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버리지 않는 공동체
: 5·18 정신을 돌봄과 포함의 언어로 다시 읽기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5·18 정신을 다시 생각하다
5·18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어 왔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은 군부 권력에 맞섰고, 국가폭력에 저항했으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5·18을 민주주의의 역사로 깊이 기억해 온 것은 매우 중요하며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으로 이어가야 한다.
최근 나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5·18 정신 안에 담긴 더 깊은 의미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충분히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됐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제도, 선거, 정권교체와 같은 것들로만 여겨질 때, 5·18 안에 담긴 피와 눈물, 몸과 관계, 돌봄과 상호의존의 감각은 희미해질 수 있다.
5·18은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생명을 체제 유지의 수단 아래 놓았을 때에도 인간이 끝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것은 한 도시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한 증언이었다.
이 글은 5·18 정신을 세 개의 질문으로 다시 읽어보려 한다. 첫째, 국가는 어떻게 시민을 적으로 만들고, 사람을 제거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가. 둘째, 그런 폭력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는가. 셋째, 오늘 우리는 그 기억을 왜곡과 혐오, 상품화와 조롱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인간이 인간을 버리는 세계인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 세계인가.

사진: Unsplash의 ASIA CULTURECENTER
인간은 끝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가
5·18은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생명을 체제 유지의 수단 아래 놓았을 때에도 인간이 끝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광주의 시민들은 그날 국가에 의해 국민이 아니라 “진압의 대상”으로, 인간이 아니라 “제거해야 하는 위험”으로 취급되었다.
폭력은 총과 곤봉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폭력은 먼저 언어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폭도라고 부르고, 불순분자라고 부르고, 빨갱이라고 부르는 순간, 국가는 그 사람들의 고통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죽음을 설명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이름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은 진압해야 할 대상이 되고, 들어야 할 고통은 침묵시켜도 되는 소음이 된다.
국가폭력은 언제나 인간의 이름을 먼저 빼앗는다. 시민은 폭도가 되고, 이웃은 불순분자가 되고, 항의하는 사람은 선동세력이 된다. “빨갱이”, “폭도”, “불순분자” 같은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사람, 버려도 되는 사람, 애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만드는 정치적 장치다. 그래서 비인간화는 폭력의 전조가 아니라 폭력 그 자체의 시작이다.
폭력은 총과 곤봉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폭력은 먼저 언어 속에서 시작된다.
5·18이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인간화의 언어는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도 노동조합원,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이주민은 “비용”, “민폐”, “위협”, “비국민”이라는 말들 속에서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다. 누군가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 호명하는 언어는 언제나 폭력을 예감하게 한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매일 제거당할 위험을 직면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안전한 일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5·18에 등장한 “탱크 데이”: 기억의 상품화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 데이” 사건은 그래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5월 18일, 신세계그룹 계열이 운영하는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판촉 행사에 “Tank Da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가폭력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바로 그날, 탱크를 마케팅 언어로 꺼낸 것이다. 여기에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더해졌다. 의도 여부와 별개로, 이것은 역사적 국가폭력의 기억을 상업적 농담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특히 SNS에서 “멸공”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회적 위치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공적 발화와 기업 메시지의 책임을 묻는 문제로 확장된다. 영향력 있는 인물과 기업의 말은 사회적 허가가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숨어 하는 말이 아니라, 얼굴과 이름을 걸고 공적인 장소에서 해도 되는 말처럼 힘을 얻는다. 역사왜곡과 조롱은 그렇게 “해도 되는 말”이 되고, “해도 되는 말”은 다시 혐오와 폭력의 문턱을 낮춘다.
정용진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책임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말로 설명하는 순간, 문제의 핵심은 흐려진다. ‘탱크 데이’와 ‘책상에 탁’은 단순히 서로 다른 생각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폭력과 학살, 고문치사의 기억을 판촉과 농담의 언어로 바꾼 일이다. 사과가 진정 책임의 언어가 되려면, 왜 그런 표현이 기업 안에서 가능했는지, 어떤 역사 의식과 공적 책임이 무너졌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표현이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적 폭력의 기억이 마케팅 언어가 되는 순간, 고통은 맥락을 잃고 소비 가능한 이미지가 된다. 탱크는 더 이상 시민을 향한 국가폭력의 상징이 아니라 이벤트의 이름이 되고, “책상에 탁”은 고문치사의 기억이 아니라 클릭을 유도하는 문구가 된다. 이것이 기억의 상품화다. 피해자의 고통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표현만 남는다.
