기를 내야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성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내기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 폭력, 배제를 끝내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클라라와 같은 대화법을 사용하며 대화하고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부터 조금씩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본다면 일상의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또한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제정부터 시작해서 교육, 노동, 정치 제도의 변화까지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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