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정신을 말하는 정치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지방선거 직후, 나는 다시 정치의 방향을 묻는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는 누구의 삶을 향할 것인가. 혐오를 비판하는 말이 선거의 언어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 정치는 법과 제도로 답해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일베와 같은 사이트에서 조롱과 혐오가 방치·조장되는 문제, 혐오표현 처벌과 징벌배상, 사이트 폐쇄, 과징금 등 필요한 조치를 공론화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발언을 환영한다. 역사적 국가폭력의 피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노무현 전 대통령,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민들, 그리고 지금도 온라인과 일상에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통을 더 이상 “장난”이나 “밈”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사이트 폐쇄와 같은 강한 조치는 엄격한 법적 근거와 독립적 판단 절차, 권한 남용을 막는 민주적 통제 속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 혐오에 맞선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표현 공간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 그리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모욕하는 역사왜곡을 방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일베 폐쇄 검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또한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특정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해서 “일베 문화”, “혐오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혐오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것이다. 혐오의 언어는 또 다른 농담, 또 다른 밈, 또 다른 은어, 또 다른 정치적 구호로 변형될 것이다. 문제는 하나의 사이트가 아니라, 혐오가 돈이 되고, 분노가 표가 되고, 조롱이 놀이가 되는 사회구조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의 끝부분만 자르는 일이 아니다. 혐오가 자라나는 뿌리를 보아야 한다. 그 뿌리의 이름은 차별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차별금지법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차별과 혐오를 비판했던 것이 선거용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정치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차별받는 사람들의 곁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 뒤로 숨을 것인가.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차별로 볼 것인지, 어떤 차별을 예방할 것인지, 피해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정하는 기본법이다. 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재화와 용역 등 삶의 주요 영역에서 누구도 장애, 질병, 나이, 가족의 형태, 고용의 형태,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출신국가,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배제되거나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도록 하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차별금지법은 추상적인 선언에 그치는 법이 아니다. 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차별을 예방할 책무를 지며, 학교와 일터와 행정 현장에서 차별을 줄이기 위한 교육과 제도를 마련하게 하는 법이다. 또한 차별 피해자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상담, 조사, 시정 권고, 구제 절차의 근거를 만드는 법이다. 혐오가 발생한 뒤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가 자라나는 차별의 조건을 줄여가는 법이다.
혐오표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차별 구조, 불평등한 제도, 배제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혐오표현만 처벌하는 법을 만들고 차별금지법을 피한다면, 잎만 자르고 뿌리는 남겨두는 일이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혐오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만이 아니라, 차별을 “어떻게 정의하고 줄여갈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결단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미 문제를 알고 있다. 5·18 역사 왜곡, 이주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 여성혐오, 장애인 혐오, 가짜뉴스, 극우 플랫폼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 선거 때마다 혐오가 어떻게 동원되는지도 알고 있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우리 대 그들”의 구도로 단순화하고,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조롱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얼마나 쉽게 정치적 결집을 만들어내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민주당은 압도적인 국정 지지율과 의회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에 이르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다. 진보정당들까지 합치면 국민의힘의 협조 여부와 무관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의회 지형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반대 때문’이라는 말,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결국 민주당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높고, 민주당은 국회 제1당으로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심사하고 통과시킬 정치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 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인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정치세력이 결국 민주당이었다는 기록을 한국 정치사에 몇 번이나 더 남길 것인가.
민주당은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에 숨지 말라. 차별받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다.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너무 자주 “더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사용되어 왔다. 인권은 다수의 허락을 받아야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누군가의 기분과 눈치를 살피며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게다가 그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하는 역할이 바로 정치인들의 역할이다.
민주당은 더 이상 차별금지법을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으로 왜곡하는 세력들의 눈치를 보지 말라.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그러나 성소수자도 당연히 포함하는 법이다. 이 두 문장을 동시에 말해야 한다.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성소수자를 지워서는 안 된다. 성소수자를 포함한다고 해서 법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민주당의 용기와 책임이 드러난다.
