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모두의 오월”을 만들어 낸 이야기
[모두를 위한 화장실, 상상하기] 전시 후기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2026년 5월, 광주 전일빌딩245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상상하기 : 2026 광주〉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5월 7일 저녁 6시에 시작해 5월 27일 오후 5시까지 20일간 이어졌다. 전일빌딩을 찾은 시민들, 활동가들, 학생들, 관광객들은 ‘화장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 앞에서 잠시 멈춰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화장실의 ‘당연함’에 대해 의심하고 새로운 화장실에 대해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전시는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지난 2024년 8월부터 9월까지 서울, 울산, 공주에서 진행했던 참여형 전시 〈화장실, 상상하기〉의 광주 버전이었다. 특히 오월에 전일빌딩에서 이 전시를 열었다는 점이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역사적인 공간에서 의미있는 전시를 가능하게 만든 한 활동가의 오래된 꿈과 그 꿈을 이루어낸 실행과 연대를 소개하고 싶다.

ⓒ 전일빌딩245 https://www.gwangju.go.kr/jeonil/
“모두의 오월”이라는 말 앞에서 멈춰 선 한 사람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민중항쟁 44주년이었던 당시 기념행사의 슬로건은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이었다. 당시 광주인권지기활짝에서 활동하던 유진(바리) 활동가는 이 문장을 보며 ‘“모두의 오월”이라는 표현이 정말 “모두”를 포함하고 있을까? 여성도,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배제되지 않는 진짜 모두의 오월을 만들 순 없을까?’생각했다.
우리는 ‘모두’라는 표현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표현과 달리 배제되는 사람이 생길 때가 많다.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배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사람”안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모두”에도 없는 것 뿐이다.
유진님은 당시 광주인권지기활짝 활동가였는데, 활짝을 통해 “모두의 오월, 퀴어도 장애도 여성도 하나 되는 오월”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 성명서는 오월정신이 정말 민주주의의 정신이라면, 그것은 어떤 사람도 배제하지 않는 정신이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이자, 모두의 오월이라는 말 안에 실제로 모든 사람이 들어오게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유진님은 그때부터 언젠가 광주의 오월을 정말 모두가 포함되는 행사를 만들고 싶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광주인권지기활짝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을 전개해 오던 유진님은 2년 전 서울에서 진행된 ‘화장실 상상하기’ 전시에 와서 “언젠가 이 전시를 광주에서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6년, 그 꿈은 전일빌딩에서 현실이 되었다.
이충열 작가와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연대
지난 3월, 지금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유진님으로부터 5월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시를 광주에서 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유진님께 처음 제안이 왔을 때, 현실적인 조건은 넉넉하지 않았다. 이충열 작가의 노동,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들의 노동, 전시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계산한다면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나의 첫 반응은 ‘그 예산으로는 할 수 없다’였다. 이충열 작가는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뜻 전시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전시 물품에 필요한 돈과 교통비, 택배비 등 꼭 필요한 비용만 있으면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도 그 뜻에 함께하기로 했다. 2년 전 제작했던 전시 물품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만들어 내기로 했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공간과 계기를 만들었고, 광주의 뜻을 함께 하는 단체들(광주여성민우회, 광주인권지기활짝,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호남지역 성소수자부모모임)이 후원으로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한 활동가의 꿈은 여러 사람의 연대를 만나 전시가 되었다.
이것이 사회운동의 아름다움이자, 동시에 사회운동의 어려움이다. 변화는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되지만, 결코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이 그 질문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위해 자신의 자원과 시간을 내어놓을 때, 우리는 사회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

화장실을 상상한다는 것
전시장에 들어서면 참여자(관람객)들은 먼저 기존 공중화장실의 일반적인 규격을 재현한 좁은 공간을 통과하게 된다.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좁고 답답하다. 몸을 돌리기도 어렵고, 누군가와 함께 들어가기엔 불가능에 가깝다. 그 공간의 벽면에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보내온 화장실 경험들이 적혀 있었다. 불편함, 불안함, 수치심, 두려움, 망설임, 포기. 누군가에게 화장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장소였다.


