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연애·비섹스 시대의 청년들*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와 관계의 사회적 조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안녕하십니까?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입니다. 오늘 저는 ‘비연애·비섹스 시대의 청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와 관계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이 발표의 또 다른 부제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입니다. 저는 오늘 청년들의 비연애와 비섹스를 ‘개인의 문제’나 오로지 나이에 의한 세대적 특이성으로 보기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 안에서 친밀성을 둘러싼 조건이 무너지고 불평등해진 결과로 보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소위 ‘로맨틱한 날’에도 신촌과 홍대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의 숙박업소 예약이 과거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청년들의 성적행동이 줄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호텔을 이용할 수 있고, 누군가는 자취방이나 집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특별한 날이면 예약조차 어려웠던 공간들이 비어 있다는 감각은, 적어도 성적 행동과 친밀성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회적 신호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요즘 청년들이 이상하다”거나 “청년들에게서 성욕이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청년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문화로 향해야 합니다. 왜 관계를 만들고, 감정을 나누고, 섹스를 하고, 때로는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떤 청년들에게는 점점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는가? 왜 사랑과 성이 삶의 활력이라기보다 위험과 비용, 시간과 에너지의 문제로 경험되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1. 섹스 리세션이 아니라 친밀성의 재구조화
최근 국제적으로는 이 현상을 ‘섹스 리세션(Sex Recession)’, 즉 성적 행동의 감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관계 횟수 하나만 보면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는 단지 “섹스를 덜 한다”는 현상이 아닙니다. 연애와 관계 형성의 감소, 성경험이 없는 집단의 증가, 파트너가 있어도 지난 1년 동안 성관계가 없었다는 응답의 증가, 동거와 결혼의 지연 또는 감소가 서로 얽혀 나타나는 다차원적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현상을 ‘섹스의 감소’보다 ‘친밀성의 조건 변화’, 더 나아가 ‘친밀성의 재구조화’로 읽고자 합니다.
미국의 General Social Survey를 분석한 Ueda 등의 연구(2020)를 보면, 18세에서 24세 남성의 지난 1년 성관계 없음은 18.9%에서 30.9%로 증가했습니다(2000/02년-2016/18년). 25세에서 34세에서도 남성은 7.0%에서 14.1%, 여성은 7.0%에서 12.6%로 증가했습니다. 영국 Natsal-3 연구(2019)는 지난 1년 동안 구강, 질, 항문 성교가 없었던 사람을 ‘성적 비활동 인구’로 정의했을 때 남성 15.9%, 여성 22.2%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고합니다. 일본의 2021년 제16차 출생동향기본조사에서는 미혼 18세에서 34세 가운데 현재 이성과 교제 중이거나 약혼한 비율이 남성 21.1%, 여성 27.8%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미혼자 세 명 중 한 명 정도가 이성과의 관계에 특별히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연구들도 이미 몇 년 전 자료이기 때문에 더 최근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대면 관계의 축소, 온라인 관계의 확대, 고립감의 증가를 거치며 이 현상이 더 뚜렷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장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청년 성행동 통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동거, 출산, 양육, 고용, 주거의 제약을 통해 친밀성 감소의 구조적 조건을 읽어야 합니다. 통계청 2024년 사회조사에서 결혼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결혼 자금 부족 31.3%였고, 그 뒤를 출산과 양육 부담 15.4%, 고용 상태 불안정 12.9%가 따릅니다. 이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는 성적 개방성의 증가나 감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 시간, 안전, 신뢰, 미래에 대한 기대가 줄어든 사회에서 성과 친밀성도 함께 재배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을 “친밀성 격차(Intimacy Gap 또는 Intimacy Inequality)”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친밀성 격차란, 누군가는 안전하고 평등하고 즐겁게 관계 맺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돈, 시간, 주거, 젠더폭력, 감정소진, 노동조건 때문에 친밀성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도록 밀려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젠 이전보다 더 성적 행동이 큰 ‘비용’이자 ‘기회비용’이 된 사회를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은 ‘성욕이 줄어든 세대’가 아니라, ‘친밀성을 누릴 조건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사회’입니다.
2. 성적 활동이 없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먼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곧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유성애 중심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흔히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를 먼저 말하지만, 사실 성적 끌림 자체를 느끼는가, 얼마나 느끼는가, 느끼지 않는가의 스펙트럼도 중요합니다. 무성애자는 비정상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치료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성적 지향과 끌림의 다양성 중 하나입니다. 섹스리스 부부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뿐 관계와 대화에 문제가 없다면 섹스리스인 상태를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제가 말하는 것은 무성애를 문제 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삶을 병리화하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영국 연구에서도 성적 비활동 상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상태에 불만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험이 있지만 성적 비활동 상태인 사람들 중 불만족을 보고한 비율은 남성 34.8%, 여성 23.6%였습니다. 즉 성관계가 없다고 해서 자동으로 불행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유성애자이고, 성적 욕구가 있고, 심리적 트라우마나 개인적 관계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데도 데이트, 연애, 성관계를 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 그때는 “사회적 조건”을 질문해야 합니다. ‘왜 안 하지?’라고 묻기보다 ‘무엇이 성적 행동을 하기가 어렵게 만드는가?’, ‘어떤 조건에서 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 되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비연애·비섹스’를 네 가지로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존중되어야 할 선택입니다. 둘째, 하고 싶지만 돈, 시간, 공간, 기회가 부족해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구조적 제약입니다. 셋째, 폭력, 낙인, 소진, 불평등을 피하기 위해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생존 전략입니다. 넷째, 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위, 포르노, 디지털 친밀성, 일회성 관계 등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욕구의 재배치입니다.