민주당은 더 이상 특정 종교 세력의 혐오 동원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수용하지 말라. 종교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짜뉴스와 공포정치의 대상으로 만들고 여성, 장애인, 이주민, 난민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일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인의 사적 신앙은 존중될 수 있지만, 그 신앙이 공적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신앙인이기 이전에 모든 시민을 대표하는 공적 책임을 가진 사람이다.
5·18을 기억한다고 말하는 정치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5·18 정신은 단지 과거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일이 아니다. 5·18은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만들었을 때, 시민들이 서로를 버리지 않았던 역사다. 광주는 국가가 보호하지 않은 자리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보호하고, 먹이고, 치료하고, 애도하며 공동체를 만들었던 도시였다. 그렇다면 오늘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 이 사회에서 누가 버려지고 있는지 묻는 일이어야 한다. 민주당이 오월정신의 정당이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오늘도 누군가는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민폐”라는 이름으로, “위협”이라는 이름으로, “비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다. 장애인은 이동할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조롱당한다. 성소수자는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된다. 이주민은 범죄와 위기의 상징으로 낙인찍힌다. 여성의 권리는 “갈등”이라는 말로 외면당한다. 가난한 사람과 아픈 사람은 자기 책임의 언어 속에서 지워진다. 역사적 국가폭력의 피해자와 유족은 여전히 조롱과 왜곡의 대상이 된다.
폭력은 총과 곤봉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폭력은 먼저 언어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폭도라고 부르고, 빨갱이라고 부르고, 민폐라고 부르고, 비정상이라고 부르고, 없어져도 되는 존재로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고통은 들리지 않게 된다. 이름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은 제거해야 할 문제가 되고, 들어야 할 고통은 침묵시켜도 되는 소음이 된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단지 하나의 법안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이 사회가 누구를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누구의 고통을 들을 것인가. 누구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것인가. 누구를 버리지 않을 것인가.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대답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요구한다.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라.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라.
지금 바로 국회 안에 실질적 입법 절차를 열라.
지금 바로 성소수자 혐오와 가짜뉴스에 동조해 온 정치적 침묵을 중단하라.
지금 바로 이주민 혐오, 장애인 혐오, 여성혐오, 역사 왜곡과 5·18 조롱에 맞서는 국가의 기준을 세우라.
지금 바로 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차별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약속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대통령의 말은 방향을 보여줄 수 있지만, 대통령의 언급만으로는 안 된다. 구조를 바꾸는 것은 법과 제도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제도로 이어지지 않으면 혐오는 또다시 정치적 계산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극우 세력은 자신들을 “탄압받는 피해자”로 포장할 것이고, 민주당은 또다시 “신중한 검토”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그 오래된 장면을 더 이상 반복해서 볼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차별금지법 하나로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다. 일베 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없이 혐오와 차별에 맞서겠다는 말은 국가가 기본적인 기준도 세우지 않은 채 시민들에게 알아서 버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육현장에서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교사들에게, 일터에서 차별을 겪는 노동자들에게, 학교와 거리와 온라인에서 조롱당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민주당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혐오를 선거 때만 비판할 것인가, 아니면 혐오가 자라나는 차별의 구조를 바꿀 것인가. 5·18을 기념식에서만 말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지키는 법을 만들 것인가.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승리로만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가장 쉽게 버려지는 사람을 중심에 놓는 정치로 다시 세울 것인가.
이제 대통령과 민주당은 답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미룰 것인가.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그것은 혐오에 맞서는 최소한의 정치다. 그것은 오월정신을 오늘의 제도로 잇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노동재해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노동자, 빈민,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그리고 계속해서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 모든 존재에게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경쟁보다 돌봄을, 체제보다 생명을, 배제가 아닌 포함을 선택하라.
민주당은 더 이상 미루지 말라.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말이 아니라 일정으로 답하라. 당론 채택, 상임위 논의, 공청회, 본회의 처리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의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라.

