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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위한화장실모두를 위한 주택 ‘여기가(家)’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겼다 - 시설이 있던 자리에 집이 생기고 모두라는 말이 실제 공간이 되기까지


모두를 위한 주택 ‘여기가(家)’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겼다

시설이 있던 자리에 집이 생기고 모두라는 말이 실제 공간이 되기까지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전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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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1층에 완성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경


“여기가 우리 집입니다.”

김포시 양촌읍에 누군가가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새로운 집이 생겼습니다. 장애인 자립지원 특화형 매입임대주택 ‘여기가(家)’입니다. 이 집은 이름부터 집의 주인을 분명히 합니다. 시설에서 나와 처음 자기 집을 갖게 된 한 장애인이 집들이에 온 사람들에게 “여기가 내 집이에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집을 소개하며 자랑했던 말이 이 집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기가’는 장애인가구만 따로 모아 둔 주택이 아닙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가구와 아동양육가구, 1인가구 등 모두 28가구가 이웃으로 함께 사는 집입니다. 턱을 없애고 문과 엘리베이터를 넓혔으며, 여러 장애 유형과 정도를 처음부터 설계의 기준에 넣었습니다. 입주민들이 만나서 함께 먹고 마시고 쉬고 활동할 수 있는 주민공동공간과 마당도 만들었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어떤 모양의 가족을 이루고 살든 지역사회의 동등한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프리웰의 가치를 구현한 ‘모두를 위한 주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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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1층에 완성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전경


  • 시설이 있던 자리에 집이 생기기까지

‘여기가’의 의미를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이 터의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곳에는 1985년부터 대형 장애인거주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향유의집으로 이름을 바꾼 곳입니다. 한때 100명이 넘는 장애인이 이곳에 수용되어 살았습니다. 네댓 명이 한 방에서 생활했고, 방 두 개 사이에 놓인 화장실 하나를 여덟 명에서 열 명가량이 함께 사용해야 했습니다. 씻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시설이 일방적으로 정했고 무조건 따라야만 했습니다. 휠체어 이용인은 혼자 오르기 힘든 가파른 경사로들이 있었고 사생활은 지켜지기 어려웠습니다.

2007년 시설에 살던 한규선씨가 자신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장애수당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석암재단의 비리와 인권침해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6월에는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장애인 여덟 명이 시설을 나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 동안 노숙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른바 ‘마로니에 8인’입니다. 이들은 시설을 나온 사람에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집과 활동지원서비스를 보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투쟁은 서울시가 전국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립생활주택과 탈시설 정착금 같은 제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비리 책임자들이 물러난 법인은 관선이사 체제를 거쳐 2009년 프리웰로 이름을 바꿨고, 2013년 인권·복지·자립생활 전문가들로 이사진을 꾸렸습니다. 프리웰은 시설에 살던 사람들의 지역사회 이주를 지원했고, 2021년 4월 30일 모든 거주인이 시설을 떠나면서 향유의집을 자진 폐지했습니다. 지방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문을 닫은 시설은 있었지만, 운영 법인이 거주인 전원의 탈시설을 추진한 뒤 스스로 시설을 폐지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시설 건물은 사라지고 같은 자리에 세 동, 28가구의 집이 들어섰습니다. 많은 사람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던 시설의 자리가 각자의 현관과 방, 부엌, 화장실을 가진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가’는 그저 새 건물의 이름이 아닙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이며 모든 시민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자 실천입니다. 프리웰은 장애인의 삶을 시설 안에 배치하던 사회를, 각 사람에게 필요한 집과 지원을 지역사회 안에 배치하는 사회로 이동시키는 단체입니다.


  • 모두를 위한 주택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필요한 이유

“자립”은 아무 도움 없이 혼자 모든 일을 해내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도움을 받을지, 누구와 함께 살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다른 사람과 제도와 기반시설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의 의존만 유독 결함처럼 취급하고 그 사람을 시설로 보내는 사회가 문제입니다.

