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혐오는 막고 누구의 혐오는 허용할 것인가
- 성소수자를 지운 교육부 가이드북은 혐오 대응이 아니라 차별행정이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올해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 데이’라는 이름의 마케팅을 벌였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행사를 중단했다. 한 달여 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조롱이 극우 커뮤니티 안의 말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마케팅과 청소년의 집단 응원으로까지 번진 장면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희생자와 광주시민을 모욕하는 표현에 학교와 사회가 분명히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 대응이 몇몇 학생을 징계하고 금지어를 정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거짓 정보가 어떻게 ‘농담’과 놀이가 되고, 집단의 응원문화가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지우며, 자신이 반복한 말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배우게 해야 한다. 피해를 이해하고 관계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학교 현장의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을 만들겠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8일, 교육부가 만들고 있는 가이드북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이 통째로 삭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교육부가 참고한 서울시교육청의 ‘혐오·차별 표현 예방·대응 안내서’ 초안은 혐오·차별 표현을 설명하며 성별, 장애, 인종·민족, 국적, 출신지역, 종교와 함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명시했다. 성적지향에 관한 소문이 단체대화방과 익명 앱에 퍼지고 학생이 동아리에서 배제된 사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우팅과 2차 아우팅을 막기 위한 학교의 대응도 담았다.
교육부의 가이드북에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정의에서 빠졌다. ‘성소수자’, ‘커밍아웃’, ‘아우팅’에 관한 설명과 피해 사례, 대응지침도 사라졌다. 전문가 검토진 7명 가운데 6명이 이러한 삭제에 반대하며 이름을 뺐지만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보도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4곳이 ‘성소수자’ 표현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냈고, 포함에 찬성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이는 몇몇 실무자의 실수나 편집상 누락이 아니다. 교육행정 전반이 누구를 보호할 학생으로 인정하고 누구는 외면할 것인지 선택한 사건이다.
교육부는 “반대 민원 등으로 학교 배포가 부담스럽다”는 시도교육청의 입장을 삭제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가이드북에서 지우라고 요구하는 민원 자체가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부정하는 차별적 압력이다.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문서가 혐오세력의 반발을 이유로 가장 공격받는 사람을 지운다면, 그것은 중립도 타협도 아니다. 혐오에 굴복하고 차별과 폭력에 행정이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다.
민원은 인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5·18 왜곡에 반대하는 지침에 항의 민원이 쏟아지면 5·18 관련 내용도 삭제할 것인가. 장애인, 이주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지 말라는 민원이 조직되면 그 항목도 하나씩 지울 것인가. 오히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교육한 교사가 악성 민원에 홀로 노출되지 않도록 법률·행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민원이 두려워 기준을 지우면 교사에게 남는 것은 침묵이고, 피해 학생에게 남는 것은 고립뿐이다.
혐오표현은 단지 기분 나쁜 말이나 거친 욕설이 아니다. 한 사람을 성별, 장애, 인종, 출신지역,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같은 정체성을 이유로 열등하거나 위험하거나 ‘비정상적인’ 존재로 만들고, 그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말과 행위다. 그러므로 어떤 집단이 실제로 표적이 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부록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혐오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모든 학생을 존중하자”는 추상적인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존재가 가장 격렬하게 부정되는 학생일수록 문서에 더 분명하게 호명되어야 한다.
202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는 학교의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청소년 성소수자 응답자의 71.1%가 교사에게서, 87.0%가 또래 학생에게서 편견이나 혐오에 따른 표현을 경험했다. 31.2%는 교사로부터 불이익이나 괴롭힘을 겪었다. 80%는 교과교육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배운 적이 없었고, 83.4%는 자신의 학교가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탈학교 경험은 17.4%, 우울 증상이 의심되는 비율은 69.0%였다. 이런 현실에서 ‘성소수자’를 삭제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학생을 보호대상에서 다시 한 번 밀어내는 일이다.
