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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김지학의 세상다양] 그들만의 ‘성진국’은 모두에게 해롭다

이 사회에서 성관계의 즐거움을 전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경제구조는 여성의 성을 남성 중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재’ 쯤으로 만들었다. 이런 사회가 ‘성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넷플릭스에 [성+인물]이라는 시리즈가 공개되었고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인 신동엽씨와 가수 성시경씨가 일본에 가서 여러 사람들과 일본의 성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신동엽씨와 성시경씨는 섹스토이숍을 구경하고 AV(Adult Video, 포르노)와 자위도구를 빌려서 자위를 하고 갈 수 있는 가게를 구경하기도 했는데, 역시 ‘일본이 성진국(성적으로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의미)이구나’라는 말을 던진다. 이 사안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이나 맥락을 살필 필요도, 의지도 없는 남성중심적인 관점이다.



신동엽, 성시경이 진행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성+인물’ ⓒ넷플릭스 사이트


이 둘은 AV배우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AV를 찍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폭력과 불법적인 일들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AV산업을 미화하는 역할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들은 모두 사실이다. 캐스팅 과정의 폭력성이나 불법성 그리고 캐스팅 후 영상 촬영 중에 하기로 계약한 것 전혀 다른 원치 않는 것들을 시켜도 촬영장 분위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AV산업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합법이어도 왜 문제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무엇이 폭력이고 어떤 억압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이 구조가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일본은 누구에게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용어를 명징하게 사용해야 한다. 일본은 누구에게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능동적인 성적 주체로 용인되는 남성이면서, 남성중심의 포르노와 성착취물의 소비자가 많다는 것을 결코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오히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성착취가 사회구조적으로 용인되는 여성에게 매우 억압적인 사회의 단면이다. 이러한 사회가 지속되는 것은 남성의 성적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여성의 ‘몸뚱아리’만이 소환되는 까닭이다. 이런 사회에선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맺기를 하는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인격체가 삭제되고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몸뚱아리’만 남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의 사람들이 동의에 바탕해 안전하고 자유롭고 즐거운 섹스를 더 많이 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이 성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개방적인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별 문제의식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성진국’이라 따라 말하기를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하게 남성중심적이고 자본중심적인 관점이다. 포르노 산업이 합법이고, 수많은 여성들이 포르노 배우가 되고, 매달 4천-5천편의 포르노가 쏟아져 나오는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되기 어렵다. [성+인물]에 나온 배우들은 일본에는 모든 사람(남성)들의 모든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AV가 있고 자신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AV가 성폭력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눈 배우도 있었다. 배우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성적 대상이자 성적인 도구가 바로 여성이 되어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특권그룹에 해당하는 남성만을 위한 AV산업의 확대로 끊임없이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는 것은,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에 크게 저해된다.


우리는 모두의 성관계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성관계는 즐거운 것이고 즐겁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성관계의 즐거움은 평등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합의를 통해 누릴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만족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성관계가 아니며 즐거움도 있을 수 없다.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성적행동을 할 경우에는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반드시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적극적인 합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극적 합의란 ‘나랑 섹스 할래?’라는 질문에 그저 ‘좋아’ 혹은 ‘싫어’를 답하는 게 아니다. 혹은 질문도 없이 암묵적인 동의의 신호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하고 경청하고 존중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할 행동을 함께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평등한 사람들 사이의 적극적인 합의가 성관계의 기존 조건이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이, 직위, 직급, 장애, 경제력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이 적극적인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면 이는 위력,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평등한 관계에서 적극적 합의를 이룬 성관계라고 할 수 없다.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혹은 성진국)은 평등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합의에 의해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회다. 오직 비장애인 이성애자 성인 시스남성만이 성적주체가 되고 여성(특히 어리고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여성)은 성적 대상이 되는 사회를 성적으로 개방적인 성진국이라고 부를 수 없다.


모두가 즐거운 성관계가 되려면


내 자녀가 청소년 시기에 성관계를 할까봐 걱정을 하는 양육자들이 있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런 걱정을 가진 양육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의 자녀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답변은 언제나 거의 동일하다. 첫째는 성폭력이고, 둘째는 임신, 셋째는 성병이다. 어느 누구도 이 세 가지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교육, 성평등교육을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강력하게 실시해야만 한다.


간혹 청소년과 성적인 즐거움 뿐 아니라 심지어 콘돔에 대해서도 다루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학교들이 있다. 콘돔교육을 ‘피임만능주의’라며 ‘피임만 하면 자유롭게 섹스해도 된다’는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성적 자기결정권’을 ‘마음대로 섹스할 권리’라며 ‘방종’으로 마음대로 해석하고 공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성적 행동을 하는 것 혹은 성적 행동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즐거움이 아닌 다른 이유로 성적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즐겁지 않은데 강요나 협박에 의해서 성관계에 응해야 하거나, 거절이 어려워 성관계를 해야 하는 상황, 돈 때문에 성관계를 해야 하는 상황 등이다. 권리의 주체로서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한 권리를 인지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을 때, 거절하는 연습과 거절 받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을 때, 피임하는 방법을 모를 때, 모두 청소년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든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성범죄 문제가 엄청난데 어떻게 성적 즐거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성범죄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성적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관계 자체를 애초에 더럽고 역겨운 것으로 혹은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발달로 성범죄는 더 교묘해지고 더 빨라지고 있다.



사랑 ⓒpixabay


다른 사람과 인간 대 인간으로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연습, 훈련, 문화가 절실하다. 성관계는 평등한 사람과 적극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즐거운 행동이다. 이를 즐겁지 않게 만드는 것이 폭력이자 범죄다. 폭력과 범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와 즐거운 성관계란 어떤 모습일지 먼저 배우고 연습,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무엇이 폭력인지 쉽게 분별하고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관계란 성기결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인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모든 말과 행동을 포함한다. 성관계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청소년이 아니며 성관계를 하는 모두가 부부나 연인이 아닐 수도 있다. 성관계를 하는 모두가 이성애자는 아니며 모두가 비장애인인 것도 아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동의, 안전이라는 원칙에 따라 성관계를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적권리는 성관계에만 한정된 권리가 아니다. 이는 자신의 정신과 몸을 스스로 규정하고 존중하며 존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그리고 피임, 임신중단, 임신, 출산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성적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지 못하고 있다. 사회 부정의, 불평등, 배제,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성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원치 않는 성관계 강요, 성폭력, 성착취,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성병 예방과 치료에 대한 접근성 부재,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청소년 배제, 성에 대한 정보와 교육에 대한 접근성 박탈 등 성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성은 아주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고 정의, 인권, 평등의 문제다. 성적인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으며 성적인 즐거움을 많이 누릴 수 있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하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사회를 상상해 보라. 모두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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