어떤 사회가 무엇을 농담으로 허용하는지는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농담으로 만들 수 있는 사회가 자유로운 사회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 학살, 고문, 배제의 기억까지 웃음과 판촉의 재료가 될 때, 그 사회는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이 사건을 문제 삼는 이유는 특정 기업 하나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말을 공적으로 허용하는가가 결국 어떤 공동체를 만드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적 폭력을 조롱하는 언어가 농담과 마케팅이 되는 사회는, 지금 여기의 차별과 억압 역시 쉽게 농담으로 소비하는 사회가 된다.
5·18 정신은 인권의 정신이다
5·18 정신은 인권의 정신이다. 인권은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권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시민의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없고, 다수는 어떤 이유로도 소수의 존엄을 박탈할 수 없다. 공동체는 어느 누구도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내며 자신은 안전해진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인권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다. 인권은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선이다. 먹을 권리, 이동할 권리, 말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모두 “당신은 없어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약속이다. 5·18은 바로 이 약속이 국가에 의해 무너졌을 때, 시민들이 다시 서로에게 그 약속이 되어준 사건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인권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권은 법전에 적힌 권리 목록만이 아니다. 인권은 누군가가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할 때, 공동체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감각이다. 아무리 권력이 강하고, 아무리 다수가 원하고, 아무리 질서라는 이름이 앞세워져도,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제거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5·18은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인권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는가. 국가는 언제 시민을 적으로 만드는가. 공동체는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애도하고,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침묵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고통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있는가.
광주는 서로를 버리지 않은 도시였다
5·18을 피해와 학살의 역사로만 기억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광주는 단지 “죽임당한 도시”가 아니었다. 광주는 “서로를 살린 도시”이기도 했다. 제도적 민주주의 안에서도 서로 돌봄을 외면하는 오늘날과 달리, 광주는 제도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돌봄의 민주주의를 실천한 곳이었다.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을 때, 시민들은 서로를 보호했다. 부상자를 치료하고, 헌혈을 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서로를 숨겨주고, 서로에게 밥을 지어주며, 길 위의 낯선 사람을 이웃으로 대했다. 총성이 울리는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끝내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광주는 국가가 물러난 자리에 반드시 혼란만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폭력적인 국가가 시민을 버린 자리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국가가 되었다. 서로를 보호하고, 먹이고, 치료하고, 애도하고, 지켰다. 이것은 무정부적 혼란이 아니라 돌봄의 질서였다. 국가가 독점하던 안전의 언어가 무너진 자리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생명에 책임지는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국가가 없으면 인간은 야만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상상한다. 강한 통제와 질서가 없으면 사람들은 서로를 해칠 것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광주는 그와 전혀 다른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공포 속에서도 서로를 돌볼 수 있다. 절망 속에서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총성과 죽음의 한가운데에서도 누군가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넬 수 있다. 이것이 5·18이 남긴 가장 깊은 인간학적 증언이다.
국가의 부재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5·18의 중요한 의미다. 우리는 보통 정치를 권력, 제도, 선거, 정당, 법률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실제로 유지하는 힘은 언제나 돌봄이다. 다친 몸을 부축하는 사람, 두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없다면 어떤 민주주의도 지속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투표함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생명, 존엄, 돌봄을 포기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살아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 Unsplash의 ASIA CULTURECENTER
돌봄은 민주주의의 중심이다
5·18 정신을 지킨다는 것은 돌봄을 사적인 미덕이나 젠더화된 보조 노동으로 낮추지 않는 일이다. 돌봄은 사회의 주변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중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의존적이고, 살아 있는 매 순간 다른 사람들에 기대어 있다.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말은 근대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다. 광주는 이 상호의존의 진실을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혼자 버티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생명줄이 되는 일임을 보여주었다.
돌봄은 친절이나 선의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돌봄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이해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몸과 시간과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아플 때, 늙을 때, 다칠 때, 슬플 때, 이동할 수 없을 때, 말할 힘을 잃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돌봄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보조 장치가 아니라, 사회가 애초에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는 돌봄을 주변화한다. 돌봄은 가족 안의 일로, 여성의 일로, 사적인 책임으로, 저임금 노동으로 밀려난다. 반면 생산성, 경쟁, 성장, 효율은 사회의 중심 언어가 된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이동하고, 더 강하게 경쟁하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믿게 한다. 그러나 돌봄이 사라진 사회는 아무리 부유해도 안전하지 않다. 돌봄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사회는 아무리 민주적 절차를 갖추어도 평등하지 않다.
