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업 준비를 위해, 조 브레이너드의 『나는 기억한다』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책은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 뒤에 짧고 긴 기억의 조각(혹은 단서)을 붙여 만든 문장이 반복되는 자전문학입니다. 이 문장들은 소설의 시작 같기도 하고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하고, 일기나 편지의 일부 같기도 합니다.

예컨대, 『나는 기억한다』의 문장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기억한다, 메릴린 먼로가 죽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보스턴 미술관 앞에 놓인 단지들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모으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선물을 열어 보고 난 뒤의 크리스마스 하루가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그리고 최근에 다시 읽은 『나는 기억한다』에서 저를 웃게 했던 한 문장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기억한다, “퀴어들은 휘파람을 못 불지”라는 말을.”
저는 이 문장을 보고 정말로 “하!”하고 웃었어요. 이토록 터무니없이 “차별적인 농담”은 처음이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퀴어들은 휘파람을 못 불지” 소리 내어 말해도 참 웃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퀴어이며, 휘파람을 못 불기 때문입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문장의 나열이지요.)
그러나 조 브레이너드가 쓴 인용한 이 말이 “유행”처럼 떠돌던 시기(개인적인 발화가 아니었다면)에는 아웃팅, 또는 그에 더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걱정하며 휘파람을 연습하거나 휘파람을 불 줄 안다고 말했던(말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해 봅니다. 여전히 “00들은(000한 사람들은) ~해” 같은 얼토당토않은 편견, 차별과 억압들이 만연하며 '소수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숨기거나 다른 ‘나’로 가장하는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위의 문장을 포함하여, 조 브레이너드는 남성 퀴어 당사자로서 경험한 섹슈얼리티에 대해 아주 다양하게 발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지면을 빌어 몇 가지 “나는 기억한다”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나는 기억한다, “요즘 드라마에 왜 이렇게 동성애자가 많이 나와?”라는 친구의 말을. 그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던 때를.
나는 기억한다, 처음으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던 날을.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첫 번째 표현을 찾았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를. 그곳이 서울의 신촌공원과 닮은 역사를 가졌음을 알게 됐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내 몸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목욕탕에 가지 않겠다고 떼 썼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여기 여자 화장실이에요”라고 말하는 놀란 목소리를. 이후로 일부러 화장실에서 헛기침을 하거나 통화하는 척을 했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던 날의 날씨와 그날의 풍경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친구들의 환대를.
저의 기억 중에 여러분도 경험해 본 기억이 있나요? 혹은 전혀 상상해 보지 못한 경험의 조각도 있나요? 여러분에게는 나의 소수자성(또는 특권)과 관련한 어떤 기억들이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기억한다, "조심히 들어가고 도착하면 연락해"하고 서로가 탄 택시의 번호판을 찍어주던 순간을." 혹은 "나는 기억한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를 외쳤던 날들을." 같은 문장도 떠오릅니다)
저는 저의 소수자 정체성을 떠올릴 때 화나는 것, 답답한 것, 억울한 것, 슬픈 것과 함께 반갑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저의 삶과 함께해 온 멀고 가까운 과거의 기억 나눔이 여러분에게도 억압의 경험에서 비롯된 분노, 슬픔, 새로운 활동의 동력, 자긍심과 용기의 기억을 톺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얼마 전 수업 준비를 위해, 조 브레이너드의 『나는 기억한다』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책은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 뒤에 짧고 긴 기억의 조각(혹은 단서)을 붙여 만든 문장이 반복되는 자전문학입니다. 이 문장들은 소설의 시작 같기도 하고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하고, 일기나 편지의 일부 같기도 합니다.
예컨대, 『나는 기억한다』의 문장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기억한다, 메릴린 먼로가 죽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보스턴 미술관 앞에 놓인 단지들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모으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선물을 열어 보고 난 뒤의 크리스마스 하루가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그리고 최근에 다시 읽은 『나는 기억한다』에서 저를 웃게 했던 한 문장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기억한다, “퀴어들은 휘파람을 못 불지”라는 말을.”
저는 이 문장을 보고 정말로 “하!”하고 웃었어요. 이토록 터무니없이 “차별적인 농담”은 처음이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퀴어들은 휘파람을 못 불지” 소리 내어 말해도 참 웃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퀴어이며, 휘파람을 못 불기 때문입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문장의 나열이지요.)
그러나 조 브레이너드가 쓴 인용한 이 말이 “유행”처럼 떠돌던 시기(개인적인 발화가 아니었다면)에는 아웃팅, 또는 그에 더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걱정하며 휘파람을 연습하거나 휘파람을 불 줄 안다고 말했던(말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해 봅니다. 여전히 “00들은(000한 사람들은) ~해” 같은 얼토당토않은 편견, 차별과 억압들이 만연하며 '소수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숨기거나 다른 ‘나’로 가장하는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위의 문장을 포함하여, 조 브레이너드는 남성 퀴어 당사자로서 경험한 섹슈얼리티에 대해 아주 다양하게 발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지면을 빌어 몇 가지 “나는 기억한다”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나는 기억한다, “요즘 드라마에 왜 이렇게 동성애자가 많이 나와?”라는 친구의 말을. 그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던 때를.
나는 기억한다, 처음으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던 날을.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첫 번째 표현을 찾았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를. 그곳이 서울의 신촌공원과 닮은 역사를 가졌음을 알게 됐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내 몸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목욕탕에 가지 않겠다고 떼 썼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여기 여자 화장실이에요”라고 말하는 놀란 목소리를. 이후로 일부러 화장실에서 헛기침을 하거나 통화하는 척을 했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던 날의 날씨와 그날의 풍경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친구들의 환대를.
저의 기억 중에 여러분도 경험해 본 기억이 있나요? 혹은 전혀 상상해 보지 못한 경험의 조각도 있나요? 여러분에게는 나의 소수자성(또는 특권)과 관련한 어떤 기억들이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기억한다, "조심히 들어가고 도착하면 연락해"하고 서로가 탄 택시의 번호판을 찍어주던 순간을." 혹은 "나는 기억한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를 외쳤던 날들을." 같은 문장도 떠오릅니다)
저는 저의 소수자 정체성을 떠올릴 때 화나는 것, 답답한 것, 억울한 것, 슬픈 것과 함께 반갑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저의 삶과 함께해 온 멀고 가까운 과거의 기억 나눔이 여러분에게도 억압의 경험에서 비롯된 분노, 슬픔, 새로운 활동의 동력, 자긍심과 용기의 기억을 톺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