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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불안과의 동거 [말풍선]


스물 셋.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났다. 어느새 나는 여성으로 패싱이 되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남자'로 보일 거라는 걱정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 나에겐 혼자만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내 외관과 옷차림이 호르몬 치료를 받는 기간에 따라 서서히 바뀔 것인데, 눈에 띄는 변화를 내가 트랜스젠더인줄도 모르는 가족에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자취방 환경은 썩 좋지 못했다. 내 몸 하나도 숙여야 겨우 들어가는 좁아터진 화장실. 여름엔 열기가 피어오르고 겨울엔 배관이 동파된다. 방과 주방이 분리된 건 좋은데, 그 주방이 좁아도 너무 좁아서 실용성이 없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런 공간이라도 있어서.


다만 참아주기 힘들었던 한 가지. 그 동네 치안이 영 좋지 못했다. 어느 저녁엔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전봇대를 타고 누가 건물로 올라갔는데, 봤느냐’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늦게까지 술을 마신 날 자정 무렵엔 어느 건물에서 여자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나와 친구는 소스라치게 놀라 ‘거기 누구 계세요? 괜찮아요?’ 소리를 지르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가정폭력 사건도 종종 있었다. 옆 건물 아랫집 아저씨가 동네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치며, 현관의 나무며 유리며 가리지 않고 박살을 냈다. 이건 심하다, 신고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나보다 누군가 먼저 신고했는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 아내 되시는 분이 ‘집안일이니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제 남편이에요’라며, 제발 그냥 돌아가 달라 경찰에게 읍소하시더라.


옆 건물까지 갈 것도 없이, 나 사는 방이랑 벽 하나 사이에 둔 집주인네서 가족 간에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집순이인 나는 원치 않게 그 집 사정을 아주 잘 들어버렸다. 발을 쿵쿵 굴리는 소리. 무언가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아들의 울분 섞인 외침.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이면 그 집 아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려고 노력했다. 안쓰러웠다.


그 동네에서는 겨울 한번 지내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다음 보금자리도 물론 원룸이었다. 새로 이사한 방 현관에 남자 구두를 놓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여성으로 패싱이 되기 전에도 내가 동네 치안에 관심이 있었던가? 아니. 치안에 대해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가진 거 없는 사람들 모여 사는 동네에 치안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느냐며. 체념의 배경에는 '설마 나에게 별 일 있을까?'라는 태평함이 깔려 있었다.


이제 더는 그런 팔자 좋은 마음으로 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벌어질 수 있는 너무 많은 사건들이 친근한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그렇게 불안과의 끝나지 않을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