5·18이 보여준 돌봄은 감상적인 온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서로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단이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건네는 일, 부상자를 옮기는 일, 시신을 수습하는 일, 낯선 사람을 숨겨주는 일은 모두 “당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였다.
5·18 정신은 민주주의의 정신이되, 민주주의보다 넓다.
그것은 인권의 정신이고, 돌봄의 정신이며, 포함의 정신이고, 평화의 정신이다.
돌봄 민주주의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로 이해될 때가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다수결이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가장 취약한 사람을 공동체의 중심에 놓이는 방식이다.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체제가 아니라, 누가 더 쉽게 버려지는지를 묻는 정치다. 5·18 정신을 오늘 다시 잇는다는 것은 바로 이 돌봄의 정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포함은 관용이 아니라 공동체의 설계다
이것은 다양성과 포함의 철학으로도 이어진다. 포함은 “나와 다른 사람도 받아주자”는 식의 포용이나 관용이 아니다. 포함은 공동체가 누구를 중심에 놓고 설계되는가의 문제다. 누구의 고통이 들리는가, 누구의 안전이 계산되는가, 누구의 죽음이 애도되는가, 누구의 삶이 사회를 구성하는 삶으로 인정되는가의 문제다. 포함은 누가 이 공동체와 사회의 중심이고 누가 주변으로 밀려나는지 묻는다.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길과 건물이 설계되는가. 어떤 가족만 “정상 가족”으로 인정되는가. 어떤 노동이 보이고 어떤 노동은 보이지 않는가. 포함은 바로 이 질문들로 공동체의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5·18의 광주에는 학생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노동자, 상인, 여성, 청년, 노인, 운전기사, 가난한 시민들, 이름 없이 움직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서, 같은 위험 앞에서,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존재한 것이다. 광주의 공동체성은 모두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위험 앞에서 서로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의 포함은 이 기억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 이주한 사람, 성소수자, 노동자, 노인, 어린이, 아픈 사람, 재난에 더 취약한 사람들을 공동체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놓아야 한다. 포함은 다양성을 장식처럼 전시하는 일이 아니다. 포함은 공동체의 설계 원리를 바꾸는 일이다.
그렇기에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 곁에서 반복되는 비인간화의 언어를 알아차리고 멈추는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누군가가 계속 바깥으로 밀려나는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포함은 좋은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도, 공간, 언어, 교육, 예산, 법,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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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지키는 법과 공적 책임
여기서 우리는 “기억을 지키는 법”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독일은 나치 범죄의 부인과 축소를 단순한 의견으로 방치하지 않는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 폭력·자의적 조치 요구,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모욕·비방 등을 처벌하는 조항이며, 나치 지배 아래 자행된 범죄를 공개적으로 승인·부인·축소해 공공의 평온을 해칠 수 있는 경우도 문제 삼는다. 독일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과거를 성역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국가범죄의 부인은 피해자를 다시 침묵시키고, 가해자의 언어를 되살리며, 혐오와 폭력의 조건을 다시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억의 강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5·18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거나, “폭동”이라고 부르거나, “탱크 데이”라고 희화화하거나, 참여 시민과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말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일이며, 유족과 생존자에게 반복되는 2차 폭력이다. 이미 5·18 특별법은 허위정보 유포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법이 고의적 왜곡과 혐오 선동으로부터 피해자의 존엄과 공동체의 진실을 지키는 방식으로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도 더 분명한 기억의 법과 공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하나의 역사 해석을 강제해서는 안 되며, 학문적 연구와 예술적 표현은 폭넓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피해자의 존엄을 반복적으로 훼손하고, 국가폭력의 책임을 지우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할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 언론인, 공공기관, 영향력 있는 기업이 그런 말을 할 때는 더 강한 책임이 필요하다. 공적 발화는 사적인 푸념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역사왜곡에는 강한 벌금형, 정정보도, 공식 사과, 재발방지 교육, 공적 직무 수행상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물론 법은 기억을 대신할 수 없다. 법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혐오와 조롱은 법망을 피해 농담이 되고, 밈이 되고, 암시가 되고, “그냥 장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최소한의 경계선이어야 하고, 그 경계선 안쪽에서는 교육과 언론, 시민사회와 정치가 함께 기억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처벌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말이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지 사회가 함께 배워가는 일이다.