그다음 공간에서는 ‘공중화장실 권력지도’를 그려볼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기존 공중화장실이 상정해 온 “정상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며,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자신이 갖지 못한 권력을 시각적으로 표시했다. 화장실은 모두에게 같은 공간이 아니었다. 성별, 장애, 나이, 키, 몸의 상태, 돌봄 관계, 임신 여부, 월경 여부, 젠더 정체성, 안전에 대한 감각에 따라 화장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이어지는 참여 공간에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서 그 “모두”에 포함되어야 할 이웃을 직접 적어보게 했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했다. ‘모두’라는 말이 공허한 수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동안 ‘모두’에서 빠져 있었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불러와야 한다. 누구를 빠뜨렸는지, 누구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누구의 몸과 이동과 돌봄과 안전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전시장 한쪽에는 영국의 체인징 플레이스 화장실 기준을 참고한 4m×3m 규모의 실제 크기 화장실 도면이 구현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실제 크기의 공간이 시트지로 표시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빔 프로젝션을 통해 화장실 공간이 재현되었다. 이 공간은 장애인 혼자만이 아니라, 활동지원사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 영유아와 양육자, 노인과 돌봄 제공자, 다양한 몸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어떤 크기와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 몸으로 느끼게 했다.

다음 순서로는 국내외에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사례들이 사진으로 소개되었다. 학교, 공원, 공항, 공공기관, 백화점, 아울렛 등 여러 공간에 이미 설치된 사례들을 보며 참여자들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에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보편화된 세상’에 대해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여자는 ‘최근 친구 어머니가 장루주머니를 착용하게 되셨다. 자신에게서 냄새가 날까봐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신다. 집 밖에서도 어디에서나 장루주머니를 세척할 수 있어 장루주머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외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보편화된 세상은 여성이 어디에서나 안전한 사회일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어린이 참여자들 중에는 ‘학교에서 똥을 싸도 놀리지 않는 사회’라고 쓴 어린이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어릴적 경험이 떠오르며 배변과 놀림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다양한 몸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나의 트랜스 친구들이 어디에서나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세상’ 등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통해 만들어질 새로운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계획하는 시간이었다.

워크숍, 강연, 토끼똥 게임, 그리고 도슨트
5월 17일에는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는 먼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역사와 필요성, 국내외 사례를 나누는 미니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어 연구소가 만든 보드게임 ‘토끼똥 게임’을 통해 참여자들은 화장실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함께 이야기했다. 화장실은 단순한 시설 문제가 아니라 안전, 돌봄, 이동, 존엄, 몸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게임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후에는 이충열 작가가 직접 전시 도슨트를 진행했다. 전시를 만든 사람이 직접 공간을 안내하고, 관람객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은 전시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특별한 장면도 있었다. 대만에서 온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찾았고, 통역사의 도움으로 이들에게도 도슨트가 진행되었다. 광주의 5·18 정신과 민주주의,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을 배우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이야기가 함께 전달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화장실을 통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장면이 나에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국가폭력에 저항한 시민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에서, 오늘의 민주주의가 누구를 포함해야 하는지 묻는 장면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광주에서 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별한 순간이었다.

“성중립화장실”을 넘어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참여자는 “성중립화장실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말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성중립화장실이라고 하면 성소수자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개념을 접하며 그 공간이 장애인에게도, 어린이와 양육자에게도, 노인에게도, 돌봄을 주고받는 모두에게도 필요한 공간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광주에서, 그것도 오월에, 전일빌딩에서 이런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이슈라고 여겨졌던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시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의 주관 행사로 열렸다는 것 자체가 광주 민주주의의 확장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였다.
SNS에서도 전시를 다녀간 사람들의 후기 포스팅을 볼 수 있다. 한 시민은 “입장하자마자 실제 화장실만큼의 좁은 공간감으로 생활 속 불편함을 체감시켜준다”고 썼다. 그 불편함은 모두의 것이고, 여성의 것이고, 퀴어의 것이고, 장애인의 것이고, 돌보는 자의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전일빌딩에 들렀다가 전시를 보고 “지금의 화장실이 배제하고 있는 ‘모두’에는 또 누가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남겼다.