오월정신을 말하는 정치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지방선거 직후, 나는 다시 정치의 방향을 묻는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는 누구의 삶을 향할 것인가. 혐오를 비판하는 말이 선거의 언어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제 정치는 법과 제도로 답해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일베와 같은 사이트에서 조롱과 혐오가 방치·조장되는 문제, 혐오표현 처벌과 징벌배상, 사이트 폐쇄, 과징금 등 필요한 조치를 공론화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발언을 환영한다. 역사적 국가폭력의 피해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노무현 전 대통령,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민들, 그리고 지금도 온라인과 일상에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통을 더 이상 “장난”이나 “밈”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사이트 폐쇄와 같은 강한 조치는 엄격한 법적 근거와 독립적 판단 절차, 권한 남용을 막는 민주적 통제 속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 혐오에 맞선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표현 공간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 그리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모욕하는 역사왜곡을 방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일베 폐쇄 검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또한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특정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해서 “일베 문화”, “혐오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혐오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것이다. 혐오의 언어는 또 다른 농담, 또 다른 밈, 또 다른 은어, 또 다른 정치적 구호로 변형될 것이다. 문제는 하나의 사이트가 아니라, 혐오가 돈이 되고, 분노가 표가 되고, 조롱이 놀이가 되는 사회구조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의 끝부분만 자르는 일이 아니다. 혐오가 자라나는 뿌리를 보아야 한다. 그 뿌리의 이름은 차별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차별금지법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차별과 혐오를 비판했던 것이 선거용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정치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차별받는 사람들의 곁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 뒤로 숨을 것인가.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차별로 볼 것인지, 어떤 차별을 예방할 것인지, 피해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정하는 기본법이다. 고용, 교육, 행정서비스, 재화와 용역 등 삶의 주요 영역에서 누구도 장애, 질병, 나이, 가족의 형태, 고용의 형태,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출신국가,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배제되거나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도록 하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차별금지법은 추상적인 선언에 그치는 법이 아니다. 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차별을 예방할 책무를 지며, 학교와 일터와 행정 현장에서 차별을 줄이기 위한 교육과 제도를 마련하게 하는 법이다. 또한 차별 피해자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상담, 조사, 시정 권고, 구제 절차의 근거를 만드는 법이다. 혐오가 발생한 뒤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가 자라나는 차별의 조건을 줄여가는 법이다.
혐오표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차별 구조, 불평등한 제도, 배제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혐오표현만 처벌하는 법을 만들고 차별금지법을 피한다면, 잎만 자르고 뿌리는 남겨두는 일이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혐오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만이 아니라, 차별을 “어떻게 정의하고 줄여갈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결단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미 문제를 알고 있다. 5·18 역사 왜곡, 이주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 여성혐오, 장애인 혐오, 가짜뉴스, 극우 플랫폼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 선거 때마다 혐오가 어떻게 동원되는지도 알고 있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우리 대 그들”의 구도로 단순화하고,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조롱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얼마나 쉽게 정치적 결집을 만들어내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민주당은 압도적인 국정 지지율과 의회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에 이르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다. 진보정당들까지 합치면 국민의힘의 협조 여부와 무관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의회 지형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반대 때문’이라는 말,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결국 민주당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높고, 민주당은 국회 제1당으로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심사하고 통과시킬 정치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 때와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인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정치세력이 결국 민주당이었다는 기록을 한국 정치사에 몇 번이나 더 남길 것인가.
민주당은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에 숨지 말라. 차별받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다.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너무 자주 “더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사용되어 왔다. 인권은 다수의 허락을 받아야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누군가의 기분과 눈치를 살피며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게다가 그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하는 역할이 바로 정치인들의 역할이다.
민주당은 더 이상 차별금지법을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으로 왜곡하는 세력들의 눈치를 보지 말라.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그러나 성소수자도 당연히 포함하는 법이다. 이 두 문장을 동시에 말해야 한다.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성소수자를 지워서는 안 된다. 성소수자를 포함한다고 해서 법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민주당의 용기와 책임이 드러난다.
