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신글 모아 보기

활동가레터기울어진 저울 위에서 '중립적' 이고 싶다면



“중립 기어 박는다.”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곧잘 쓰이는 표현이다. 어떤 주제에 관하여 한쪽 편을 들거나 명확한 답을 정하지 않고 ‘철저한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난 중립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말이 쓰이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중립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오남용되는 경우도 일일이 인식하기 귀찮을 정도로 잦다.


중립이라는 말을 누군가 꺼내면, 나는 그 사람에게 기준을 묻는다. 무엇이 기준인지 정하지 않은 채 ‘내가 중립이고 그러므로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대를 ‘편파적이고 그러므로 옳지 못하다’라고 근거 없이 비난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


다양성 훈련(교육)은 한국다양성연구소의 핵심사업이다. 참여자는 제도권 교육에서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 다양한 시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삶을 반드시 누군가, 또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배운다.


줄여 설명하자면 ‘차별을 끝내고 모든 사람이 본 모습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차별을 끝내는 것.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것. 1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제정되지 못한 차별금지법과도 서로 통하는 이 의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구성원리 중 가장 높고 중대한 헌법정신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동료 활동가들의 울산 다양성 교육 출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하나 떴다. 기사 제목을 읽자마자 ‘중립이 또...’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울산의 모 고교 학생들에게 외부 강사, 즉 한국다양성연구소 동료 활동가들이 출장 가서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했고, 여러 성소수자 인권 이슈 등 '사회적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제에 관하여 '교육의 중립성'을 어겨가며 반대 의견을 포함한 양쪽 의견을 다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에게 특정 사상을 강제했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 곧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일까? 며칠 사이에 그 많은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긴 할까? 서로 다른 시민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교육에서 '반대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일까, 곰곰이 고민을 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네, 우리 활동가들이 잘못했네.


“여성의 인권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남성의 기분도 중요합니다.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요.”


“동성애자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개신교계 주장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불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트랜지션(성확정)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천륜을 저버리는 죄악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많다는 점, 꼭 기억해두세요.”


이렇게 말해야 했던 거였구나.


이 상황은 각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의 모습과 같다. 저울의 한 쪽에는 '혐오, 차별, 편견'의 저울 추, 반대편엔 '포용, 사랑, 존중'의 저울 추가 놓여있다. 똑같이 세 개씩 저울 추가 달려 있지만 무게는 확연히 다르다. 땅에 닿을 만큼 무거운 쪽은 '혐오, 차별, 편견' 쪽.


자. 여기서 문제 하나. 기울어진 저울 위에서 '중립'이고 싶은 '나'는, 저울 한가운데에 서있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저울의 각이 수평에 가까워지도록, 가벼운 쪽 저울 추에 올라타 무게를 실어줘야 하는 걸까?



*"고교서 동성애·페미니즘 교육"…울산 일부 학부모 반발, 뉴시스, 202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