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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오래전부터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 -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드러낸 참정권, 접근권, 대표성의 문제

오래전부터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

-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드러낸 참정권, 접근권, 대표성의 문제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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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고, 투표권 행사가 중단되거나 심각하게 제약되는 일이 벌어졌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것은 선거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준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는 시민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최소한의 절차”다. 그 절차를 보장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시민의 투표권을 위협했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한국 사회가 선거관리위원회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둔 이유는 분명하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의 역사 위에서, 선거가 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무책임의 특권이 아니다. 독립기관일수록 시민 앞에 더 투명해야 하고, 더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감시받지 않는 독립성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장치가 아니라 폐쇄적 조직문화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선관위는 이미 채용 특혜 의혹, 경력채용 비리 논란, 외부 통제 논란, 선거철 인력공백 논란 등으로 시민의 신뢰를 크게 잃어 왔다. 헌법재판소는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판단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선관위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시민적 감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독립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에 대한 책임성 없는 독립성은 위험하다.

이번 사건은 부정선거 음모론의 연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은 음모론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의 투표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선거관리 시스템의 무능과 폐쇄성이다. 선거 불신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선거관리 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선거관리위원회는 해체에 가까운 수준의 철저한 개혁을 해야 한다. 내부 진상조사로 끝낼 일이 아니다. 독립적인 외부 진상조사, 책임자 문책, 선관위원 구성 방식 개혁, 시민사회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감시 구조, 국회와 시민에 의한 조사·감사 장치, 선거 행정 전문가 중심의 상임 책임체계가 필요하다. 선거관리의 기준은 기관의 편의가 아니라 “주권자의 권리”여야 한다.

또한 재선거 여부와 무관하게, 그리고 만약 재선거가 논의된다면 더더욱, 그동안 투표권을 박탈당하거나 제한당해 온 모든 사람이 온전하고 안전하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장애, 질병, 나이, 성별정체성, 거주 형태, 언어, 노동 조건, 이동 조건, 정보 접근성의 차이 때문에 투표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동안 투표장 문턱 앞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많았다. 휠체어, 전동휠체어, 목발, 지팡이를 이용하는 사람들,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투표소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사람들, 점자·음성·큰글자 투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 쉬운 글과 그림, 후보자 사진, 정당의 로고나 색 대비가 필요한 사람들, 농인과 청각장애인, 발달장애인과 인지장애인, 정신장애와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병원·요양병원·장애인거주시설·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 와상 상태이거나 재가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 만성질환·통증·피로장애·면역취약으로 장시간 대기하기 어려운 사람들, 고령자, 임신부, 유아를 동반한 양육자, 돌봄노동자들이 있다.

교대노동자·야간노동자·플랫폼노동자·일용노동자·장시간 노동자, 군인·선원·원거리 노동자, 재외국민과 해외체류 시민, 홈리스와 주소가 불안정한 사람들, 쉼터와 보호시설에 있는 사람들, 가정폭력·스토킹 피해로 주소 노출이 위험한 사람들, 수감·구금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귀화 시민과 이주배경 유권자, 신분증에 표시된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젠더표현이 다른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 유권자들도 있다. 그리고 교육정책의 직접 당사자인 아동·청소년 중 선거일 기준 18세 미만인 사람들은 교육감 선거에서조차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투표용지 도입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하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투표용지, 혹은 그림·사진·쉬운 글로 구성된 투표 보조자료는 결코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요구는 민주주의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규범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만 상상해 왔는지를 드러낸다.

후보자의 이름과 기호만으로 구성된 투표용지는 중립적인 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인지 방식과 문해 능력을 기준으로 설계된 투표용지다. 후보자 사진, 정당 로고, 기호, 색상 대비, 쉬운 글, 그림 정보, 음성 안내와 같은 다양한 정보 제공 방식은 특혜가 아니라 동등한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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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실제로 투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적 상상력과 책임이다. 모든 투표소에 접근 가능한 투표 정보를 확인하거나 인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게 할 수도 있고, 후보 등록 이후 선관위가 표준화된 그림·사진·쉬운 글 투표 안내자료와 보조자료를 제작해 모든 투표소에 기본 비치할 수도 있다. 필요한 유권자가 사전에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사전신청은 기본권 행사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신청한 사람에게만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투표소에 갔을 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묵살되어 왔다.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투표 접근권을 당연하게 여겨 온 비장애·비질병·시스젠더 성인(비청소년) 유권자들까지 투표권 침해를 경험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투표 용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분노가 일회성 분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동안 누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누구의 투표권이 조건부 권리로 취급되어 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투표권은 줄 서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도 아니다. 글자를 잘 읽을 수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 신분증과 외모가 규범적으로 일치하는 사람, 정해진 시간에 일터를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도 아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투표소의 문턱으로 인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투표소뿐만 아니다. 학교도, 일터도, 공공화장실도, 버스도, 전철도, 주민센터도, 구청도, 병원도, 법원도, 도서관도, 공원도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드나들며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자. 불충분한 투표용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민주주의를 제한해 온 수많은 문턱들을 이제 직시하자. 투표권은 민주주의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실제로 투표를 할 수 있을 때, 자신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하고 온전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삶과 권리가 정치 안에서 지워지지 않고 대표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단지 표를 던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나의 존재가 정치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와 권리가 정치 안에서 대표될 권리를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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