삭제는 현장의 대응도 무력화한다. “게이 같다”는 말을 놀림으로 사용하는 상황, 정체성에 관한 소문을 퍼뜨리는 일, 커밍아웃한 학생을 모임에서 배제하는 일, 상담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보호자나 다른 교사에게 함부로 알리는 일을 교사는 어떻게 판단하고 개입해야 하는가. 아우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보고하고, 비밀을 어떻게 지키며, 2차 피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구체적인 이름과 사례와 절차가 사라지면 피해는 ‘친구 사이의 장난’, ‘개인적 갈등’, ‘논쟁적인 문제’로 축소된다. 가이드북의 침묵은 학교의 침묵을 만들고, 학교의 침묵은 혐오에 허가증을 내준다.
이번 가이드북은 심지어 과거보다 후퇴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2020년 전국 약 1만2천 개 초중등학교 등에 배포한 혐오표현 대응 안내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혐오표현 판단 기준에 포함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교육부가 새롭고 급진적인 기준을 도입하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이미 공적인 기준으로 존재하던 권리를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뒤로 돌린 것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2007년을 떠올린다. 당시 정부는 보수 개신교계 등의 반발 속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을 비롯한 일곱 가지를 삭제했다. 그 뒤로도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는 ‘사회적 합의’와 종교계 반발을 핑계로 성소수자의 평등을 번번이 뒤로 미뤘다. 19년이 지난 지금 교육부가 “민원이 부담스럽다”며 같은 삭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답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지역혐오는 막아야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정치적·종교적 부담 때문에 눈감아도 된다는 것인가. 정부가 5·18 역사왜곡에는 정당하게 단호하면서, 보수 종교세력의 반발이 예상되는 성소수자의 권리는 협상 가능한 것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보편적 인권정책이 아니라 권리의 선별과 서열화다. 민주주의는 이름이나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표가 적고 반대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도 한 사람의 동등한 존엄을 지키는가로 증명된다.
5·18에 대한 혐오표현은 과거의 한 사건이나 희생자들만을 모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광주’와 ‘전라도’를 열등하거나 위험하거나 조롱해도 되는 지역으로 만들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 지금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정관념과 편견, 낙인을 덧씌워 지역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공고히 한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겨냥해 ‘게이’나 ‘가짜 여자’ 같은 말을 모욕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성소수자를 열등하고 기만적이며 위험한 존재로 표상하여 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 폭력이 계속되도록 만든다. 겨냥하는 대상만 다를 뿐, 한 집단의 정체성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사회적 배제를 자연스럽게 하는 작동 원리는 같다. 그렇기에 차별과 억압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집단만 골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18과 광주를 지키면서 성소수자를 버릴 수도 없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면서 지역혐오를 외면할 수도 없다. 어느 한 혐오에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다른 혐오를 막을 원칙과 힘도 함께 무너진다.
5·18의 역사와 성소수자의 인권은 경쟁하지 않는다. 국가폭력과 역사왜곡에 맞서는 일도,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와 안전을 지키는 일도 어떤 사람의 존엄은 다수의 편의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지워질 수 없다는 같은 민주주의 원칙 위에 있다. 한쪽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다른 쪽을 희생하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도, 안전한 학교도 만들 수 없다.