방명록에도 마음이 오래 머무는 문장들이 남아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낯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평소 ‘화장실이 이 정도면 되지’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랬던 나와 이런 사회가 너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체감하지 못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불편함과 문제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좋은 전시 감사합니다.”
이런 후기들을 통해 사람들이 지식으로만이 아닌 몸의 감각으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필요성을 느끼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누군가를 특별히 배려하기 위해 만드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좁게 상상해 온 ‘공공성’을 다시 짓는 일이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는지, 누구의 존재를 불편한 예외로 취급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공공(公共) 공간이 어떻게 구상돼야 하는지 알게 된다.
전시가 이루어진 전일빌딩245의 3층의 장애인화장실 두 칸은 16일과 17일 양일간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운영되었다. 여성 장애인 화장실과 남성 장애인 화장실 두 칸을 성별 구분 없이 성별, 성별정체성, 장애, 질병, 나이 등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한 것이다. 실제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표지판을 가지고 있는 화장실을 처음 보고 느끼고 사용한 참여자들은 “너무 좋다”, “감격스럽다”, “전시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렇게 운영되면 좋겠다”와 같은 말을 했다.

오월정신은 포함의 민주주의다
광주의 오월정신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월정신은 지금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계속 묻는 정신이다. 국가폭력에 맞서 시민들이 서로를 지키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공동체를 만들고, 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고, 돌봄을 조직했던 오월정신은 돌봄의 민주주의이다.
돌봄 민주주의는 누구도 혼자 버려두지 않는 민주주의다. 어느 누구도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민주주의는 어떤 사람도 ‘나중에’, ‘예외적으로’, ‘부차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포함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정말 민주주의이려면, 그것은 다수의 사람만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가장 쉽게 밀려나는 사람들의 삶까지 중심에 두는 사회여야 한다.
그러므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단순히 화장실 하나를 더 만들자는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장애인이 외출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노인이 두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사회, 어린이와 양육자가 함께 존중받는 사회,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공공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바로 그런 사회를 향한 가장 구체적인 입구다.
전일빌딩에서 이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오월의 광주에서 “모두”라는 말을 다시 묻는 일.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가 아직 포함하지 못한 몸들을 초대하는 일. 총탄의 흔적이 남은 건물 안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공공간을 상상하는 일. 이것은 기억의 확장이자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한 활동가의 꿈이 사회를 움직일 때
이번 전시는 유진님의 2년 전 질문 “왜 여성은, 장애인은, 성소수자는, 이 ‘모두의 오월’에 충분히 포함되지 못할까?”에서 시작되었다. 그 질문은 성명서가 되었고, 꿈이 되었고, 계획이 되었고, 마침내 전시가 되었다.
유진님은 자신이 일하게 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안에서 이 전시를 구체적으로 추진했다. 전일빌딩이라는 공간을 연결했고, 한국다양성연구소와 이충열 작가에게 연락했고, 예산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후원단체들을 모았다. 그렇게 2년 전 “언젠가 광주에서도 이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한 활동가의 바람은 실제로 오월 광주의 한복판에 놓였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주관행사로 홈페이지에 일정표, 게시물, 사진, 영상으로 소개되었다.
이 장면은 나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한 명의 활동가가 꾸는 꿈은 결코 작지 않다. 한 사람이 어떤 질문을 품는지, 어떤 사회를 상상하는지, 어떤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지가 공동체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이 주변의 연대와 만날 때, 그것은 한 사람의 바람을 넘어 사회적 사건이 된다.
화장실은 정상의 몸과 비정상의 몸을 나누는 사회의 문제이고, 안전의 문제이고, 존엄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문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을 일부의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모두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상상하며 공공성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라는 말을 더 정확하고 더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화장실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배울 수 있다.
정말로 모두의 오월이 되기 위해서, 정말로 모두의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 정말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을 공간으로, 제도로, 관계로, 운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바로 그 상상의 시작이다.