안전을 다시 정의하기
기억을 지키는 일은 결국 안전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는 안전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광주에서 국가가 지키려 했던 안전은 시민의 생명이 아니라 권력의 안정이었다. 반대로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서로의 몸과 삶, 공동체의 존엄이었다. 하나는 체제(즉 국가 혹은 자본주의와 같은 구조)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안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체제를 바꾸려는 안전이다. 5·18 정신은 후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 질문은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노동재해, 기후재난,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도 연결된다. 재난은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게 닥치지 않는다. 사회가 이미 약하게 만들어놓은 사람들이 더 먼저 다치고, 더 늦게 구조되며, 더 쉽게 잊힌다. 그러므로 안전은 공권력 투입과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놓고 공동체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다.
재난은 단지 위험이 발생했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위험 앞에서도 누군가는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정보를 접할 수 없다. 누군가는 피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피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동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계단과 문턱 앞에서 멈춰야 한다. 재난은 위험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만날 때 발생한다.
안전은 가장 빠르고 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늦게 대피하는 사람, 가장 먼저 버려지는 사람, 가장 쉽게 침묵당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사회,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이 반복되는 사회, 이주민과 빈민이 재난 앞에서 더 쉽게 고립되는 사회, 기후위기의 피해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도착하는 사회는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 위험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전가되지 않는 사회, 애도받을 자격이 차별적으로 배분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5·18 정신으로 만드는 사회의 안전이다. 안전은 누구도 버려지지 않게 만드는 조건이다.
우리는 누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
누구의 고통을 들을 것인가?
누구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것인가?
세계의 기억들과 연결하기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5·18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파리 코뮌처럼 시민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조직한 역사와, 남아프리카의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처럼 인간을 등급화하는 체제에 맞선 역사와, 미국 흑인민권운동처럼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맞서 존엄을 외친 역사와도 이어져 있다.
세계의 국가폭력과 민중 저항의 역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는가.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적으로 만드는가. 죽은 사람의 이름은 어떻게 다시 산 사람의 책임이 되는가. 파리 코뮌,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흑인민권운동, 제주 4·3, 그리고 광주는 서로 다른 역사이지만 모두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공동체가 얼마나 포함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제주 4·3 역시 냉전과 분단,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 오랜 침묵과 명예회복의 역사 속에서 함께 기억되어야 할 사건이다. 제주 4·3은 광주와 다른 역사이지만, 국가가 특정한 사람들을 “빨갱이”, “폭도”, “위험”으로 부르며 민간인의 생명을 지운 역사라는 점에서 광주와 깊이 만난다. 오랜 침묵과 낙인 속에서 살아온 유족들의 시간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실이 늦게 도착했을 때, 공동체는 어떻게 다시 책임질 것인가.
광주와 제주는 각각 다른 역사이지만, 국가폭력의 기억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묻는 현재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국가는 언제 시민을 적으로 만드는가. 사람들은 폭력 앞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회복하는가. 기억은 어떻게 다시 해방의 힘이 되는가.
기억은 현재의 책임이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다. 기억은 과거가 현재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들이 남긴 질문을 다시 들을 수 있다. 왜 국가는 시민을 죽였는가. 왜 이웃은 빨갱이가 되었는가. 왜 어떤 죽음은 오래도록 애도받지 못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고통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있는가.
그래서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추모식에 참석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현재의 책임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기억이 과거에 머물면 기념이 되지만, 현재를 바꾸면 정치가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왜곡과 혐오로부터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의 자기방어가 된다.
나는 5·18 정신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되, 그 민주주의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권의 정신이고, 돌봄의 정신이며, 포함의 정신이고, 평화의 정신이다.
그것은 국가폭력에 맞서는 저항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취약함을 끌어안는 공동체의 능력이다.
그것은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의 용기이면서, 낯선 사람의 생명을 내 일처럼 여기는 관계의 감각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기억이면서, 함께 살아갈 세계에 대한 약속이다.
기억은 우리를 과거로만 데려가지 않는다. 제대로 된 기억은 우리가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게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 누구의 언어를 멈춰야 하는지, 어떤 논리에 저항해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어떤 법과 제도와 교육과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가장 깊은 현재의 정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 Unsplash의 ASIA CULTURECENTER
인간을 버리지 않는 세계를 향하여
광주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가. 그리고 거짓과 혐오가 희생자의 이름을 다시 훼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지 “다른 의견”이나 “표현의 자유”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멈춰 세울 것인가.