교육부는 현재 안의 인쇄·배포를 중단하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성소수자, 커밍아웃과 아우팅, 관련 피해 사례와 구체적인 대응지침을 즉시 복원해야 한다. 삭제 결정의 경위, 시도교육청 의견수렴 결과, 전문가 검토의견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와 인권·교육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면 재검토를 실시해야 한다. 교사가 혐오성 민원에 홀로 맞서지 않도록 법률 지원과 행정적 보호, 교직원 연수와 비밀보장 원칙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평등을 미루지 말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성소수자 없는 ‘모두의 학교’는 없다. 누군가를 지운 혐오대응 가이드북은 인쇄되기도 전에 이미 교육에 실패했다. 혐오는 골라서 막을 수 없고, 평등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누구의 혐오는 막고 누구의 혐오는 허용할 것인가
- 성소수자를 지운 교육부 가이드북은 혐오 대응이 아니라 차별행정이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올해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 데이’라는 이름의 마케팅을 벌였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행사를 중단했다. 한 달여 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조롱이 극우 커뮤니티 안의 말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마케팅과 청소년의 집단 응원으로까지 번진 장면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희생자와 광주시민을 모욕하는 표현에 학교와 사회가 분명히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 대응이 몇몇 학생을 징계하고 금지어를 정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거짓 정보가 어떻게 ‘농담’과 놀이가 되고, 집단의 응원문화가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지우며, 자신이 반복한 말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배우게 해야 한다. 피해를 이해하고 관계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학교 현장의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을 만들겠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8일, 교육부가 만들고 있는 가이드북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이 통째로 삭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교육부가 참고한 서울시교육청의 ‘혐오·차별 표현 예방·대응 안내서’ 초안은 혐오·차별 표현을 설명하며 성별, 장애, 인종·민족, 국적, 출신지역, 종교와 함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명시했다. 성적지향에 관한 소문이 단체대화방과 익명 앱에 퍼지고 학생이 동아리에서 배제된 사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우팅과 2차 아우팅을 막기 위한 학교의 대응도 담았다.
교육부의 가이드북에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정의에서 빠졌다. ‘성소수자’, ‘커밍아웃’, ‘아우팅’에 관한 설명과 피해 사례, 대응지침도 사라졌다. 전문가 검토진 7명 가운데 6명이 이러한 삭제에 반대하며 이름을 뺐지만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보도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4곳이 ‘성소수자’ 표현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냈고, 포함에 찬성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이는 몇몇 실무자의 실수나 편집상 누락이 아니다. 교육행정 전반이 누구를 보호할 학생으로 인정하고 누구는 외면할 것인지 선택한 사건이다.
교육부는 “반대 민원 등으로 학교 배포가 부담스럽다”는 시도교육청의 입장을 삭제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가이드북에서 지우라고 요구하는 민원 자체가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부정하는 차별적 압력이다.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문서가 혐오세력의 반발을 이유로 가장 공격받는 사람을 지운다면, 그것은 중립도 타협도 아니다. 혐오에 굴복하고 차별과 폭력에 행정이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일이다.
민원은 인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5·18 왜곡에 반대하는 지침에 항의 민원이 쏟아지면 5·18 관련 내용도 삭제할 것인가. 장애인, 이주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지 말라는 민원이 조직되면 그 항목도 하나씩 지울 것인가. 오히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교육한 교사가 악성 민원에 홀로 노출되지 않도록 법률·행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민원이 두려워 기준을 지우면 교사에게 남는 것은 침묵이고, 피해 학생에게 남는 것은 고립뿐이다.
혐오표현은 단지 기분 나쁜 말이나 거친 욕설이 아니다. 한 사람을 성별, 장애, 인종, 출신지역,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같은 정체성을 이유로 열등하거나 위험하거나 ‘비정상적인’ 존재로 만들고, 그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말과 행위다. 그러므로 어떤 집단이 실제로 표적이 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부록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혐오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모든 학생을 존중하자”는 추상적인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존재가 가장 격렬하게 부정되는 학생일수록 문서에 더 분명하게 호명되어야 한다.
202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는 학교의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청소년 성소수자 응답자의 71.1%가 교사에게서, 87.0%가 또래 학생에게서 편견이나 혐오에 따른 표현을 경험했다. 31.2%는 교사로부터 불이익이나 괴롭힘을 겪었다. 80%는 교과교육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배운 적이 없었고, 83.4%는 자신의 학교가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탈학교 경험은 17.4%, 우울 증상이 의심되는 비율은 69.0%였다. 이런 현실에서 ‘성소수자’를 삭제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학생을 보호대상에서 다시 한 번 밀어내는 일이다.
