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결혼하기는 좀 그래.”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나는 당장 내일 결혼할 사람처럼 열심히 웨딩드레스 사진을 찾아보았다. 청혼을 받았을 때, 내 안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판타지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웨딩드레스. 결혼하든 말든, 식을 올리든 말든, 웨딩드레스는 입고 싶었다.
새하얀 백합처럼 가녀린 모델 사진들을 보던 중. 돌연 붉은 옷감에 시선이 확 쏠렸다. 바다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파키스탄 혼례에서 신부가 입는 붉은 예복이 담겨 있었다. 잠시 말이 멎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이 과해 보이지 않게 질서를 만들어 절제미를 더한 디자인, 바람결에 나풀거릴 것 같은 옷자락, 정교하고도 튼튼하게 땋은 매듭.
‘이게 내가 입을 웨딩드레스구나. 이 예복이...’
붉은 예복 사진에 푹 빠진 나를 보며, 바다는 무척 즐거워했다. 내 마음이 “YES"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그도 느꼈을 것이다.
정말로 그랬다. 언제부턴가 나는 바다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가 나고 자란 상앗빛 저택에서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혼례를 치르는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붉은 예복을, 바다는 하얀 예복을 입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깟 차별, 이깟 혐오, 대수롭잖게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실컷 해 보라지. 나는 어렵사리 만난, 나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이 멋진 남자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점점 쌓이고 바다와의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미래에 대한 상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사람 일이라는 게 때로는 참 개연성이 없다. 바다와 태연 커플을 수없이 공격한 인종차별은 둘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다. 둘을 갈라놓은 것은 함께하는 미래가 썩 희망적이지 않다는 내 깨달음이었다.
바다는 대가족의 장남이었고 가문의 다음 세대를 이끌 사람이었다. 그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말하기도 저어될 만큼 무리한 요구였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바다를 따라 파키스탄으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 붉은 예복을 입고 혼례를 치르면 나는 ‘그렇게 둘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바다가 한국에서 그랬듯이 나 역시 파키스탄에 가면 눈에 띌 것이다. 외모, 걸음걸이, 사소한 습관과 몸짓 하나하나가 전부 ‘다르니까.’
나는 바다가 앞으로 평생 일구어낼 것을 계승할 다음 세대를 낳아줄 수 없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 중 누구에게도 평생 밝힐 수 없는 치명적인 비밀을 떠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바로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
만약 내 정체가 어떤 식으로든 새어 나간다면, 과연 남편 한 사람의 노력으로 내 안위가 지켜질까? 비밀이 철저히 지켜진다고 한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필요한 의학적 조치를 받아야 할 때 병원에는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진료는 어떻게 받으려고? 왜 며느리가 아이를 못 가지는지 답답해 견딜 수 없어진 집안 어른 손에 산부인과로 끌려가면 어쩔 셈이지?
바다에게 물었다. 내가 트랜스젠더 여성인 사실을 아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릴 계획은 있는지. 바다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영원히. 내 어머니에게도.”
내가 그의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면 바다는 뒷목을 잡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다의 대답은 내 정체에 관한 비밀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임과 동시에, 그의 아내로서 살아갈 내 삶의 안녕은 남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내 정체를 모르는 것을 전제로 함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그 삶을 사는 나는 남편 덕을 봐서 운 좋게 하루씩 안위를 지킨들, 불안함과 고독함을 견딜 수 있을까?
“YES”가 마음속에서 흐려져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음이 식은 것이 아니었다. 결혼하자는 바다의 요청에 대한 나의 대답이 잠깐 바뀌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다는 꼭 내가 그를 거부한 것처럼 반응했다. 보통 이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 이후 지금껏 살면서도 청혼은 몇 번 안 받아 봐서.
그 후의 전개는 뻔했다. 쓸데없는 이유로 다퉜다. 꽤 자주 그랬다. 기껏 끌어올린 영어 능력은 바다가 나를 비난하는 말을 이해하고, 내가 바다를 도로 비난하는 데에 쓰였다. 결국에는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 다툼이 있었고, 그 다툼을 계기로 연락이 뜸해졌다. 서로를 찾지 않는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천천히 헤어졌음을 실감했다.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붉은 예복 생각이 난다. 바다가 그리운 건 아니다.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지만, 한때 내가 꿈꿨던 미래에 붉은 예복을 입은 신부가 있었다. 나는 붉은 예복을 입고 바다 옆에서 꽃처럼 불처럼 피어날 미래를 상상하며 차별과 혐오를 묵묵히 견뎠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바다와 태연의 관계에는 예사롭지 않은 태그가 붙었다. 그러나 결국 뻔한 연애였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보통의 사랑이었다. 천만 영화처럼 시작해서 양산형 아침드라마로 끝나버리는.