민주당은 더 이상 특정 종교 세력의 혐오 동원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수용하지 말라. 종교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짜뉴스와 공포정치의 대상으로 만들고 여성, 장애인, 이주민, 난민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일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인의 사적 신앙은 존중될 수 있지만, 그 신앙이 공적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신앙인이기 이전에 모든 시민을 대표하는 공적 책임을 가진 사람이다.
5·18을 기억한다고 말하는 정치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5·18 정신은 단지 과거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일이 아니다. 5·18은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만들었을 때, 시민들이 서로를 버리지 않았던 역사다. 광주는 국가가 보호하지 않은 자리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보호하고, 먹이고, 치료하고, 애도하며 공동체를 만들었던 도시였다. 그렇다면 오늘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 이 사회에서 누가 버려지고 있는지 묻는 일이어야 한다. 민주당이 오월정신의 정당이라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오늘도 누군가는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민폐”라는 이름으로, “위협”이라는 이름으로, “비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다. 장애인은 이동할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조롱당한다. 성소수자는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된다. 이주민은 범죄와 위기의 상징으로 낙인찍힌다. 여성의 권리는 “갈등”이라는 말로 외면당한다. 가난한 사람과 아픈 사람은 자기 책임의 언어 속에서 지워진다. 역사적 국가폭력의 피해자와 유족은 여전히 조롱과 왜곡의 대상이 된다.
폭력은 총과 곤봉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폭력은 먼저 언어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폭도라고 부르고, 빨갱이라고 부르고, 민폐라고 부르고, 비정상이라고 부르고, 없어져도 되는 존재로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고통은 들리지 않게 된다. 이름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은 제거해야 할 문제가 되고, 들어야 할 고통은 침묵시켜도 되는 소음이 된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단지 하나의 법안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이 사회가 누구를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누구의 고통을 들을 것인가. 누구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것인가. 누구를 버리지 않을 것인가.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대답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요구한다.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라.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라.
지금 바로 국회 안에 실질적 입법 절차를 열라.
지금 바로 성소수자 혐오와 가짜뉴스에 동조해 온 정치적 침묵을 중단하라.
지금 바로 이주민 혐오, 장애인 혐오, 여성혐오, 역사 왜곡과 5·18 조롱에 맞서는 국가의 기준을 세우라.
지금 바로 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차별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약속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대통령의 말은 방향을 보여줄 수 있지만, 대통령의 언급만으로는 안 된다. 구조를 바꾸는 것은 법과 제도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제도로 이어지지 않으면 혐오는 또다시 정치적 계산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극우 세력은 자신들을 “탄압받는 피해자”로 포장할 것이고, 민주당은 또다시 “신중한 검토”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그 오래된 장면을 더 이상 반복해서 볼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차별금지법 하나로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다. 일베 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없이 혐오와 차별에 맞서겠다는 말은 국가가 기본적인 기준도 세우지 않은 채 시민들에게 알아서 버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육현장에서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교사들에게, 일터에서 차별을 겪는 노동자들에게, 학교와 거리와 온라인에서 조롱당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버팀목이다.
민주당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혐오를 선거 때만 비판할 것인가, 아니면 혐오가 자라나는 차별의 구조를 바꿀 것인가. 5·18을 기념식에서만 말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지키는 법을 만들 것인가.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승리로만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가장 쉽게 버려지는 사람을 중심에 놓는 정치로 다시 세울 것인가.
이제 대통령과 민주당은 답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미룰 것인가.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그것은 혐오에 맞서는 최소한의 정치다. 그것은 오월정신을 오늘의 제도로 잇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노동재해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노동자, 빈민,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그리고 계속해서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 모든 존재에게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경쟁보다 돌봄을, 체제보다 생명을, 배제가 아닌 포함을 선택하라.
민주당은 더 이상 미루지 말라.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말이 아니라 일정으로 답하라. 당론 채택, 상임위 논의, 공청회, 본회의 처리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의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