5·18을 지킨다는 것은 광주를 역사 속에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광주가 보여준 인간의 가능성을 오늘의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다. 국가폭력의 기억을 지킨다는 것은 침묵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회복하고, 국가폭력의 언어가 다시 피해자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5·18 정신은 인간을 제거 가능한 존재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국가폭력의 언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서로 다른 몸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설계다.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이주한 사람, 성소수자, 노동자, 애도받지 못한 사람, 그리고 인간의 질서 안에서 계속 밀려난 생명들까지 함께 살아갈 세계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5·18 정신은 인간이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경쟁보다 돌봄을, 배제보다 포함을, 체제보다 생명을, 침묵보다 존엄을 선택하는 일.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더 깊게 살아내며, 인간이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오늘 다시 이어가야 할 5·18 정신이다.

다른 사람을 버리지 않는 공동체
: 5·18 정신을 돌봄과 포함의 언어로 다시 읽기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5·18 정신을 다시 생각하다
5·18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어 왔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은 군부 권력에 맞섰고, 국가폭력에 저항했으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5·18을 민주주의의 역사로 깊이 기억해 온 것은 매우 중요하며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으로 이어가야 한다.
최근 나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5·18 정신 안에 담긴 더 깊은 의미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충분히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됐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제도, 선거, 정권교체와 같은 것들로만 여겨질 때, 5·18 안에 담긴 피와 눈물, 몸과 관계, 돌봄과 상호의존의 감각은 희미해질 수 있다.
5·18은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생명을 체제 유지의 수단 아래 놓았을 때에도 인간이 끝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것은 한 도시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한 증언이었다.
이 글은 5·18 정신을 세 개의 질문으로 다시 읽어보려 한다. 첫째, 국가는 어떻게 시민을 적으로 만들고, 사람을 제거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가. 둘째, 그런 폭력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는가. 셋째, 오늘 우리는 그 기억을 왜곡과 혐오, 상품화와 조롱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인간이 인간을 버리는 세계인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 세계인가.
사진: Unsplash의 ASIA CULTURECENTER
인간은 끝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가
5·18은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생명을 체제 유지의 수단 아래 놓았을 때에도 인간이 끝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광주의 시민들은 그날 국가에 의해 국민이 아니라 “진압의 대상”으로, 인간이 아니라 “제거해야 하는 위험”으로 취급되었다.
폭력은 총과 곤봉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폭력은 먼저 언어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폭도라고 부르고, 불순분자라고 부르고, 빨갱이라고 부르는 순간, 국가는 그 사람들의 고통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죽음을 설명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이름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은 진압해야 할 대상이 되고, 들어야 할 고통은 침묵시켜도 되는 소음이 된다.
국가폭력은 언제나 인간의 이름을 먼저 빼앗는다. 시민은 폭도가 되고, 이웃은 불순분자가 되고, 항의하는 사람은 선동세력이 된다. “빨갱이”, “폭도”, “불순분자” 같은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사람, 버려도 되는 사람, 애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만드는 정치적 장치다. 그래서 비인간화는 폭력의 전조가 아니라 폭력 그 자체의 시작이다.
5·18이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인간화의 언어는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도 노동조합원,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이주민은 “비용”, “민폐”, “위협”, “비국민”이라는 말들 속에서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다. 누군가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 호명하는 언어는 언제나 폭력을 예감하게 한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매일 제거당할 위험을 직면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안전한 일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5·18에 등장한 “탱크 데이”: 기억의 상품화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 데이” 사건은 그래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5월 18일, 신세계그룹 계열이 운영하는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판촉 행사에 “Tank Da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가폭력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바로 그날, 탱크를 마케팅 언어로 꺼낸 것이다. 여기에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더해졌다. 의도 여부와 별개로, 이것은 역사적 국가폭력의 기억을 상업적 농담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특히 SNS에서 “멸공”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회적 위치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공적 발화와 기업 메시지의 책임을 묻는 문제로 확장된다. 영향력 있는 인물과 기업의 말은 사회적 허가가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숨어 하는 말이 아니라, 얼굴과 이름을 걸고 공적인 장소에서 해도 되는 말처럼 힘을 얻는다. 역사왜곡과 조롱은 그렇게 “해도 되는 말”이 되고, “해도 되는 말”은 다시 혐오와 폭력의 문턱을 낮춘다.