“당장 결혼하기는 좀 그래.”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나는 당장 내일 결혼할 사람처럼 열심히 웨딩드레스 사진을 찾아보았다. 청혼을 받았을 때, 내 안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판타지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웨딩드레스. 결혼하든 말든, 식을 올리든 말든, 웨딩드레스는 입고 싶었다.
새하얀 백합처럼 가녀린 모델 사진들을 보던 중. 돌연 붉은 옷감에 시선이 확 쏠렸다. 바다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파키스탄 혼례에서 신부가 입는 붉은 예복이 담겨 있었다. 잠시 말이 멎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이 과해 보이지 않게 질서를 만들어 절제미를 더한 디자인, 바람결에 나풀거릴 것 같은 옷자락, 정교하고도 튼튼하게 땋은 매듭.
‘이게 내가 입을 웨딩드레스구나. 이 예복이...’
붉은 예복 사진에 푹 빠진 나를 보며, 바다는 무척 즐거워했다. 내 마음이 “YES"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그도 느꼈을 것이다.
정말로 그랬다. 언제부턴가 나는 바다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가 나고 자란 상앗빛 저택에서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혼례를 치르는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붉은 예복을, 바다는 하얀 예복을 입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깟 차별, 이깟 혐오, 대수롭잖게 툭툭 털어낼 수 있었다. 실컷 해 보라지. 나는 어렵사리 만난, 나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이 멋진 남자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점점 쌓이고 바다와의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미래에 대한 상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사람 일이라는 게 때로는 참 개연성이 없다. 바다와 태연 커플을 수없이 공격한 인종차별은 둘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다. 둘을 갈라놓은 것은 함께하는 미래가 썩 희망적이지 않다는 내 깨달음이었다.
바다는 대가족의 장남이었고 가문의 다음 세대를 이끌 사람이었다. 그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말하기도 저어될 만큼 무리한 요구였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바다를 따라 파키스탄으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 붉은 예복을 입고 혼례를 치르면 나는 ‘그렇게 둘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바다가 한국에서 그랬듯이 나 역시 파키스탄에 가면 눈에 띌 것이다. 외모, 걸음걸이, 사소한 습관과 몸짓 하나하나가 전부 ‘다르니까.’
나는 바다가 앞으로 평생 일구어낼 것을 계승할 다음 세대를 낳아줄 수 없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 중 누구에게도 평생 밝힐 수 없는 치명적인 비밀을 떠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바로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
만약 내 정체가 어떤 식으로든 새어 나간다면, 과연 남편 한 사람의 노력으로 내 안위가 지켜질까? 비밀이 철저히 지켜진다고 한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필요한 의학적 조치를 받아야 할 때 병원에는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진료는 어떻게 받으려고? 왜 며느리가 아이를 못 가지는지 답답해 견딜 수 없어진 집안 어른 손에 산부인과로 끌려가면 어쩔 셈이지?
바다에게 물었다. 내가 트랜스젠더 여성인 사실을 아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릴 계획은 있는지. 바다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영원히. 내 어머니에게도.”
내가 그의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면 바다는 뒷목을 잡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다의 대답은 내 정체에 관한 비밀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임과 동시에, 그의 아내로서 살아갈 내 삶의 안녕은 남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내 정체를 모르는 것을 전제로 함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그 삶을 사는 나는 남편 덕을 봐서 운 좋게 하루씩 안위를 지킨들, 불안함과 고독함을 견딜 수 있을까?
“YES”가 마음속에서 흐려져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음이 식은 것이 아니었다. 결혼하자는 바다의 요청에 대한 나의 대답이 잠깐 바뀌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다는 꼭 내가 그를 거부한 것처럼 반응했다. 보통 이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 이후 지금껏 살면서도 청혼은 몇 번 안 받아 봐서.
그 후의 전개는 뻔했다. 쓸데없는 이유로 다퉜다. 꽤 자주 그랬다. 기껏 끌어올린 영어 능력은 바다가 나를 비난하는 말을 이해하고, 내가 바다를 도로 비난하는 데에 쓰였다. 결국에는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 다툼이 있었고, 그 다툼을 계기로 연락이 뜸해졌다. 서로를 찾지 않는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천천히 헤어졌음을 실감했다.
지금도 가끔, 아주 가끔 붉은 예복 생각이 난다. 바다가 그리운 건 아니다.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지만, 한때 내가 꿈꿨던 미래에 붉은 예복을 입은 신부가 있었다. 나는 붉은 예복을 입고 바다 옆에서 꽃처럼 불처럼 피어날 미래를 상상하며 차별과 혐오를 묵묵히 견뎠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바다와 태연의 관계에는 예사롭지 않은 태그가 붙었다. 그러나 결국 뻔한 연애였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보통의 사랑이었다. 천만 영화처럼 시작해서 양산형 아침드라마로 끝나버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