나는 오늘, 광주광역시청에, 전일빌딩245에, 김대중컨벤션센터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2026 광주, 〈모두를 위한 화장실, 상상하기〉
전시 기획 : 이충열
전시 디자인 : 한나
전시 설치 : 그린, 예주, 화사
도움주신 분 : 베니, 유진
장소 협조 : 전일빌딩245
주관·주최 : 한국다양성연구소,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후원 : 광주여성민우회, 광주인권지기활짝,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호남지역 성소수자부모모임
🔗 2024년 〈화장실, 상상하기〉 온라인 전시(바로가기)

진짜 “모두의 오월”을 만들어 낸 이야기
[모두를 위한 화장실, 상상하기] 전시 후기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2026년 5월, 광주 전일빌딩245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상상하기 : 2026 광주〉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5월 7일 저녁 6시에 시작해 5월 27일 오후 5시까지 20일간 이어졌다. 전일빌딩을 찾은 시민들, 활동가들, 학생들, 관광객들은 ‘화장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 앞에서 잠시 멈춰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화장실의 ‘당연함’에 대해 의심하고 새로운 화장실에 대해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전시는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지난 2024년 8월부터 9월까지 서울, 울산, 공주에서 진행했던 참여형 전시 〈화장실, 상상하기〉의 광주 버전이었다. 특히 오월에 전일빌딩에서 이 전시를 열었다는 점이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역사적인 공간에서 의미있는 전시를 가능하게 만든 한 활동가의 오래된 꿈과 그 꿈을 이루어낸 실행과 연대를 소개하고 싶다.
ⓒ 전일빌딩245 https://www.gwangju.go.kr/jeonil/
“모두의 오월”이라는 말 앞에서 멈춰 선 한 사람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민중항쟁 44주년이었던 당시 기념행사의 슬로건은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이었다. 당시 광주인권지기활짝에서 활동하던 유진(바리) 활동가는 이 문장을 보며 ‘“모두의 오월”이라는 표현이 정말 “모두”를 포함하고 있을까? 여성도,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배제되지 않는 진짜 모두의 오월을 만들 순 없을까?’생각했다.
우리는 ‘모두’라는 표현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표현과 달리 배제되는 사람이 생길 때가 많다.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배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사람”안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모두”에도 없는 것 뿐이다.
유진님은 당시 광주인권지기활짝 활동가였는데, 활짝을 통해 “모두의 오월, 퀴어도 장애도 여성도 하나 되는 오월”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 성명서는 오월정신이 정말 민주주의의 정신이라면, 그것은 어떤 사람도 배제하지 않는 정신이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이자, 모두의 오월이라는 말 안에 실제로 모든 사람이 들어오게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유진님은 그때부터 언젠가 광주의 오월을 정말 모두가 포함되는 행사를 만들고 싶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광주인권지기활짝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을 전개해 오던 유진님은 2년 전 서울에서 진행된 ‘화장실 상상하기’ 전시에 와서 “언젠가 이 전시를 광주에서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6년, 그 꿈은 전일빌딩에서 현실이 되었다.
이충열 작가와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연대
지난 3월, 지금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유진님으로부터 5월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시를 광주에서 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유진님께 처음 제안이 왔을 때, 현실적인 조건은 넉넉하지 않았다. 이충열 작가의 노동,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들의 노동, 전시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계산한다면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나의 첫 반응은 ‘그 예산으로는 할 수 없다’였다. 이충열 작가는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뜻 전시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전시 물품에 필요한 돈과 교통비, 택배비 등 꼭 필요한 비용만 있으면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도 그 뜻에 함께하기로 했다. 2년 전 제작했던 전시 물품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만들어 내기로 했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공간과 계기를 만들었고, 광주의 뜻을 함께 하는 단체들(광주여성민우회, 광주인권지기활짝,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호남지역 성소수자부모모임)이 후원으로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한 활동가의 꿈은 여러 사람의 연대를 만나 전시가 되었다.
이것이 사회운동의 아름다움이자, 동시에 사회운동의 어려움이다. 변화는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되지만, 결코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이 그 질문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위해 자신의 자원과 시간을 내어놓을 때, 우리는 사회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
화장실을 상상한다는 것
전시장에 들어서면 참여자(관람객)들은 먼저 기존 공중화장실의 일반적인 규격을 재현한 좁은 공간을 통과하게 된다.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좁고 답답하다. 몸을 돌리기도 어렵고, 누군가와 함께 들어가기엔 불가능에 가깝다. 그 공간의 벽면에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보내온 화장실 경험들이 적혀 있었다. 불편함, 불안함, 수치심, 두려움, 망설임, 포기. 누군가에게 화장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장소였다.
