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좋은 교육자이자 교육행정가였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 난민(아프간 특별기여자)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첫 등교길을 함께 걸었던 교육감,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공교육에 포괄적성교육을 도입하고 실행한 교육감, 울산광역시 교육감 노옥희 선생이다.
▲ 12월9일 오전 고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의 분향소가 마련된 울산시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조문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역주민들이 난민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먼저 난민들의 곁으로 갔다.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먼저 몸으로 보여주었다. 포괄적성교육에 대한 부정확하고 부족한 정보,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성교육, 성평등교육에 대한 큰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운영하고 책임지는 울산교육에서부터 그 오해를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노옥희 선생은 교사로 일하던 당시, 한 학생이 일을 하다 다치는 산재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하며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 학생을 도울 수 있는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문제와 교육현실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에 함께한 활동과 울산광역시 최초의 진보교육감 당선과 재선까지 이어졌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 노옥희 교육감이 이끌었던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비전이었다. 그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교육의 기본 책무는 아이들이 태어난 환경이나 부모의 경제력 또는 시험 성적 때문에 단 한 명도 소외당하거나 낙오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난민 어린이들의 첫 등교길에 함께 걸었던 모습도 포괄적성교육을 도입한 정책도 이러한 명확한 가치와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중고 12년을 오로지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입시 중심의 공교육에선 난민과 함께할 필요도 없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성교육을 할 필요도 없다. 난민,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그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느 누구도 소외, 배제,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교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안전하게 나눌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교실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진보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이들이 많다. 교육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포함해서 인권활동가, 마을활동가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진보”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80년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다는 과거의 경력을 제외하곤 무엇이 진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없고 권력에 대한 이해도 없다. 자신이 해오던 일과 경력 그리고 자신의 작은 세상 속에서 가지는 기득권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다. 가끔은 “진보”라고 불리는 세력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 세상이 정말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3월21일 오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옛 사택 앞에서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동구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를 환영하는 팻말을 들고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날 특별기여자의 자녀인 유치원생 16명, 초등학생 28명, 중학생 19명, 고등학생 22명 등 85명은 첫 등교를 했다. ⓒ 연합뉴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믿음을 삶으로 살았던 노옥희 선생이 지난 8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별세했다. 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던 이의 죽음은 언제나 황망하게 다가온다.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인물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감사하게도 노옥희 선생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노옥희 선생처럼 늘 약자 곁에 있는 사람이면서, 사회를 변화시킴으로써 약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소수자의 곁에 선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차별을 당하게 될 때 누군가가 당신의 곁을 지켜주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교육감이 될 필요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게 서로에게 작은 롤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교육에서 인권이나 노동권, 성평등과 같은 가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인권교육, 노동교육, 성평등교육처럼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민이 많아질 때 이 사회는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지만, 이 나라는 빠른 속도로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인 동시에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때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방법대로 약자의 곁을 지키며 함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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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좋은 교육자이자 교육행정가였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 난민(아프간 특별기여자)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첫 등교길을 함께 걸었던 교육감,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공교육에 포괄적성교육을 도입하고 실행한 교육감, 울산광역시 교육감 노옥희 선생이다.
지역주민들이 난민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먼저 난민들의 곁으로 갔다.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먼저 몸으로 보여주었다. 포괄적성교육에 대한 부정확하고 부족한 정보,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성교육, 성평등교육에 대한 큰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운영하고 책임지는 울산교육에서부터 그 오해를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노옥희 선생은 교사로 일하던 당시, 한 학생이 일을 하다 다치는 산재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하며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 학생을 도울 수 있는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문제와 교육현실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에 함께한 활동과 울산광역시 최초의 진보교육감 당선과 재선까지 이어졌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 노옥희 교육감이 이끌었던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비전이었다. 그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교육의 기본 책무는 아이들이 태어난 환경이나 부모의 경제력 또는 시험 성적 때문에 단 한 명도 소외당하거나 낙오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난민 어린이들의 첫 등교길에 함께 걸었던 모습도 포괄적성교육을 도입한 정책도 이러한 명확한 가치와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중고 12년을 오로지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입시 중심의 공교육에선 난민과 함께할 필요도 없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성교육을 할 필요도 없다. 난민,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그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느 누구도 소외, 배제,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교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안전하게 나눌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교실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진보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이들이 많다. 교육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포함해서 인권활동가, 마을활동가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진보”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80년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다는 과거의 경력을 제외하곤 무엇이 진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없고 권력에 대한 이해도 없다. 자신이 해오던 일과 경력 그리고 자신의 작은 세상 속에서 가지는 기득권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다. 가끔은 “진보”라고 불리는 세력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 세상이 정말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믿음을 삶으로 살았던 노옥희 선생이 지난 8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별세했다. 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던 이의 죽음은 언제나 황망하게 다가온다.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인물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감사하게도 노옥희 선생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노옥희 선생처럼 늘 약자 곁에 있는 사람이면서, 사회를 변화시킴으로써 약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소수자의 곁에 선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차별을 당하게 될 때 누군가가 당신의 곁을 지켜주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교육감이 될 필요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게 서로에게 작은 롤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교육에서 인권이나 노동권, 성평등과 같은 가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인권교육, 노동교육, 성평등교육처럼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민이 많아질 때 이 사회는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지만, 이 나라는 빠른 속도로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인 동시에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때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방법대로 약자의 곁을 지키며 함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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