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 background

한국다양성연구소 다양성웹진 까끌까끌 webzine ggaggle-ggaggle,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 외 지음

장애[김지학의 세상다양] 또 ‘죽임’을 당한 장애인, 누가 범인일까(22.08.28)

252b2bb3542fe.png

장애인은 여전히 국가에 의해 방치되고 있다. 온갖 장애인 복지정책을 펴는 것처럼 생색을 내지만 실상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비장애인 중심주의를 깨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했더니 이동권을 보장하진 않고 매달 5만원 한도 교통비 실비를 지급한다고 한다. 자본주의적인 생산성 논리를 깨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노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라고 했더니 생산성의 기준은 그대로 두고 장애인에게 직업재활을 통해 그 기준에 적응하라고 한다.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활동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24시간 활동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해도 하루 4시간꼴로만 활동지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생색만 낼뿐 내실이 없는 제도 가운데서 장애인은 계속해 '죽임'을 당하고, 이를 목격하며 우연히 살아남은 장애인은 실재하는 공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22년 8월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들이 많았던 가혹한 한 달이었다. 8일에는 기록상 유례없는 폭우로 인한 반지하 참사로 인해 13살 어린이와 장애인, 이들을 돌보던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던 고인까지 세 가족이 숨졌다. 21일에는 암치료를 받던 어머니가 숨진 채로 그리고 희소질환을 가지고 있던 두 자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23일에는 자폐진단을 받은 35개월 어린이가 살해된 채로 그리고 어머니도 숨진 채로 발견됐다. 24일에는 한밤중 발생한 화재에서 무사히 대피할 수 없었던 중증 시각장애인이 숨졌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폭우 침수 피해로 사망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3명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80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여성과 여동생 A씨, A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22.8.10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폭우 침수 피해로 사망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3명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80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여성과 여동생 A씨, A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22.8.10 ⓒ뉴스1


장애인의 가족이 살인이나 살인미수가 되는 사건들의 판결문을 보면 범행동기로 "본인 혹은 다른 가족의 건강악화", "경제적 부담", "우울증", "비관과 절망", "양육부담"이 나온다. 장애를 개인과 그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드는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갖는 이유는 개인을 탓할 수 없는 구조가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였다면 이러한 '죽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국가는 모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법을 만들고 세금을 통해 재분배를 하며 사회적 소수자들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그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를 만들어서 함께 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는 숨어 버린 채, 생산성 논리에서 벗어난 인간 중심의 구조 자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국가는 끊임없이 '정상'의 몸과 '비정상'의 몸을 구분하며, '비정상'을 배제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비정상'을 배제하는 것을 기본으로 전제하는 국가는 '비정상'의 몸을 돌보는 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여기지 않으며 개인과 그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국가는 생산성 논리(경제회복 그리고 민생, 통합 등)를 앞세우며 재벌들에게는 어떠한 죄도 사면복권 하지만, 자본의 관점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죄'로 만들며 장애인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국가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 계속 죽이고 있는 비장애인 중심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바꿀 생각이 없다. 장애와 질병을 가족이 책임지도록 만드는 사회구조는 가난과 연결되며 생존에 취약해진다.


반지하 참사로 돌아가신 장애인, 화재로 사망한 중증 시각장애인,

자살하는 가족에 살해된 장애인,

과연 죽임 당한 이들은 누구의 책임일까?


24일 숨진 시각장애인은 월 120시간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화재가 일어난 시간은 활동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중증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 활동지원 없이 이동이 어려운데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는 시간은 하루 4~5시간이 전부였다.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출입구와 계단 등의 위치를 파악하고 익히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24시간 지원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였다면 이러한 '죽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운동계에서는 그동안 수없이 발생해온 장애인 가족들에 의한 가족 살해와 자살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와 '24시간 활동지원 부재' 등을 꼽았고, 국가의 책임을 요구해왔다. 그간 불합리한 서비스에 관한 다수의 차별 진정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2차례 국회의장에게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돌봄 부재만 심각해질 뿐, 개선의 노력은 없다.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대표발의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만약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와 '24시간 지원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같은 문제로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사회든 교육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평등문화를 만들며,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제도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의 논리(노사갈등, 젠더갈등 등)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억압, 폭력을 지운다. 게다가 '왜 약자의 권리만 보장하냐'며 '역차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게 만들고 있다. 약자의 권리보장은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 약자가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 위치한 모두가 다양한 모습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의 정치를 직업으로 한다는 사람들은 애초에 '모두가 포함되는' 더 나은 세상에는 관심이 없다. 강자들, 그들만의 정치판이다.




84680522d5a5f.png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49재 기간 집중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지난 23일 숨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49재가 끝나는 7월 10일까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집중 투쟁을 선포했다. 2022.05.31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49재 기간 집중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지난 23일 숨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49재가 끝나는 7월 10일까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집중 투쟁을 선포했다. 2022.05.31 ⓒ민중의소리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니 안심해도 될까? 현재 자신이 비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일시적인" 비장애인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노화의 과정은 신체와 정신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팔과 다리의 힘이 약해질 수도 있고 뇌의 기능이 떨어지면 치매(인지저하증)이 올 수도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고 우리 이야기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어떤 집에 살든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자본의 논리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는데 "장애인은 빼고 하겠다" 할 수 없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보육, 의료, 교육, 노동, 취미, 체육, 주거, 노후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발달장애인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도시에서 사회에서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도 노인이 되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할 필요 없이 내가 살던 집, 마을, 도시, 사회에서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살 수 있다.


장애유형과 등급에 따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분명한 게 아니라 누구라도 지원이 필요할 때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는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책임지게 할 것이다. 그게 원래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아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범인일까.

민중의소리에서 컬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