이 네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청년들의 성적 비활동을 너무 쉽게 “병리화”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자유로운 선택”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병리화하지 않되, 구조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3. 갓생, 저속노화, 혈당패치: 자기관리 사회의 섹슈얼리티
청년들 사이에서 “갓생”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였습니다. 신의 삶, 그러니까 여유롭고 완벽한 삶을 뜻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공부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계발을 하며, 열심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저속노화 식단이나 운동법에 대한 실천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장년층이 먼저 반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20-30대가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연속혈당측정기 패치를 붙이고 자신이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 분석해 식습관에 반영하는 청년들도 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건강 열풍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자기 자신을 프로젝트처럼 관리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의 증상으로 봅니다. 시간이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몸, 감정, 관계, 미래를 끊임없이 투자 대비 효율로 계산하게 됩니다. 공부, 자격증, 운동, 재테크, 포트폴리오, 이직 준비, 건강관리는 미래의 보상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반대로 연애와 섹스는 보상이 불확실합니다. 돈이 들고, 시간이 들고, 감정노동이 들고, 거절과 상처의 가능성이 있으며, 때로는 특히 여성에게 폭력과 낙인의 위험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는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동시에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청년들이 단순히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거나,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두고 ‘청년들이 개인주의적이어서 그렇다’, ‘스마트폰과 포르노 때문 아니냐’, ‘페미니즘 때문에 남녀가 갈라진 것 아니냐’는 설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들은 현상의 일부 혹은 결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포르노, 데이트 앱,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은 각각 단독 원인이 아니라, 이미 불안정해진 경제·주거·노동·안전 조건 위에서 친밀성의 비용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4.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과 성욕마저 줄이는 사회
인간은 연결을 통해 살아갑니다. 친밀한 관계는 행복감, 안정감, 인정받는 감각, 돌봄받고 돌보는 감각을 줍니다. 성적 관계 역시 단지 생식이나 쾌락만이 아니라 몸을 통해 나누는 연결감, 친밀감, 긴장 완화, 소통, 놀이, 감정의 교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이 연결감으로 인한 행복감과 성욕마저 줄이거나 포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관계를 맺는 능력보다 성과를 내는 능력이 먼저 요구됩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우는 것, 감정을 조율하는 것, 약속을 잡고 이동하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상대의 욕구를 살피는 것 모두가 노동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섹스는 하고 싶어도 데이트와 썸을 시작하고 연애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과 노력은 피하고 싶어집니다. 관계는 즐거움이면서 동시에 비용이 되고, 성은 욕구이면서 동시에 위험 관리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욕의 감소’와 ‘파트너 섹스의 감소’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욕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타인과 얽히는 방식의 비용이 커졌기 때문에 자위, 포르노, 섹스토이, 디지털 친밀감, 혹은 일회성 관계로 이동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의 책임과 감정노동은 피하고 원나잇 스탠드(One-night stand)나 FWB(Friends with benefits)와 같은 감정 배제형 관계를 찾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접촉과 관계를 피하고 자기 혼자 해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것은 성욕의 소멸이라기보다 성적 욕구의 이동과 재배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할 정확한 질문은 ‘왜 관계 안에서 욕구를 나누는 일이 어려워졌는가?’, ‘왜 친밀성이 즐거움이 아니라 비용과 위험으로 경험되는가?’, ‘욕구는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입니다.
5. 경제적 이유: 연애와 섹스도 계급의 문제다
연애와 섹스는 흔히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매우 물질적인 조건 위에 놓여 있습니다. 데이트를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안전하게 머물 공간이 필요합니다. 주거 독립이 어려우면 친밀한 관계를 사적으로 만들 공간도 줄어듭니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 고용은 관계를 시도할 심리적 여유를 빼앗습니다.