정용진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책임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말로 설명하는 순간, 문제의 핵심은 흐려진다. ‘탱크 데이’와 ‘책상에 탁’은 단순히 서로 다른 생각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폭력과 학살, 고문치사의 기억을 판촉과 농담의 언어로 바꾼 일이다. 사과가 진정 책임의 언어가 되려면, 왜 그런 표현이 기업 안에서 가능했는지, 어떤 역사 의식과 공적 책임이 무너졌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표현이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적 폭력의 기억이 마케팅 언어가 되는 순간, 고통은 맥락을 잃고 소비 가능한 이미지가 된다. 탱크는 더 이상 시민을 향한 국가폭력의 상징이 아니라 이벤트의 이름이 되고, “책상에 탁”은 고문치사의 기억이 아니라 클릭을 유도하는 문구가 된다. 이것이 기억의 상품화다. 피해자의 고통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표현만 남는다.
어떤 사회가 무엇을 농담으로 허용하는지는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농담으로 만들 수 있는 사회가 자유로운 사회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 학살, 고문, 배제의 기억까지 웃음과 판촉의 재료가 될 때, 그 사회는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이 사건을 문제 삼는 이유는 특정 기업 하나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말을 공적으로 허용하는가가 결국 어떤 공동체를 만드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적 폭력을 조롱하는 언어가 농담과 마케팅이 되는 사회는, 지금 여기의 차별과 억압 역시 쉽게 농담으로 소비하는 사회가 된다.
5·18 정신은 인권의 정신이다
5·18 정신은 인권의 정신이다. 인권은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권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시민의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없고, 다수는 어떤 이유로도 소수의 존엄을 박탈할 수 없다. 공동체는 어느 누구도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내며 자신은 안전해진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인권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다. 인권은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선이다. 먹을 권리, 이동할 권리, 말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모두 “당신은 없어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약속이다. 5·18은 바로 이 약속이 국가에 의해 무너졌을 때, 시민들이 다시 서로에게 그 약속이 되어준 사건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인권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권은 법전에 적힌 권리 목록만이 아니다. 인권은 누군가가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할 때, 공동체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감각이다. 아무리 권력이 강하고, 아무리 다수가 원하고, 아무리 질서라는 이름이 앞세워져도,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제거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5·18은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인권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는가. 국가는 언제 시민을 적으로 만드는가. 공동체는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애도하고,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침묵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고통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있는가.
광주는 서로를 버리지 않은 도시였다
5·18을 피해와 학살의 역사로만 기억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광주는 단지 “죽임당한 도시”가 아니었다. 광주는 “서로를 살린 도시”이기도 했다. 제도적 민주주의 안에서도 서로 돌봄을 외면하는 오늘날과 달리, 광주는 제도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돌봄의 민주주의를 실천한 곳이었다.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을 때, 시민들은 서로를 보호했다. 부상자를 치료하고, 헌혈을 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서로를 숨겨주고, 서로에게 밥을 지어주며, 길 위의 낯선 사람을 이웃으로 대했다. 총성이 울리는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끝내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광주는 국가가 물러난 자리에 반드시 혼란만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폭력적인 국가가 시민을 버린 자리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국가가 되었다. 서로를 보호하고, 먹이고, 치료하고, 애도하고, 지켰다. 이것은 무정부적 혼란이 아니라 돌봄의 질서였다. 국가가 독점하던 안전의 언어가 무너진 자리에서, 시민들은 서로의 생명에 책임지는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국가가 없으면 인간은 야만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상상한다. 강한 통제와 질서가 없으면 사람들은 서로를 해칠 것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광주는 그와 전혀 다른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공포 속에서도 서로를 돌볼 수 있다. 절망 속에서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총성과 죽음의 한가운데에서도 누군가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넬 수 있다. 이것이 5·18이 남긴 가장 깊은 인간학적 증언이다.
국가의 부재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5·18의 중요한 의미다. 우리는 보통 정치를 권력, 제도, 선거, 정당, 법률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실제로 유지하는 힘은 언제나 돌봄이다. 다친 몸을 부축하는 사람, 두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없다면 어떤 민주주의도 지속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투표함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생명, 존엄, 돌봄을 포기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살아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 Unsplash의 ASIA CULTURECENTER
돌봄은 민주주의의 중심이다
5·18 정신을 지킨다는 것은 돌봄을 사적인 미덕이나 젠더화된 보조 노동으로 낮추지 않는 일이다. 돌봄은 사회의 주변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중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의존적이고, 살아 있는 매 순간 다른 사람들에 기대어 있다.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말은 근대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다. 광주는 이 상호의존의 진실을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혼자 버티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생명줄이 되는 일임을 보여주었다.