삭제는 현장의 대응도 무력화한다. “게이 같다”는 말을 놀림으로 사용하는 상황, 정체성에 관한 소문을 퍼뜨리는 일, 커밍아웃한 학생을 모임에서 배제하는 일, 상담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보호자나 다른 교사에게 함부로 알리는 일을 교사는 어떻게 판단하고 개입해야 하는가. 아우팅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보고하고, 비밀을 어떻게 지키며, 2차 피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구체적인 이름과 사례와 절차가 사라지면 피해는 ‘친구 사이의 장난’, ‘개인적 갈등’, ‘논쟁적인 문제’로 축소된다. 가이드북의 침묵은 학교의 침묵을 만들고, 학교의 침묵은 혐오에 허가증을 내준다.
이번 가이드북은 심지어 과거보다 후퇴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2020년 전국 약 1만2천 개 초중등학교 등에 배포한 혐오표현 대응 안내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혐오표현 판단 기준에 포함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교육부가 새롭고 급진적인 기준을 도입하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이미 공적인 기준으로 존재하던 권리를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뒤로 돌린 것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2007년을 떠올린다. 당시 정부는 보수 개신교계 등의 반발 속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을 비롯한 일곱 가지를 삭제했다. 그 뒤로도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는 ‘사회적 합의’와 종교계 반발을 핑계로 성소수자의 평등을 번번이 뒤로 미뤘다. 19년이 지난 지금 교육부가 “민원이 부담스럽다”며 같은 삭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답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지역혐오는 막아야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정치적·종교적 부담 때문에 눈감아도 된다는 것인가. 정부가 5·18 역사왜곡에는 정당하게 단호하면서, 보수 종교세력의 반발이 예상되는 성소수자의 권리는 협상 가능한 것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보편적 인권정책이 아니라 권리의 선별과 서열화다. 민주주의는 이름이나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표가 적고 반대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도 한 사람의 동등한 존엄을 지키는가로 증명된다.
5·18에 대한 혐오표현은 과거의 한 사건이나 희생자들만을 모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광주’와 ‘전라도’를 열등하거나 위험하거나 조롱해도 되는 지역으로 만들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 지금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정관념과 편견, 낙인을 덧씌워 지역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공고히 한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겨냥해 ‘게이’나 ‘가짜 여자’ 같은 말을 모욕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성소수자를 열등하고 기만적이며 위험한 존재로 표상하여 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 폭력이 계속되도록 만든다. 겨냥하는 대상만 다를 뿐, 한 집단의 정체성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사회적 배제를 자연스럽게 하는 작동 원리는 같다. 그렇기에 차별과 억압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집단만 골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18과 광주를 지키면서 성소수자를 버릴 수도 없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면서 지역혐오를 외면할 수도 없다. 어느 한 혐오에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다른 혐오를 막을 원칙과 힘도 함께 무너진다.
5·18의 역사와 성소수자의 인권은 경쟁하지 않는다. 국가폭력과 역사왜곡에 맞서는 일도,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와 안전을 지키는 일도 어떤 사람의 존엄은 다수의 편의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지워질 수 없다는 같은 민주주의 원칙 위에 있다. 한쪽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다른 쪽을 희생하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도, 안전한 학교도 만들 수 없다.
교육부는 현재 안의 인쇄·배포를 중단하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성소수자, 커밍아웃과 아우팅, 관련 피해 사례와 구체적인 대응지침을 즉시 복원해야 한다. 삭제 결정의 경위, 시도교육청 의견수렴 결과, 전문가 검토의견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와 인권·교육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면 재검토를 실시해야 한다. 교사가 혐오성 민원에 홀로 맞서지 않도록 법률 지원과 행정적 보호, 교직원 연수와 비밀보장 원칙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평등을 미루지 말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성소수자 없는 ‘모두의 학교’는 없다. 누군가를 지운 혐오대응 가이드북은 인쇄되기도 전에 이미 교육에 실패했다. 혐오는 골라서 막을 수 없고, 평등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