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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김지학의 세상다양] 내면의 평화를 찾는다는 것

한 청소년과 대화를 나눴다. 새벽에 산책을 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내면의 평화를 찾았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영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교회에 출석하거나 성경을 읽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 기도 그리고 다른 사람과 생명에게 다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 내면의 평화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어쩐지 힘이 있게 다가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의 내면의 평화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그 일을 직업으로 하며 살고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다. 소위 성과나 성취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도 많다. 10~15년 전에 계획했던 일 중 많은 것들을 이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느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중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더 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사회의 모습이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살고 있다. 일이 너무 많을 때도 ‘일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보다 더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비교하게 된다. 항상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불안과 죄책감이 있다. 내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된다. 그 때문인지 “내면의 평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다.


마음의 여유와 평화 ⓒpixabay


두 번째 이유는 그저 즐거움만을 위해 하는 활동이 없다는 것이 큰 것 같다. 취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일과 삶의 구분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까지, 주중과 주말 상관없이 늘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생각만 한다. 일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 하는 대화, 독서, 기사 읽기, 영화 감상 등도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것이 아닌 경우가 별로 없다.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생각을 잠깐씩 멈춰줄 수 있는 취미활동을 가지고 싶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다. 춤을 추고 싶다. 아프로댄스, 탱고, 스윙, 응원단의 응원이나 몸짓패의 몸짓 등을 하고 싶다. 수중 운동을 하고 싶다. 수영,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서핑을 하고 싶다. 보드도 타고 싶고 자전거도 타고 싶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실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이 일과시간에 있기도 하지만 저녁이나 밤시간에 있기도 하다. 일이 주중에 있기도 하지만 주말에 있기도 하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일은 산더미처럼 많고 수익이 발생하는 일이 비정기적으로 있다.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다.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일을 줄일 수 있을까? 그저 내가 결단한다고 될 일인지 의문이다.

나는 다양성훈련가이자 인권활동가로서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소소한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살고 있긴 하지만 나의 내면의 상태가 평화롭고 평안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청소년과 대화를 마친 후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는 그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입 밖으로 소리 내 봤다. 나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의 평등을 위해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내면을 잘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

“뜻밖의 상담소”의 ‘인권활동가 마음건강 기초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평등을 만들어 가기 위해 살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의 소진 문제가 심각하다. 일의 양이 과도하며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경제적인 여건은 열악하다. 인권활동가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존재하고 그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주변 활동가들이 활동판에서 떠나거나 자살을 하여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많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처우와 소통이 어려운 조직문화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는 활동가들의 삶에서 신체적 질병으로, 심리적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인권활동을 가치있는 활동으로 여기지 않는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활동가들의 소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살고 있는 활동가들도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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