그다음 공간에서는 ‘공중화장실 권력지도’를 그려볼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기존 공중화장실이 상정해 온 “정상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며,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자신이 갖지 못한 권력을 시각적으로 표시했다. 화장실은 모두에게 같은 공간이 아니었다. 성별, 장애, 나이, 키, 몸의 상태, 돌봄 관계, 임신 여부, 월경 여부, 젠더 정체성, 안전에 대한 감각에 따라 화장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이어지는 참여 공간에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서 그 “모두”에 포함되어야 할 이웃을 직접 적어보게 했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했다. ‘모두’라는 말이 공허한 수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동안 ‘모두’에서 빠져 있었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불러와야 한다. 누구를 빠뜨렸는지, 누구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누구의 몸과 이동과 돌봄과 안전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전시장 한쪽에는 영국의 체인징 플레이스 화장실 기준을 참고한 4m×3m 규모의 실제 크기 화장실 도면이 구현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실제 크기의 공간이 시트지로 표시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빔 프로젝션을 통해 화장실 공간이 재현되었다. 이 공간은 장애인 혼자만이 아니라, 활동지원사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 영유아와 양육자, 노인과 돌봄 제공자, 다양한 몸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어떤 크기와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 몸으로 느끼게 했다.
다음 순서로는 국내외에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사례들이 사진으로 소개되었다. 학교, 공원, 공항, 공공기관, 백화점, 아울렛 등 여러 공간에 이미 설치된 사례들을 보며 참여자들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에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보편화된 세상’에 대해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여자는 ‘최근 친구 어머니가 장루주머니를 착용하게 되셨다. 자신에게서 냄새가 날까봐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신다. 집 밖에서도 어디에서나 장루주머니를 세척할 수 있어 장루주머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외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보편화된 세상은 여성이 어디에서나 안전한 사회일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어린이 참여자들 중에는 ‘학교에서 똥을 싸도 놀리지 않는 사회’라고 쓴 어린이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어릴적 경험이 떠오르며 배변과 놀림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다양한 몸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나의 트랜스 친구들이 어디에서나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세상’ 등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통해 만들어질 새로운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계획하는 시간이었다.
워크숍, 강연, 토끼똥 게임, 그리고 도슨트
5월 17일에는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는 먼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역사와 필요성, 국내외 사례를 나누는 미니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어 연구소가 만든 보드게임 ‘토끼똥 게임’을 통해 참여자들은 화장실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함께 이야기했다. 화장실은 단순한 시설 문제가 아니라 안전, 돌봄, 이동, 존엄, 몸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게임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후에는 이충열 작가가 직접 전시 도슨트를 진행했다. 전시를 만든 사람이 직접 공간을 안내하고, 관람객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은 전시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특별한 장면도 있었다. 대만에서 온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전시장을 찾았고, 통역사의 도움으로 이들에게도 도슨트가 진행되었다. 광주의 5·18 정신과 민주주의,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을 배우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이야기가 함께 전달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화장실을 통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장면이 나에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국가폭력에 저항한 시민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에서, 오늘의 민주주의가 누구를 포함해야 하는지 묻는 장면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광주에서 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별한 순간이었다.
“성중립화장실”을 넘어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참여자는 “성중립화장실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말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성중립화장실이라고 하면 성소수자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개념을 접하며 그 공간이 장애인에게도, 어린이와 양육자에게도, 노인에게도, 돌봄을 주고받는 모두에게도 필요한 공간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광주에서, 그것도 오월에, 전일빌딩에서 이런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이슈라고 여겨졌던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시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의 주관 행사로 열렸다는 것 자체가 광주 민주주의의 확장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였다.
SNS에서도 전시를 다녀간 사람들의 후기 포스팅을 볼 수 있다. 한 시민은 “입장하자마자 실제 화장실만큼의 좁은 공간감으로 생활 속 불편함을 체감시켜준다”고 썼다. 그 불편함은 모두의 것이고, 여성의 것이고, 퀴어의 것이고, 장애인의 것이고, 돌보는 자의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전일빌딩에 들렀다가 전시를 보고 “지금의 화장실이 배제하고 있는 ‘모두’에는 또 누가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남겼다.