돌봄은 친절이나 선의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돌봄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이해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몸과 시간과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아플 때, 늙을 때, 다칠 때, 슬플 때, 이동할 수 없을 때, 말할 힘을 잃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돌봄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보조 장치가 아니라, 사회가 애초에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는 돌봄을 주변화한다. 돌봄은 가족 안의 일로, 여성의 일로, 사적인 책임으로, 저임금 노동으로 밀려난다. 반면 생산성, 경쟁, 성장, 효율은 사회의 중심 언어가 된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이동하고, 더 강하게 경쟁하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믿게 한다. 그러나 돌봄이 사라진 사회는 아무리 부유해도 안전하지 않다. 돌봄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사회는 아무리 민주적 절차를 갖추어도 평등하지 않다.
5·18이 보여준 돌봄은 감상적인 온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서로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단이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건네는 일, 부상자를 옮기는 일, 시신을 수습하는 일, 낯선 사람을 숨겨주는 일은 모두 “당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였다.
돌봄 민주주의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로 이해될 때가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다수결이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가장 취약한 사람을 공동체의 중심에 놓이는 방식이다.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체제가 아니라, 누가 더 쉽게 버려지는지를 묻는 정치다. 5·18 정신을 오늘 다시 잇는다는 것은 바로 이 돌봄의 정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포함은 관용이 아니라 공동체의 설계다
이것은 다양성과 포함의 철학으로도 이어진다. 포함은 “나와 다른 사람도 받아주자”는 식의 포용이나 관용이 아니다. 포함은 공동체가 누구를 중심에 놓고 설계되는가의 문제다. 누구의 고통이 들리는가, 누구의 안전이 계산되는가, 누구의 죽음이 애도되는가, 누구의 삶이 사회를 구성하는 삶으로 인정되는가의 문제다. 포함은 누가 이 공동체와 사회의 중심이고 누가 주변으로 밀려나는지 묻는다.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길과 건물이 설계되는가. 어떤 가족만 “정상 가족”으로 인정되는가. 어떤 노동이 보이고 어떤 노동은 보이지 않는가. 포함은 바로 이 질문들로 공동체의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5·18의 광주에는 학생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노동자, 상인, 여성, 청년, 노인, 운전기사, 가난한 시민들, 이름 없이 움직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서, 같은 위험 앞에서,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존재한 것이다. 광주의 공동체성은 모두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위험 앞에서 서로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 곁에서 반복되는 비인간화의 언어를 알아차리고 멈추는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누군가가 계속 바깥으로 밀려나는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포함은 좋은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도, 공간, 언어, 교육, 예산, 법,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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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지키는 법과 공적 책임
여기서 우리는 “기억을 지키는 법”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독일은 나치 범죄의 부인과 축소를 단순한 의견으로 방치하지 않는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집단에 대한 증오 선동, 폭력·자의적 조치 요구,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모욕·비방 등을 처벌하는 조항이며, 나치 지배 아래 자행된 범죄를 공개적으로 승인·부인·축소해 공공의 평온을 해칠 수 있는 경우도 문제 삼는다. 독일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과거를 성역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국가범죄의 부인은 피해자를 다시 침묵시키고, 가해자의 언어를 되살리며, 혐오와 폭력의 조건을 다시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억의 강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5·18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거나, “폭동”이라고 부르거나, “탱크 데이”라고 희화화하거나, 참여 시민과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말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일이며, 유족과 생존자에게 반복되는 2차 폭력이다. 이미 5·18 특별법은 허위정보 유포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법이 고의적 왜곡과 혐오 선동으로부터 피해자의 존엄과 공동체의 진실을 지키는 방식으로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도 더 분명한 기억의 법과 공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하나의 역사 해석을 강제해서는 안 되며, 학문적 연구와 예술적 표현은 폭넓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피해자의 존엄을 반복적으로 훼손하고, 국가폭력의 책임을 지우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할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 언론인, 공공기관, 영향력 있는 기업이 그런 말을 할 때는 더 강한 책임이 필요하다. 공적 발화는 사적인 푸념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역사왜곡에는 강한 벌금형, 정정보도, 공식 사과, 재발방지 교육, 공적 직무 수행상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물론 법은 기억을 대신할 수 없다. 법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혐오와 조롱은 법망을 피해 농담이 되고, 밈이 되고, 암시가 되고, “그냥 장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최소한의 경계선이어야 하고, 그 경계선 안쪽에서는 교육과 언론, 시민사회와 정치가 함께 기억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처벌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말이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지 사회가 함께 배워가는 일이다.
