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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사이의 의미 - 연극 <금성여인숙> 후기

지난 7월 14일,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들은 극단 미인의 연극 <금성여인숙>을 함께 관람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연극과 뮤지컬 관람을 취미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여러 이유로 최근 몇 해 동안은 극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본 연극과 오랜만에 간 극장에서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출처: 극단 미인 (https://www.facebook.com/theatermiin), 왼쪽부터 강부민, 수현, 박두홍. 가운데에 수현이 서서 웃으며 말하고 있다. 강부민과 박두홍은 수현의 앞에 쭈그리고 앉은 채 수현의 말을 듣고 있다. 세 사람의 가운데에는 수현이 캐온 송이 버섯 포대 세워져 있다.


강부민은 인제에서 50년째 금성여인숙을 운영 중이다. 여인숙에 장기숙박객 박두홍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유순희가 들어온다. 집을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탔던 유순희는 버스기사에게 추천받아 금성여인숙에 왔다. 여인숙에는 송이를 캐는 수현과 인제로 공연을 오게 된 드랙퀸 진수도 머물고 있다. 까칠한 유순희는 낡은 여인숙 뿐 아니라 두홍도 수현도 진수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두홍에게 코로나 밀접접촉자라는 문자가 날아든다. 여인숙의 숙박객들은 주말을 지나 보건소 열 때까지 강제로 함께 머물 수밖에 없게 되었고 두홍과 원수같은 동창인 용남과 강부민의 양딸 지숙까지 같이 이곳에 격리된다.

연극 <금성여인숙> 시놉시스


인용한 단락은 연극 <금성여인숙>의 포스터에 쓰인 시놉시스 전문입니다. 시놉시스에서 보는 것처럼, 이 연극에는 참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강부민과 박두홍, 유순희, 수현과 진수, 용남과 지숙처럼 시놉시스 상에 이름이 등장하는 주요 인물 외에도 유순희의 가족이나 진수의 지인인 시인 최명제가 짧은 대사를 나눠 가지지요. 바로 이 부분이 이 연극의 큰 특징 중 한 가지입니다. 아주 다양한 인물에게 (행인1, 직원1, 여자1, 남자1 같이 배역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이 있고 또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요.

그 외에도 <금성여인숙>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이야기할거리가 많습니다. 세트와 소품의 최소화, 비지정 자유석 형태의 4면 객석, 실시간 한국어 자막을 송출하는 2대의 자막 모니터 배치, 공연 및 공연의 시각적 요소에 대한 음성 소개, 극 중 등장인물의 지문을 읽는 음성 해설 같은 것이요. 극 안에서의 인물을 보면 더 많습니다. 재개발, 연대와 운동 및 노동으로써의 예술,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 질병, 인물의 성적지향이나 가족의 형태, 연령에 대해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어요.


연극 <금성여인숙>은 이걸 다 합니다. 흥미롭습니다!


이 다양한 요소와 특징, 소재와 설정 중에서 제가 특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이'입니다. '사이'는 희곡 텍스트 중 인물의 대사에 쓰이는데요. 말 그대로 잠시간의 휴지를 의미합니다. 인물이 대사를 이어가다가 쉼,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예전에 과제로 짧은 희곡을 몇 편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사이'를 참 좋아했어요. 대사를 쓰며 '사이'와 '긴 사이', '침묵'으로 인물의 감정과 호흡, 상황을 보여주는 일이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금성여인숙>에서 저는 새로운 '사이'를 만났습니다. 바로 음성으로 만들어진 사이였지요. 지난 시간 저에게 '사이'는 음성의 있고 없음으로 구분되는 조용한 행동의 묘사(지시)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성여인숙>에는 지문을 읽는 음성 해설이 준비되어 있었고, 저는 '사이'를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등장인물은 '사이'를 연기하고, 음성 해설 배우는 '사이'를 소리내어 읽는 풍경이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출처: 극단 미인 (https://www.facebook.com/theatermiin), 왼쪽부터 수현, 지숙, 강부민, 유순희, 용남, 진수. 사람들은 가운데에 빈 공간을 두고 마주보고 서 있다. 용남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고,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용남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을 '사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금성여인숙>은 저에게 해야 하는 것을 함으로써 '사이'를 보여주고 들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극은 세세하게 많은 것을 고려한 것이 느껴졌어요. 세트를 최소화하고, 자막 및 음성 해설을 포함하여 이동지원도 있습니다. 4면 객석으로 연출하여 어디에 앉든 무대를 전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고요. (에이섹슈얼인 수현, 드랙 아티스트인 진수에 대한 표현이 다소 아쉬웠지만, 아무렴 이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누군가는 반가움을 느꼈을 테지요? 저 역시 그랬고요.)

제가 희곡 작법을 배울 때, 가장 좋아했던 말은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관객이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잘 이끌어 와야 한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연극 <금성여인숙>은 쉽고 친절하고 다정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금성여인숙>처럼 하는 것, 해 보는 것으로 '사이'를 말하고 세계와 서로서로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