미국 연구에서 저소득, 파트타임 또는 무직이라는 사회경제적 위치가 성적 비활동과 관련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도 결혼하지 않는 이유의 상위가 결혼 자금 부족, 출산과 양육 부담, 고용 불안정으로 나타납니다. 한국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는 결혼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연애는 곧 돈을 써야 하는 일이고, 결혼 가능성을 묻는 일이며, 미래의 가족 형성 비용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결국 데이트, 연애, 성관계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이 됩니다. 안정적인 소득, 독립된 주거, 이동할 시간,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는 친밀성이 가능성으로 열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친밀성 자체가 부담과 실패의 가능성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는 계급의 문제, 주거의 문제, 고용의 문제와 분리해서 볼 수 없습니다. 친밀성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분되는 조건의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친밀성 격차’는 단지 누가 연애를 더 많이 하고 덜 하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가 안전하게 관계를 시도할 수 있는가, 누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여유가 있는가, 누가 자신의 몸과 감정과 시간을 보호하면서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6. 데이트 앱, 자위, 성구매, 원나잇: 욕구는 어디로 이동하는가
그렇다면 성욕은 어디로 갈까요? 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계 맺기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보면, 우리는 몇 가지 이동 경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포르노 시청과 자위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조율하지 않아도 되고, 거절당하지 않아도 되며, 돈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듭니다. 물론 우리는 포르노가 성적 상상력과 관계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여성혐오적·폭력적 스크립트를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르노와 자위가 파트너와의 성적 행동과 만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또 하나는 데이트 앱과 일회성 관계입니다. 데이트 앱과 플랫폼은 일회성 만남의 접근성을 높였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성적 기회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모, 나이,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질병, 소득 수준 등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배제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피로와 위험이 됩니다. 앱은 만남을 쉽게 만들지만 동시에 선택의 과부하, 평가받는 피로감, 외모와 스펙 중심의 경쟁, 불신과 불안을 키울 수 있습니다. 기술은 친밀성을 해방하기도 하지만, 친밀성을 더 시장화하고 서열화할 수도 있습니다.
성구매 역시 일부 남성들에게는 “관계 없이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구매는 친밀성의 대안이 아니라, 친밀성의 붕괴가 시장과 젠더 권력 안에서 조직되는 방식입니다. 성매매는 경제적 취약성, 젠더 권력, 성착취 구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과 동의를 협상하는 관계를 회피하면서 구매를 통해 접근하는 성은, 자본주의가 욕구와 여성을 상품으로 조직하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구의 이동을 단순히 개인의 취향 변화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자위, 포르노, 앱, 원나잇, 성구매는 모두 “관계의 비용이 커진 사회에서 욕구가 어디로 배치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7. 한국 사회의 젠더폭력과 여성들의 안전 전략
한국 사회에서 비연애·비섹스는 젠더폭력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여성들에게 데이트, 썸, 연애, 원나잇, 성관계는 단지 설렘과 쾌락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 성폭력, 스토킹, 불법촬영과 유포, 디지털 성범죄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의 비율이 36.1%로 보고되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낙인의 문제도 있습니다. 남성에게 성경험은 때로 자랑이 되지만, 여성에게 성경험은 여전히 평가와 낙인의 대상이 됩니다. 같은 성적 행동도 남성에게는 능력으로 읽히고 여성에게는 문란함으로 읽히는 성적 이중규범이 작동합니다. 여성들이 연애와 성관계를 조심하고, 비혼과 비출산, 비연애와 비섹스를 선택하는 것은 단지 남성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안전을 지키기 위한 판단이고, 삶과 커리어를 지키기 위한 판단이며, 폭력과 착취를 피하기 위한 판단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4B 운동이 이야기될 때도 이 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이기적인 여성들의 남성 거부”로 읽는 것은 너무 단순합니다. 많은 여성들에게 그것은 생존의 언어입니다.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여전히 커리어 중단, 돌봄노동 전가, 경제적 의존, 삶의 자율성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선배 여성들의 삶을 통해 학습하고 있습니다. 비연애와 비섹스는 이 학습의 결과이자 안전 전략입니다.
동시에 남성 청년들의 경험도 더 섬세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 청년들 역시 경쟁사회 안에서 경제력과 외모 그리고 로맨틱 연애 각본을 수행할 능력을 요구받습니다. ‘인셀’, 즉 비자발적 독신자라는 말이 특히 온라인 남성문화 안에서 강한 모욕처럼 쓰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너 여자 못 만나봤지?”, “앞으로도 계속 못 만날 거야”라는 조롱은 단순히 연애 경험이 없다는 놀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너는 능력 없는 남자다”,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이성애 관계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남성성, 경제력, 외모, 사회적 성공의 증명처럼 여겨집니다.
이때 남성 청년들이 경험하는 박탈감 자체를 조롱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 박탈감이 여성에 대한 권리 요구나 혐오로 향할 때, 문제는 더 깊어집니다. 이러한 압박을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남성성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때, 일부 남성들은 친밀성의 실패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고 저항하는 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기도 합니다. ‘일부의 돈 많고 잘생긴 남성들이 여성들을 독차지하고 있다’, ‘여자들이 눈이 너무 높다’, ‘여자들이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와 같은 믿음이 여성혐오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여성에게 다시 돌봄과 성적 접근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해로운 남성성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성성 자체를 돌봄, 동의, 평등, 감정표현의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8. 성교육과 성건강의 과제: 연애 장려가 아니라 조건 개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청년들의 성적 비활동을 병리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삶, 연애하지 않는 삶, 결혼하지 않는 삶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무성애와 비연애, 비섹스는 그 자체로 비정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자유롭고 안전하며 존엄한가입니다.
