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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피노키오


나는 거짓말쟁이야. 적극적으로 거짓을 말하거나 어떤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거짓을 믿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지지가 않아. 누구도 나대신 출근 해 주지 않아. 나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해.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아. 나는 약해. 약한 사람이 무서운 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면 그 상황에 가급적 놓이지 말아야 해.


그래서 결심했어. 거짓말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정확히 언제였을까? 입사 동기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아무 잘못 없는 그 친구 눈치를 슬슬 보며 불안에 떠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남자가 내 커밍아웃을 듣자마자 바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을 때? 그저 나도 사람인지라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 같은 사람은 여자화장실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스티커가 붙은 걸 봤을 때?


어릴 적에 읽은 동화 중에 피노키오라는 게 있었어. 피노키오는 인형인데,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져. 만약 내가 피노키오라면 매일 조금씩 꾸준히 코가 자라겠지? 진즉 부러졌을지도 몰라. 뚝 하고. 그렇게 뚝 하고 코가 부러지고 나면 숨을 쉴 수 없을 거야.


나는 꿈을 꿔. 매일 반복하는 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그보다 더 간절히 꿈꾸는 게 있어. 거짓말 자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거야. 사람은 꿈꾸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어. 하지만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수는 있지. 나는 꼭 나 같은 피노키오들의 코가 똑 하고 부러지기 전에, 늘 하는 거짓말을 그만 해도 괜찮은 날이 오는 데에 힘을 보태기로 했어.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일 분이라도.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활동을 할 수도 있어. 기부를 할 수도 있지. 행동에 참여할 수도 있어. ‘나’는 당신이 매일 들르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지도 몰라. 동네 골목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골초 아줌마일지도 모르지. 나는 학생이었고, 회사원이었고, 여자친구였고, 교우들의 자매였고, 길드의 고인 물이었어.


눈에 보이지 않는 피노키오들은 모두 일상을 일상으로 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야. 알아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기억해. 피노키오는 반드시 너희 근처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