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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과 경제력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서술하시오.(1000자 이내)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어떤 어려움을 경험하셨나요?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구를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이 글의 제목인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서술하시오"는 흔히 실패 경험과 극복 사례로 불리는 (주로 대)기업 자기소개서 문항에서 따 왔습니다. 비슷한 문항으로는 성공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인생의 실패나 성공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이 "이 경험이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나" 혹은, "나는 크게 실패(성공)해 본 경험이 없는데 어떤 것을 써야 할까"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더 많은 취업 준비생 대상 컨설팅 업체, 스터디에서 어떻게 이 질문에 '대응'해야 하는지 '공식'을 이야기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자본과 경제력, 학력과 학벌 등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실패와 성공 경험이 달라진다는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시험에서 5수를 거쳐 시험에 합격했다면, 그 사람이 다섯 해 이상 수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여러 사회적 권력과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요. 실패를 '경험'할 수 있고, 또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갖는 것이 사회적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그러니 누군가가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을 목표로 할 때, 누군가는 절대 경험을 반복할 수 없고(해서는 안 되고),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실패해도 되고, 실패할 수 있고, 다시 회복하여 (성공이 아닌)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제도와 자본주의 논리가 변화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성공" 경험 사례와 "실패" 경험 사례에 대한 공식 및 해답으로 제시되는 것은 결국 "노력"을 강조하라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어떤 일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지속적으로 노력했는지, 산업 분야와 업무, 직무에 따른 적절한 키워드를 찾아 내가 (개인이) 얼마나 해당 분야에 적합한 사람인지 강조하게 하는 것이지요.


최근 몇 년 사이, 학력과 학벌 정보를 제외하는 "블라인드 채용"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 과정에서 주어지는 질문(물론 이 문항은 블라인드 채용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요) 역시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서 응답할 수 있는 경험의 사례가 달라진다는 것(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어려움(실패)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기업과 국가에서는 그러한 "어려움"을 비가시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력, 신체적 정신적 장애 여부, 성별,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 등 "억압 그룹"이 경험한 차별과 억압에서 비롯된 어려움과 "실패 경험"을 기업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실패"나 "성공" 경험에 대한 서술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선택되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이 모든 책임을 방임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묻는 "실패 경험과 극복 사례"는 다분히 특권 그룹의 삶을 반영합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으며 그것을 극복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면 된다는 경험담과 컨설팅은 기만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모두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해야 하는 일을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과도한 업무 시간,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이 사회적 정체성에 따른 억압 그룹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채용(구직)부터 노동, 이직과 퇴사 이후까지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국가가 법과 제도로써 이를 보장해야 합니다. 국가는 더 늦기 전에 당장, "노동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노동에서 배제되는 사람들" 모두 포함되어 죽거나 죽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