둘째, 동시에 ‘선택’이라는 말만으로 구조적 제약을 가리면 안 됩니다. 청년들이 연애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 불안정, 주거 불안, 장시간 노동, 경쟁 압박, 젠더폭력의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책은 청년들에게 “연애하세요, 결혼하세요, 아이 낳으세요”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주거, 노동, 생계의 안정 그리고 안전과 상호 돌봄의 보장, 성평등 문화로 바꿔야 합니다.
셋째, 성건강 접근은 더 넓어져야 합니다. 성관계 빈도가 줄어든다고 해서 성건강 위험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드물게 하는 성관계일수록 피임과 동의, STI 검사, 성적 의사소통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섹스를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보다, 원할 때 안전하게 할 수 있는가, 원하지 않을 때 거절할 수 있는가, 거절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 폭력과 낙인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넷째, 포괄적 성교육으로 성교육을 몸의 변화나 성적 행동에 대한 교육을 넘어 친밀성 교육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포괄적 성교육은 단지 피임법이나 성병 예방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닙니다.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소수자를 만드는 교육’도 아닙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거절할 수 있는 능력, 거절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감정을 조율하는 능력, 동의와 경계를 존중하는 능력, 폭력을 알아차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결국 포괄적 성교육은 ‘성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친밀성 문해력(Intimacy Literacy)”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타인의 경계를 읽고, 거절하고, 거절을 받아들이고, 안전한 관계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성교육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더 많이 연애하고 더 많이 섹스하라고 말하는 교육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관계를 맺거나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교육입니다.
다섯째, 연구와 조사의 프레임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 1년 성관계를 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계 상태, 성적 끌림과 무성애 정체성, 파트너 성행동의 유형, 자위와 온라인 성활동, 만남 경로, 주관적 만족과 원함/원치 않음, 동의와 안전, 폭력 경험을 함께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연애와 비섹스를 문제로 낙인찍지 않으면서도, 구조적 고립과 위험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9. 결론: 섹스의 양이 아니라 친밀성의 조건을 묻자
정리해 보겠습니다. 청년들의 비연애·비섹스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몸과 시간과 감정이 점점 더 관리되고 소진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청년들은 자기계발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고,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관계의 비용을 계산해야 하며, 특히 여성들은 젠더폭력과 낙인의 위험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못하고, 어떤 이들은 미루고, 어떤 이들은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와 우리 사회가 왜 사랑과 성, 관계와 돌봄을 이렇게 비싸고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연결감, 행복감, 성적 즐거움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라면, 문제는 청년들의 욕망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입니다. 오늘 함께 고민하고 싶은 질문은 “청년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입니다. 성적 행동은 해야만 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자유와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동의할 수 있는 조건과 거절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폭력과 빈곤과 낙인 없이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관계 그리고 성적 행동에 대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그리고 가질 수 있어야 할 자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자유,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청년들의 비연애와 비섹스는 지금의 사회가 친밀성을 얼마나 비싸고 위험하고 불평등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섹스의 양이 아니라 친밀성의 조건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을 더 안전하고, 더 평등하고, 더 존엄하게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제안하고 싶은 “친밀성 정의(Intimacy Justice)”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사용한 ‘친밀성 격차’, ‘친밀성 문해력’, ‘친밀성 정의’라는 표현은 아직 널리 표준화된 학술 용어라기보다, 청년들의 비연애·비섹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제안하는 분석적 언어입니다. 이 개념들은 성적 권리, 성정의, 재생산정의, 장애정의, 포괄적 성교육의 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밀성 격차(Intimacy Gap)는 단순히 개인 간 애정의 거리나 관계의 소원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는 친밀성 불평등(Intimacy Inequality), 곧 누군가는 안전하고 평등하며 존엄하게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돈, 시간, 주거, 노동조건, 젠더폭력, 낙인 때문에 친밀성에 접근하기 어려운 조건의 불평등을 뜻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성욕이 줄어든 세대가 아니라, 친밀성 격차가 커진 사회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친밀성 정의(Intimacy Justice)입니다.
