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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 OX 퀴즈쇼!)

“친구 OX퀴즈쇼”를 아시나요?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제가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제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어린이들과 “친구 OX퀴즈쇼”를 했습니다. 퀴즈라면 모름지기 정답이 있기 마련이지만, 친구 OX퀴즈에는 정답이 없어요. (어떤 문제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령 퀴즈 질문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O, X를 들어보세요. 가능하다면 친구와 함께 해도 좋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내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에게 내 비밀을 다 말해줄 수 있다.”

“친구들끼리 손 잡기, 어깨동무 등의 ‘가벼운’ 스킨십은 해도 괜찮다.”

“빅스비, 시리, 챗GPT와 같은 AI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성별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언어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비인간 동물/식물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절친이 되면 소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는 퀴즈쇼의 큰제목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아마 잘 모르겠다고, 혹은 아니라고 답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나에게 친구에 대한 기준이 있는지, 있다면 왜 그런 기준이 생겼는지, 그리고 “친구” 하면 떠오르는 것들과 어떻게 지내며 우정을 돌보거나 내버려두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저는 제 절친한 친구와 이 퀴즈쇼를 만들고 진행했는데요. 준비하는 동안 서로가 가지고 있는 친구/우정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질문에도 통일된 답변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저와 제 친구는 성별과 성적지향, 나이, 사는 곳 등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 심지어 친구/우정에 대한 기준이 다름에도 우리가 친구가 되었던, 또는 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친구로 함께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같음’의 겹침이 많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기 보다는, 온갖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기 위해 한 노력이 우리를 친구로 만든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친구”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거예요.)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 생각나네요.

안부 묻기, 퀴어퍼레이드 함께 가기, 좋아하는 걸 소개하고 소개받기, 이유 없이(있었겠지만) 함께 울기,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영화 보기(요즘?은 ‘왓챠파티’와 같은 좋은 기능이 있더군요...), 한겨울마다 먹는 버섯칼국수, 3인용 모바일 게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 한 친구와 다음해, 혹은 다음달에도 꼭 같은 것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고, 저는 그런 것에 어쩔 수 없이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 때 찾아 읽는 문장들이 있어요. 한창 우정을 탐구하던 시절(친구에게 서운함을 max로 느낄 때) 발견한 문장들 입니다.


“사귐은 비밀번호를 나누어 확인하고, 이심으로 전심하며, 특정한 문법과 어휘들을 나누어 쓰고, 관념의 제도와 코드를 다시 잇는 재미로 깨가 쏟아지는, 일종의 정신적 가족주의가 아니다. (…) 동무의 한 축은 말 그대로, ‘같은 것’이 ‘없는’ 관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임계와 경계와 한계를 걷는 삶과 더불어 위험한, 서늘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_김영민, 「친구/동무, 섭동의 전후론」, 『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최측의농간, 2018), 219~220p.


“비우정의 우정이란 너와 나의 ‘같음’이라는 유사성과 동일성에 기반을 둔 우정이 아니다. 오히려 너와 나의 ‘다름’이라는 불화와 불일치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너와 나의 ‘특별함’ 또는 ‘유일무이함’이라는 환상이 들어설 자리를 너와 나라는 ‘아무나’의 우연한 마주침으로 채운다. 너와 내가 결코 같지 않고 앞으로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너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혹은 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처럼 영원히 반복될 너라는 대상을 향한 나의 오해와 오독에는 일종의 충실성이 있다.”
_이연숙, 「비우정의 우정」, 『한편 12호 : 우정』(민음사, 2023), 39p.


'불화와 불일치를 기반으로' 하는 관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반복해 확인하다 이러한 우정론을 들여다 보고 나면, 마음이 한결 서늘해지고 차분해집니다. 이것이 요즘 제가 하는 노력일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친구와 친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나요? 또는 하지 않고 계시나요?

우정의 기초가 되는 것이 ‘다름’이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저는 이미 여러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없었을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그린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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