방명록에도 마음이 오래 머무는 문장들이 남아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낯선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평소 ‘화장실이 이 정도면 되지’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랬던 나와 이런 사회가 너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체감하지 못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불편함과 문제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좋은 전시 감사합니다.”
이런 후기들을 통해 사람들이 지식으로만이 아닌 몸의 감각으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필요성을 느끼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누군가를 특별히 배려하기 위해 만드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좁게 상상해 온 ‘공공성’을 다시 짓는 일이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는지, 누구의 존재를 불편한 예외로 취급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공공(公共) 공간이 어떻게 구상돼야 하는지 알게 된다.
전시가 이루어진 전일빌딩245의 3층의 장애인화장실 두 칸은 16일과 17일 양일간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운영되었다. 여성 장애인 화장실과 남성 장애인 화장실 두 칸을 성별 구분 없이 성별, 성별정체성, 장애, 질병, 나이 등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한 것이다. 실제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표지판을 가지고 있는 화장실을 처음 보고 느끼고 사용한 참여자들은 “너무 좋다”, “감격스럽다”, “전시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렇게 운영되면 좋겠다”와 같은 말을 했다.
오월정신은 포함의 민주주의다
광주의 오월정신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월정신은 지금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계속 묻는 정신이다. 국가폭력에 맞서 시민들이 서로를 지키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공동체를 만들고, 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고, 돌봄을 조직했던 오월정신은 돌봄의 민주주의이다.
돌봄 민주주의는 누구도 혼자 버려두지 않는 민주주의다. 어느 누구도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민주주의는 어떤 사람도 ‘나중에’, ‘예외적으로’, ‘부차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포함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정말 민주주의이려면, 그것은 다수의 사람만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가장 쉽게 밀려나는 사람들의 삶까지 중심에 두는 사회여야 한다.
그러므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단순히 화장실 하나를 더 만들자는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장애인이 외출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노인이 두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사회, 어린이와 양육자가 함께 존중받는 사회,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공공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바로 그런 사회를 향한 가장 구체적인 입구다.
전일빌딩에서 이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오월의 광주에서 “모두”라는 말을 다시 묻는 일.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가 아직 포함하지 못한 몸들을 초대하는 일. 총탄의 흔적이 남은 건물 안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공공간을 상상하는 일. 이것은 기억의 확장이자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한 활동가의 꿈이 사회를 움직일 때
이번 전시는 유진님의 2년 전 질문 “왜 여성은, 장애인은, 성소수자는, 이 ‘모두의 오월’에 충분히 포함되지 못할까?”에서 시작되었다. 그 질문은 성명서가 되었고, 꿈이 되었고, 계획이 되었고, 마침내 전시가 되었다.
유진님은 자신이 일하게 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안에서 이 전시를 구체적으로 추진했다. 전일빌딩이라는 공간을 연결했고, 한국다양성연구소와 이충열 작가에게 연락했고, 예산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후원단체들을 모았다. 그렇게 2년 전 “언젠가 광주에서도 이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한 활동가의 바람은 실제로 오월 광주의 한복판에 놓였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주관행사로 홈페이지에 일정표, 게시물, 사진, 영상으로 소개되었다.
이 장면은 나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한 명의 활동가가 꾸는 꿈은 결코 작지 않다. 한 사람이 어떤 질문을 품는지, 어떤 사회를 상상하는지, 어떤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지가 공동체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이 주변의 연대와 만날 때, 그것은 한 사람의 바람을 넘어 사회적 사건이 된다.
화장실은 정상의 몸과 비정상의 몸을 나누는 사회의 문제이고, 안전의 문제이고, 존엄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문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을 일부의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모두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상상하며 공공성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라는 말을 더 정확하고 더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화장실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배울 수 있다.
정말로 모두의 오월이 되기 위해서, 정말로 모두의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 정말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을 공간으로, 제도로, 관계로, 운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바로 그 상상의 시작이다.
나는 오늘, 광주광역시청에, 전일빌딩245에, 김대중컨벤션센터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 2024년 〈화장실, 상상하기〉 온라인 전시(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