이를 위해 성교육은 단지 피임법이나 성병 예방을 넘어 친밀성 문해력(Intimacy Literacy)을 기르는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친밀성 문해력이란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타인의 경계를 읽고, 동의를 소통하고, 거절하고, 거절을 받아들이며, 안전한 관계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제가 이 세 가지 언어를 통해 묻고자 하는 것은 성관계의 양이 아니라, 누가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는가입니다. |
* 〈비연애·비섹스 시대의 청년들〉, 대한성학회 2026년 춘계 학술대회 [영상 바로가기]

비연애·비섹스 시대의 청년들*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와 관계의 사회적 조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안녕하십니까?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입니다. 오늘 저는 ‘비연애·비섹스 시대의 청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와 관계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이 발표의 또 다른 부제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입니다. 저는 오늘 청년들의 비연애와 비섹스를 ‘개인의 문제’나 오로지 나이에 의한 세대적 특이성으로 보기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 안에서 친밀성을 둘러싼 조건이 무너지고 불평등해진 결과로 보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소위 ‘로맨틱한 날’에도 신촌과 홍대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의 숙박업소 예약이 과거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청년들의 성적행동이 줄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호텔을 이용할 수 있고, 누군가는 자취방이나 집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특별한 날이면 예약조차 어려웠던 공간들이 비어 있다는 감각은, 적어도 성적 행동과 친밀성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회적 신호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요즘 청년들이 이상하다”거나 “청년들에게서 성욕이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청년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문화로 향해야 합니다. 왜 관계를 만들고, 감정을 나누고, 섹스를 하고, 때로는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떤 청년들에게는 점점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는가? 왜 사랑과 성이 삶의 활력이라기보다 위험과 비용, 시간과 에너지의 문제로 경험되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1. 섹스 리세션이 아니라 친밀성의 재구조화
최근 국제적으로는 이 현상을 ‘섹스 리세션(Sex Recession)’, 즉 성적 행동의 감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관계 횟수 하나만 보면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는 단지 “섹스를 덜 한다”는 현상이 아닙니다. 연애와 관계 형성의 감소, 성경험이 없는 집단의 증가, 파트너가 있어도 지난 1년 동안 성관계가 없었다는 응답의 증가, 동거와 결혼의 지연 또는 감소가 서로 얽혀 나타나는 다차원적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현상을 ‘섹스의 감소’보다 ‘친밀성의 조건 변화’, 더 나아가 ‘친밀성의 재구조화’로 읽고자 합니다.
미국의 General Social Survey를 분석한 Ueda 등의 연구(2020)를 보면, 18세에서 24세 남성의 지난 1년 성관계 없음은 18.9%에서 30.9%로 증가했습니다(2000/02년-2016/18년). 25세에서 34세에서도 남성은 7.0%에서 14.1%, 여성은 7.0%에서 12.6%로 증가했습니다. 영국 Natsal-3 연구(2019)는 지난 1년 동안 구강, 질, 항문 성교가 없었던 사람을 ‘성적 비활동 인구’로 정의했을 때 남성 15.9%, 여성 22.2%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고합니다. 일본의 2021년 제16차 출생동향기본조사에서는 미혼 18세에서 34세 가운데 현재 이성과 교제 중이거나 약혼한 비율이 남성 21.1%, 여성 27.8%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미혼자 세 명 중 한 명 정도가 이성과의 관계에 특별히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연구들도 이미 몇 년 전 자료이기 때문에 더 최근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대면 관계의 축소, 온라인 관계의 확대, 고립감의 증가를 거치며 이 현상이 더 뚜렷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장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청년 성행동 통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동거, 출산, 양육, 고용, 주거의 제약을 통해 친밀성 감소의 구조적 조건을 읽어야 합니다. 통계청 2024년 사회조사에서 결혼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결혼 자금 부족 31.3%였고, 그 뒤를 출산과 양육 부담 15.4%, 고용 상태 불안정 12.9%가 따릅니다. 이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는 성적 개방성의 증가나 감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 시간, 안전, 신뢰, 미래에 대한 기대가 줄어든 사회에서 성과 친밀성도 함께 재배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을 “친밀성 격차(Intimacy Gap 또는 Intimacy Inequality)”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친밀성 격차란, 누군가는 안전하고 평등하고 즐겁게 관계 맺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돈, 시간, 주거, 젠더폭력, 감정소진, 노동조건 때문에 친밀성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도록 밀려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젠 이전보다 더 성적 행동이 큰 ‘비용’이자 ‘기회비용’이 된 사회를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은 ‘성욕이 줄어든 세대’가 아니라, ‘친밀성을 누릴 조건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사회’입니다.
2. 성적 활동이 없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먼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곧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유성애 중심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흔히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를 먼저 말하지만, 사실 성적 끌림 자체를 느끼는가, 얼마나 느끼는가, 느끼지 않는가의 스펙트럼도 중요합니다. 무성애자는 비정상이 아닙니다. 무성애는 치료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성적 지향과 끌림의 다양성 중 하나입니다. 섹스리스 부부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뿐 관계와 대화에 문제가 없다면 섹스리스인 상태를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제가 말하는 것은 무성애를 문제 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삶을 병리화하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영국 연구에서도 성적 비활동 상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상태에 불만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험이 있지만 성적 비활동 상태인 사람들 중 불만족을 보고한 비율은 남성 34.8%, 여성 23.6%였습니다. 즉 성관계가 없다고 해서 자동으로 불행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유성애자이고, 성적 욕구가 있고, 심리적 트라우마나 개인적 관계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데도 데이트, 연애, 성관계를 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 그때는 “사회적 조건”을 질문해야 합니다. ‘왜 안 하지?’라고 묻기보다 ‘무엇이 성적 행동을 하기가 어렵게 만드는가?’, ‘어떤 조건에서 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 되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비연애·비섹스’를 네 가지로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존중되어야 할 선택입니다. 둘째, 하고 싶지만 돈, 시간, 공간, 기회가 부족해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구조적 제약입니다. 셋째, 폭력, 낙인, 소진, 불평등을 피하기 위해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생존 전략입니다. 넷째, 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위, 포르노, 디지털 친밀성, 일회성 관계 등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욕구의 재배치입니다.
