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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라트리] 나는 페미니스트일까?

그랬다. 과거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확신했고, 그렇게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대학생 때나 사회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나, 나는 페미니즘 관련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때 자주 쓰던 표현을 빌리자면 내 활동은 '가열찼다.'


언제부터였을까.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멸칭으로 쓰는 말들을 질리도록 보게 되었다. 나는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변했다. 더는 활동가나 운동가로 살지 않으며, 내 일상을 굴리는 데 쓸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웹툰, 뉴스, 릴스 등 무엇을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 테니까.


솔직한 마음으로는 남 탓을 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게 페미니스트의 활동이 가시화되고 본격화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백래시(Backlash)'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하는 장면들과의 괴리는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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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리, 생성형 AI로 제작


"페미니즘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구호는 대부분 지향해야 할 미래, 즉 현시점에서는 달성되지 않은 가치를 함축한다. 문장 자체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내 가치관으로도 완전히 납득할 수 있는 선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마지막 퍼즐', '민주주의의 완성에 기여하는 페미니즘'은 과연 '어떤 페미니즘'일까? 이 구호를 외칠 때의 나와 주변의 활동가들, 그리고 지지자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었을까? 이 고민이 잊을 만하면 떠오른다.


과거를 돌아보면 혀끝이 달 때보다 쓸 때가 잦다. 이 회상도 그렇다.


시민으로서 나는 동료 시민들을 어떻게 대했던가. 독선적이었고 잔인했다. 토론은 격해질 수 있다. 공론장에서든 일상에서든 묵인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곱게 듣고 흘릴 수 없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동료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적의 일상을 파괴할 권리'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생각을 너무 늦게 한 것은 아닐까. '활동'과 '일상'의 경계가 뚜렷해질수록 속이 쓰렸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변화는 보수적으로 일어나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몰랐던가? 아니다. 알고도 무시했다. 분노와 슬픔이 생각을 흐렸다. '나와 우리의 고통'을 세상이 알아주길 바랐다.


아니. '당장' 알아주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내 원망을 거둘 길이 없는 줄 알았다. 나는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내 영혼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 신랄했고 서슬퍼랬다. '페미니즘'의 이름을 내걸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동료 시민의 체면을 부수었다. '적'을 조롱하고 매도했다.


상대가 백기를 들거나 침묵했을 때, 나는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눌렀을 뿐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하나의 현상이든 구조의 결함이든, 부당한 폭력에 짓눌려 숨 쉬지 못하는 이들까지도 '모두와 같은 권리를 가졌음을 인정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

이것이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페미니즘이다.



배제하는 페미니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소수자를 '가짜'라고 비난하고, 그들이 '여성'의 삶에 침입하여 난장을 피우는 야수들인 것처럼 혐오 선동을 일삼는 세력도 있었다. 그들 역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불렀다. 터프(TERF,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다.


처음 터프 세력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두렵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과 행보가 스스로 존재 근거를 깎아먹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그러나 이내 그들이 두려워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터프의 가치관에 동조하거나, 동조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행태를 방관했기 때문이다. 폭력은 방관이 자리 잡은 곳에 쉽게 뿌리를 내린다.


과거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흔든 2018년 무렵에도 이미 터프는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 중이었다. 고민이 많았다. 대응해야 하는 이슈는 매일 사방에서 쏟아졌다. 터프를 설득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을까? 아니면 터프와 '페미니즘'의 선을 더 빨리 그어야 했을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미 벌어진 사실이다. 2020년,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에서 어느 학생이 재학생과 외부 터프 세력의 거센 반발 끝에 입학을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해당 학생은 성별적합수술을 받고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상태였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여대 입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입학 방법은 평범하게 수능을 치러 실력으로 합격한 것이었다.


학교 측은 '학생의 입학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문제는 '일부' 학생들이었다. "입학해서 캠퍼스에서 보면 어떤 폭력을 가할 것"이라는 범죄 예고성 발언부터 "내시가 여대에 들어오느냐"는 혐오 발언까지, 입에 담기조차 괴로운 말들이 쏟아졌다. 한 재학생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하는 이유를 당당하게 설파하기도 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계 및 인권운동계 단위들은 각자 성명을 발표하며 터프와 선을 그었다. 대중의 반응이 썩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터프들은 지지 않고 거세게 맞섰다. 안타깝게도 연대의 발걸음은 쏟아지는 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합격생은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그 사건이 있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배제의 폭력을 예방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누군가는 그 시간이 짧았다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긴 시간은 아니다. 다만 속을 끓이던 이들에게는 기나긴 세월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만약 대학 입시에 관한 일이 아니었어도 사건의 전개가 같았을까? '대학 입시에 방해된다면 비행기조차 주저앉히는 나라'에서, '자기 실력으로 입시에 성공한' 학생이 '일부' 재학생과 여론이 던지는 돌을 맞고 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그 사건이 나는 왜 분하기만 했을까. 어째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먼저이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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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리, 생성형 AI로 제작


미답의 문제


'나는 페미니스트다.'


여전히 참인 명제다. 다만 예전처럼 자신 있게 말하기는 힘들다.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 가치를 실천한다며 보여주었던 과거 내 모습이 부끄럽고 두려울 뿐이다.


2020년의 사건 이후로도 어느덧 6년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도, 운동도, 나 자신도 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다.


"페미니즘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포함과 평등의 정치일 수 있는가? 나는 그런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답을 내리는 데 필요한 것이, 비단 흘러가는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 라트리(블로그 바로 가기)


외부 필진 '라트리'
- 前 한국다양성연구소 활동가 '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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