‘여기가’는 이러한 자립의 의미를 집의 구조로 구현했습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문, 단차 없는 바닥, 누운 자세로 씻을 수 있을 만큼 넓은 욕실은 입주자가 자신의 몸을 집에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게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쓰는 주민공동공간은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엽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용하는 공동공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가 포함되는 공간을 상상하며 만들다 보니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꼭 필요하겠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화장실이 성별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으면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나 가족과 함께 들어가야 하는 사람,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인 사람에게 문턱이 생깁니다. 어린이용 기저귀교환대만 있으면 성인이 된 뒤에도 기저귀 교환이 필요한 사람은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손잡이와 회전공간만 갖추고 휠체어에서 변기나 침대로 옮겨 갈 장비가 없으면 누군가는 화장실 앞에서 다시 돌아서야 합니다. 장루나 요루 주머니를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비우고 씻을 설비가 없다면 외출이 화장실 사용 가능성에 의해 제한됩니다.

공동체나 조직 혹은 건물을 운영할 때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 쉬운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사실 누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지, 누가 이곳에서 환영받는지, 누가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지, 누가 이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설명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일상을 보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반시설입니다. 모두를 위한 주택이라면 그 안의 화장실도 모두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 사회가 빠뜨려 온 몸을 설계에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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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내부에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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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여닫을 수 있는 넓은 자동문과 큰 개폐 버튼

모두를 위한 화장실 옆에 따로 한 칸 있는 성중립화장실


‘여기가’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주출입구에서 가까운 1층에 있습니다. 입구에는 휠체어나 스쿠터와 같은 보행보조기구가 넉넉히 지날 수 있는 넓은 자동문과 손바닥이나 주먹으로도 누르기 쉬운 큰 개폐 버튼을 달았습니다. 화장실 안에는 휠체어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넓은 공간, 손잡이,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세면대를 갖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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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도 누워서 기저귀를 갈거나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침대형 교환대


한쪽에는 영유아뿐만 아니라 성인도 누울 수 있는 침대형 기저귀교환대를 설치했습니다. 기저귀교환대는 더 넓고 크며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휠체어나 스쿠터 등의 이동기기에서 변기 또는 교환대로 몸을 안전하게 옮길 수 있도록 이동식 리프트도 준비했습니다. 천장형 리프트를 수입해 설치하고자 했으나 예산 등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장루와 요루 주머니를 비우고 씻을 수 있는 전용 세척용 세면기

장루와 요루 주머니를 비우고 씻을 수 있는 전용 세척용 세면기


변기 옆에는 장루·요루 주머니를 비우고 씻을 수 있는 전용 세척용 세면기를 두었습니다. 넓고 깊은 세면대와 함께 온도 조절이 가능한 수전, 길게 뽑아 쓸 수 있는 샤워기를 갖춰 위생적으로 주머니를 관리할 수 있으며 필요시 간단히 몸을 씻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설비는 월경컵을 비우고 닦는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화장실을 휠체어 이용인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서로 다른 몸과 건강 상태, 돌봄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상상한 결과입니다.

제가 국내에 공개되어 있는 사례를 찾아본 범위에서는 넓은 자동문, 성인용 침대형 기저귀 교환대, 이동식 리프트, 장루·요루 세척용 세면기를 한 공간에 모두 갖추어 성별과 장애, 나이에 관계없이 이용하도록 만든 화장실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최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외에는 성인용 기저귀 교환대와 천장형 리프트를 기본으로 갖추는 영국의 ‘체인징 플레이시스(Changing Places)’ 화장실이 있고, 일본에는 접이식 침대(성인용 기저귀 교환대)와 장루 주머니 세척용 세면대 설비를 둔 다목적 화장실이 있다. 그러나 이 설비들을 한 공간에 함께 갖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상황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세계 최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기가’의 화장실이 국제적인 접근가능 화장실 기준과 견주어도 앞선 사례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화장실이 모든 과제를 완전히 끝낸 완성형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설계 과정에서는 천장형 전자동 리프트와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접이식 침대(성인용 기저귀 교환대)도 검토했지만, 공급과 비용의 제약으로 이동식 리프트와 고정형 교환대를 설치했습니다. 월경컵 세면기도 장루 주머니 세척용 세면대와 별도로 설치하고자 했으나 국내에서 구할 수 없어 예산과 공사 일정 등의 문제로 장루 주머니용 세면대를 함께 쓰는 것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실제 이용 경험을 계속 듣고 잘 모아서 장비의 위치와 사용 방법, 관리 방식도 계속 개선해 가야 합니다. 이러한 한계들까지 기록하는 까닭은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이 완성을 자랑하는 이름이 아니라, 아직 빠뜨린 사람이 없는지 계속 묻고 바꾸겠다는 약속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광고 카피의 모두와 권리의 언어인 모두