이 네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청년들의 성적 비활동을 너무 쉽게 “병리화”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자유로운 선택”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병리화하지 않되, 구조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3. 갓생, 저속노화, 혈당패치: 자기관리 사회의 섹슈얼리티
청년들 사이에서 “갓생”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였습니다. 신의 삶, 그러니까 여유롭고 완벽한 삶을 뜻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공부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계발을 하며, 열심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저속노화 식단이나 운동법에 대한 실천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장년층이 먼저 반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20-30대가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연속혈당측정기 패치를 붙이고 자신이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 분석해 식습관에 반영하는 청년들도 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건강 열풍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자기 자신을 프로젝트처럼 관리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의 증상으로 봅니다. 시간이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몸, 감정, 관계, 미래를 끊임없이 투자 대비 효율로 계산하게 됩니다. 공부, 자격증, 운동, 재테크, 포트폴리오, 이직 준비, 건강관리는 미래의 보상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반대로 연애와 섹스는 보상이 불확실합니다. 돈이 들고, 시간이 들고, 감정노동이 들고, 거절과 상처의 가능성이 있으며, 때로는 특히 여성에게 폭력과 낙인의 위험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는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동시에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청년들이 단순히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거나,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두고 ‘청년들이 개인주의적이어서 그렇다’, ‘스마트폰과 포르노 때문 아니냐’, ‘페미니즘 때문에 남녀가 갈라진 것 아니냐’는 설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들은 현상의 일부 혹은 결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포르노, 데이트 앱,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은 각각 단독 원인이 아니라, 이미 불안정해진 경제·주거·노동·안전 조건 위에서 친밀성의 비용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4.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과 성욕마저 줄이는 사회
인간은 연결을 통해 살아갑니다. 친밀한 관계는 행복감, 안정감, 인정받는 감각, 돌봄받고 돌보는 감각을 줍니다. 성적 관계 역시 단지 생식이나 쾌락만이 아니라 몸을 통해 나누는 연결감, 친밀감, 긴장 완화, 소통, 놀이, 감정의 교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이 연결감으로 인한 행복감과 성욕마저 줄이거나 포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관계를 맺는 능력보다 성과를 내는 능력이 먼저 요구됩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우는 것, 감정을 조율하는 것, 약속을 잡고 이동하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상대의 욕구를 살피는 것 모두가 노동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섹스는 하고 싶어도 데이트와 썸을 시작하고 연애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과 노력은 피하고 싶어집니다. 관계는 즐거움이면서 동시에 비용이 되고, 성은 욕구이면서 동시에 위험 관리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욕의 감소’와 ‘파트너 섹스의 감소’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욕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타인과 얽히는 방식의 비용이 커졌기 때문에 자위, 포르노, 섹스토이, 디지털 친밀감, 혹은 일회성 관계로 이동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의 책임과 감정노동은 피하고 원나잇 스탠드(One-night stand)나 FWB(Friends with benefits)와 같은 감정 배제형 관계를 찾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접촉과 관계를 피하고 자기 혼자 해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것은 성욕의 소멸이라기보다 성적 욕구의 이동과 재배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할 정확한 질문은 ‘왜 관계 안에서 욕구를 나누는 일이 어려워졌는가?’, ‘왜 친밀성이 즐거움이 아니라 비용과 위험으로 경험되는가?’, ‘욕구는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입니다.
5. 경제적 이유: 연애와 섹스도 계급의 문제다
연애와 섹스는 흔히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매우 물질적인 조건 위에 놓여 있습니다. 데이트를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안전하게 머물 공간이 필요합니다. 주거 독립이 어려우면 친밀한 관계를 사적으로 만들 공간도 줄어듭니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 고용은 관계를 시도할 심리적 여유를 빼앗습니다.
미국 연구에서 저소득, 파트타임 또는 무직이라는 사회경제적 위치가 성적 비활동과 관련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도 결혼하지 않는 이유의 상위가 결혼 자금 부족, 출산과 양육 부담, 고용 불안정으로 나타납니다. 한국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는 결혼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연애는 곧 돈을 써야 하는 일이고, 결혼 가능성을 묻는 일이며, 미래의 가족 형성 비용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결국 데이트, 연애, 성관계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이 됩니다. 안정적인 소득, 독립된 주거, 이동할 시간,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는 친밀성이 가능성으로 열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친밀성 자체가 부담과 실패의 가능성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의 성적 행동 변화는 계급의 문제, 주거의 문제, 고용의 문제와 분리해서 볼 수 없습니다. 친밀성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분되는 조건의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친밀성 격차’는 단지 누가 연애를 더 많이 하고 덜 하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가 안전하게 관계를 시도할 수 있는가, 누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여유가 있는가, 누가 자신의 몸과 감정과 시간을 보호하면서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6. 데이트 앱, 자위, 성구매, 원나잇: 욕구는 어디로 이동하는가
그렇다면 성욕은 어디로 갈까요? 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계 맺기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보면, 우리는 몇 가지 이동 경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포르노 시청과 자위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조율하지 않아도 되고, 거절당하지 않아도 되며, 돈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듭니다. 물론 우리는 포르노가 성적 상상력과 관계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여성혐오적·폭력적 스크립트를 어떻게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르노와 자위가 파트너와의 성적 행동과 만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또 하나는 데이트 앱과 일회성 관계입니다. 데이트 앱과 플랫폼은 일회성 만남의 접근성을 높였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성적 기회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모, 나이,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질병, 소득 수준 등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배제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피로와 위험이 됩니다. 앱은 만남을 쉽게 만들지만 동시에 선택의 과부하, 평가받는 피로감, 외모와 스펙 중심의 경쟁, 불신과 불안을 키울 수 있습니다. 기술은 친밀성을 해방하기도 하지만, 친밀성을 더 시장화하고 서열화할 수도 있습니다.
성구매 역시 일부 남성들에게는 “관계 없이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구매는 친밀성의 대안이 아니라, 친밀성의 붕괴가 시장과 젠더 권력 안에서 조직되는 방식입니다. 성매매는 경제적 취약성, 젠더 권력, 성착취 구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과 동의를 협상하는 관계를 회피하면서 구매를 통해 접근하는 성은, 자본주의가 욕구와 여성을 상품으로 조직하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구의 이동을 단순히 개인의 취향 변화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자위, 포르노, 앱, 원나잇, 성구매는 모두 “관계의 비용이 커진 사회에서 욕구가 어디로 배치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7. 한국 사회의 젠더폭력과 여성들의 안전 전략
한국 사회에서 비연애·비섹스는 젠더폭력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여성들에게 데이트, 썸, 연애, 원나잇, 성관계는 단지 설렘과 쾌락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 성폭력, 스토킹, 불법촬영과 유포, 디지털 성범죄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평생 한 번 이상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의 비율이 36.1%로 보고되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낙인의 문제도 있습니다. 남성에게 성경험은 때로 자랑이 되지만, 여성에게 성경험은 여전히 평가와 낙인의 대상이 됩니다. 같은 성적 행동도 남성에게는 능력으로 읽히고 여성에게는 문란함으로 읽히는 성적 이중규범이 작동합니다. 여성들이 연애와 성관계를 조심하고, 비혼과 비출산, 비연애와 비섹스를 선택하는 것은 단지 남성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안전을 지키기 위한 판단이고, 삶과 커리어를 지키기 위한 판단이며, 폭력과 착취를 피하기 위한 판단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4B 운동이 이야기될 때도 이 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이기적인 여성들의 남성 거부”로 읽는 것은 너무 단순합니다. 많은 여성들에게 그것은 생존의 언어입니다.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여전히 커리어 중단, 돌봄노동 전가, 경제적 의존, 삶의 자율성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선배 여성들의 삶을 통해 학습하고 있습니다. 비연애와 비섹스는 이 학습의 결과이자 안전 전략입니다.
동시에 남성 청년들의 경험도 더 섬세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 청년들 역시 경쟁사회 안에서 경제력과 외모 그리고 로맨틱 연애 각본을 수행할 능력을 요구받습니다. ‘인셀’, 즉 비자발적 독신자라는 말이 특히 온라인 남성문화 안에서 강한 모욕처럼 쓰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너 여자 못 만나봤지?”, “앞으로도 계속 못 만날 거야”라는 조롱은 단순히 연애 경험이 없다는 놀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너는 능력 없는 남자다”, “쓸모없는 인간이다”라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이성애 관계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남성성, 경제력, 외모, 사회적 성공의 증명처럼 여겨집니다.
이때 남성 청년들이 경험하는 박탈감 자체를 조롱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 박탈감이 여성에 대한 권리 요구나 혐오로 향할 때, 문제는 더 깊어집니다. 이러한 압박을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남성성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때, 일부 남성들은 친밀성의 실패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고 저항하는 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기도 합니다. ‘일부의 돈 많고 잘생긴 남성들이 여성들을 독차지하고 있다’, ‘여자들이 눈이 너무 높다’, ‘여자들이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와 같은 믿음이 여성혐오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여성에게 다시 돌봄과 성적 접근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해로운 남성성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성성 자체를 돌봄, 동의, 평등, 감정표현의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8. 성교육과 성건강의 과제: 연애 장려가 아니라 조건 개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청년들의 성적 비활동을 병리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삶, 연애하지 않는 삶, 결혼하지 않는 삶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무성애와 비연애, 비섹스는 그 자체로 비정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자유롭고 안전하며 존엄한가입니다.