올해부터 부쩍 많은 기업들이 ‘모두를 위한 ○○’, ‘모두의 ○○’라는 카피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행이 된 것 같습니다. 포함의 언어가 그만큼 매력적인 가치가 되었다는 점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럽습니다. 그 광고들이 부르는 ‘모두’ 안에 실제로 모두가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광고에서 ‘모두’는 흔히 ‘가능한 한 많은 소비자’을 뜻합니다. 권리의 언어에서 ‘모두’는 지금까지 포함되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계단밖에 없는 건물,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만든 서식, 이성애 핵가족을 기본값으로 삼은 상품에 ‘모두의’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모두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모두’를 진지하게 말하려면, 이용자 수가 아니라 접근성(accessibility)부터 살펴야 합니다. 모두가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 누구도 배제되지 않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누가 이 곳에 들어오지 못하는가, 누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몸과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가, 누구의 필요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늘 다음 순서로 밀리는가, 당사자는 설계와 결정 과정에 참여했는가, 사용해 본 사람이 불편을 말할 때 다시 고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답해야 합니다. 또한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결과로 누군가가 착취, 억압, 배제를 경험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를 위한다’는 것은 평균적인 사람에게 모두를 맞추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필요에 맞는 선택지를 동등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에는 공간과 예산이 필요합니다. 기존엔 평균이라는 기준에 의해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이곳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자동문의 폭과 버튼의 크기, 기저귀 교환대의 크기와 길이, 리프트를 놓을 자리와 비용, 장루 주머니 세척용 세면재의 존재와 그에 따라 고려해야 할 배관, 휠체어 이용인과 활동지원사가 함께 움직일 면적 등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그저 이름의 장식에 머물지 않고 설비와 운영 방식으로 번역될 때 비로소 포함(inclusion)은 현실이 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기존의 다른 모든 화장실들을 없애고 이것 하나로 모든 사람의 필요를 해결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들어 이전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에게 동등한 이용 권리를 주는 일입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모두 똑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화장실이 각 장소와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생겨나야 합니다.


  • 함께 만든 성과이기에 더 기쁜 일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동안, 연구소가 오랫동안 이어 온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의 고민을 ‘여기가’의 논의와 설계에 보탤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시설이 있던 자리에 모두를 위한 주택이 서고, 그 안에 이처럼 구체적인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함께 만들었다는 것은 저에게도 연구소에도 프리웰에도 한국사회에도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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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집들이에서 받은 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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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공개되어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후원자 명단


여기가가 집들이에서 공개한 연대와 후원에 대한 감사 명단

여기가 집들이에서 공개된 연대와 후원에 대한 감사 명단


‘여기가’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단체가 만든 성과가 아닙니다. 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를 세상에 알리고 직접 문밖으로 나온 장애인 당사자들의 투쟁이 가장 오래된 기초입니다. 향유의집 폐지를 결정하고 거주인들의 지역사회 이주를 지원한 프리웰의 구성원들, ‘여기가’의 설계와 시공과 운영에 참여한 사람들, 장애인자립생활운동 단체들과 사회주택 관계자들, 필요한 비용을 보탠 수많은 후원자와 시민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긴 협력에 한 사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과거 이 터에 있었던 시설 속의 화장실은 여러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 나눠 써야 하는 ‘시설의 일부’였습니다. 사람들의 사생활과 안전을 지키거나 필요와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이 터의 존재하는 ‘여기가’의 화장실은 서로 다른 몸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이용하도록 만든 ‘집의 일부’입니다. 시설을 집으로 바꾼 변화와 배제의 공간을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꾼 변화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람을 정해진 공간과 기준에 맞추는 대신, 공간과 제도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방향입니다.

‘모두’는 예쁜 꾸밈 말이기 전에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려워도 그 어려운 질문을 끝까지 받아들이며 나아가면 공간의 모양이 달라지고 예산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며, 누가 결정하는지도 달라집니다. 사람의 삶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여기가’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입니다.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 답변입니다. 이 답변이 더 많은 집과 학교와 일터, 병원과 공공시설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그냥 ‘화장실’이라는 세 글자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읽히는 사회를 꿈꿔 봅니다. 그리고 누구나 “여기가 내 집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꿔 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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