둘째, 동시에 ‘선택’이라는 말만으로 구조적 제약을 가리면 안 됩니다. 청년들이 연애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 불안정, 주거 불안, 장시간 노동, 경쟁 압박, 젠더폭력의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책은 청년들에게 “연애하세요, 결혼하세요, 아이 낳으세요”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주거, 노동, 생계의 안정 그리고 안전과 상호 돌봄의 보장, 성평등 문화로 바꿔야 합니다.
셋째, 성건강 접근은 더 넓어져야 합니다. 성관계 빈도가 줄어든다고 해서 성건강 위험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드물게 하는 성관계일수록 피임과 동의, STI 검사, 성적 의사소통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섹스를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보다, 원할 때 안전하게 할 수 있는가, 원하지 않을 때 거절할 수 있는가, 거절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 폭력과 낙인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넷째, 포괄적 성교육으로 성교육을 몸의 변화나 성적 행동에 대한 교육을 넘어 친밀성 교육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포괄적 성교육은 단지 피임법이나 성병 예방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닙니다.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소수자를 만드는 교육’도 아닙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거절할 수 있는 능력, 거절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감정을 조율하는 능력, 동의와 경계를 존중하는 능력, 폭력을 알아차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결국 포괄적 성교육은 ‘성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친밀성 문해력(Intimacy Literacy)”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타인의 경계를 읽고, 거절하고, 거절을 받아들이고, 안전한 관계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성교육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더 많이 연애하고 더 많이 섹스하라고 말하는 교육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관계를 맺거나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교육입니다.
다섯째, 연구와 조사의 프레임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 1년 성관계를 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계 상태, 성적 끌림과 무성애 정체성, 파트너 성행동의 유형, 자위와 온라인 성활동, 만남 경로, 주관적 만족과 원함/원치 않음, 동의와 안전, 폭력 경험을 함께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연애와 비섹스를 문제로 낙인찍지 않으면서도, 구조적 고립과 위험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9. 결론: 섹스의 양이 아니라 친밀성의 조건을 묻자
정리해 보겠습니다. 청년들의 비연애·비섹스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몸과 시간과 감정이 점점 더 관리되고 소진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청년들은 자기계발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고,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관계의 비용을 계산해야 하며, 특히 여성들은 젠더폭력과 낙인의 위험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못하고, 어떤 이들은 미루고, 어떤 이들은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와 우리 사회가 왜 사랑과 성, 관계와 돌봄을 이렇게 비싸고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연결감, 행복감, 성적 즐거움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라면, 문제는 청년들의 욕망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입니다. 오늘 함께 고민하고 싶은 질문은 “청년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입니다. 성적 행동은 해야만 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자유와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동의할 수 있는 조건과 거절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폭력과 빈곤과 낙인 없이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관계 그리고 성적 행동에 대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그리고 가질 수 있어야 할 자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자유,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청년들의 비연애와 비섹스는 지금의 사회가 친밀성을 얼마나 비싸고 위험하고 불평등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섹스의 양이 아니라 친밀성의 조건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을 더 안전하고, 더 평등하고, 더 존엄하게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제안하고 싶은 “친밀성 정의(Intimacy Justice)”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사용한 ‘친밀성 격차’, ‘친밀성 문해력’, ‘친밀성 정의’라는 표현은 아직 널리 표준화된 학술 용어라기보다, 청년들의 비연애·비섹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제안하는 분석적 언어입니다.
이 개념들은 성적 권리, 성정의, 재생산정의, 장애정의, 포괄적 성교육의 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밀성 격차(Intimacy Gap)는 단순히 개인 간 애정의 거리나 관계의 소원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는 친밀성 불평등(Intimacy Inequality), 곧 누군가는 안전하고 평등하며 존엄하게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돈, 시간, 주거, 노동조건, 젠더폭력, 낙인 때문에 친밀성에 접근하기 어려운 조건의 불평등을 뜻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성욕이 줄어든 세대가 아니라, 친밀성 격차가 커진 사회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연애와 섹스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친밀성 정의(Intimacy Justice)입니다.
이를 위해 성교육은 단지 피임법이나 성병 예방을 넘어 친밀성 문해력(Intimacy Literacy)을 기르는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친밀성 문해력이란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타인의 경계를 읽고, 동의를 소통하고, 거절하고, 거절을 받아들이며, 안전한 관계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제가 이 세 가지 언어를 통해 묻고자 하는 것은 성관계의 양이 아니라, 누가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친밀성을 선택할 수 있는가입니다.
* 〈비연애·비섹스 시대의 청년들〉, 대한성학회 2026년 춘계 학술대회 [영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