안전을 다시 정의하기
기억을 지키는 일은 결국 안전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는 안전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광주에서 국가가 지키려 했던 안전은 시민의 생명이 아니라 권력의 안정이었다. 반대로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서로의 몸과 삶, 공동체의 존엄이었다. 하나는 체제(즉 국가 혹은 자본주의와 같은 구조)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안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체제를 바꾸려는 안전이다. 5·18 정신은 후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 질문은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노동재해, 기후재난,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도 연결된다. 재난은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게 닥치지 않는다. 사회가 이미 약하게 만들어놓은 사람들이 더 먼저 다치고, 더 늦게 구조되며, 더 쉽게 잊힌다. 그러므로 안전은 공권력 투입과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놓고 공동체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다.
재난은 단지 위험이 발생했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위험 앞에서도 누군가는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정보를 접할 수 없다. 누군가는 피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피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동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계단과 문턱 앞에서 멈춰야 한다. 재난은 위험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만날 때 발생한다.
안전은 가장 빠르고 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늦게 대피하는 사람, 가장 먼저 버려지는 사람, 가장 쉽게 침묵당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사회,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이 반복되는 사회, 이주민과 빈민이 재난 앞에서 더 쉽게 고립되는 사회, 기후위기의 피해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도착하는 사회는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 위험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전가되지 않는 사회, 애도받을 자격이 차별적으로 배분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5·18 정신으로 만드는 사회의 안전이다. 안전은 누구도 버려지지 않게 만드는 조건이다.
세계의 기억들과 연결하기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5·18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파리 코뮌처럼 시민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조직한 역사와, 남아프리카의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처럼 인간을 등급화하는 체제에 맞선 역사와, 미국 흑인민권운동처럼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맞서 존엄을 외친 역사와도 이어져 있다.
세계의 국가폭력과 민중 저항의 역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는가.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적으로 만드는가. 죽은 사람의 이름은 어떻게 다시 산 사람의 책임이 되는가. 파리 코뮌,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흑인민권운동, 제주 4·3, 그리고 광주는 서로 다른 역사이지만 모두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공동체가 얼마나 포함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제주 4·3 역시 냉전과 분단,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 오랜 침묵과 명예회복의 역사 속에서 함께 기억되어야 할 사건이다. 제주 4·3은 광주와 다른 역사이지만, 국가가 특정한 사람들을 “빨갱이”, “폭도”, “위험”으로 부르며 민간인의 생명을 지운 역사라는 점에서 광주와 깊이 만난다. 오랜 침묵과 낙인 속에서 살아온 유족들의 시간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실이 늦게 도착했을 때, 공동체는 어떻게 다시 책임질 것인가.
광주와 제주는 각각 다른 역사이지만, 국가폭력의 기억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묻는 현재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국가는 언제 시민을 적으로 만드는가. 사람들은 폭력 앞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회복하는가. 기억은 어떻게 다시 해방의 힘이 되는가.
기억은 현재의 책임이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다. 기억은 과거가 현재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들이 남긴 질문을 다시 들을 수 있다. 왜 국가는 시민을 죽였는가. 왜 이웃은 빨갱이가 되었는가. 왜 어떤 죽음은 오래도록 애도받지 못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고통을 들리지 않게 만들고 있는가.
그래서 5·18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추모식에 참석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현재의 책임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기억이 과거에 머물면 기념이 되지만, 현재를 바꾸면 정치가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왜곡과 혐오로부터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의 자기방어가 된다.
기억은 우리를 과거로만 데려가지 않는다. 제대로 된 기억은 우리가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게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 누구의 언어를 멈춰야 하는지, 어떤 논리에 저항해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어떤 법과 제도와 교육과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가장 깊은 현재의 정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사진: Unsplash의 ASIA CULTURECENTER
인간을 버리지 않는 세계를 향하여
광주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가. 그리고 거짓과 혐오가 희생자의 이름을 다시 훼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지 “다른 의견”이나 “표현의 자유”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멈춰 세울 것인가.
5·18을 지킨다는 것은 광주를 역사 속에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광주가 보여준 인간의 가능성을 오늘의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다. 국가폭력의 기억을 지킨다는 것은 침묵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회복하고, 국가폭력의 언어가 다시 피해자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5·18 정신은 인간을 제거 가능한 존재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국가폭력의 언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서로 다른 몸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설계다.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이주한 사람, 성소수자, 노동자, 애도받지 못한 사람, 그리고 인간의 질서 안에서 계속 밀려난 생명들까지 함께 살아갈 세계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5·18 정신은 인간이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경쟁보다 돌봄을, 배제보다 포함을, 체제보다 생명을, 침묵보다 존엄을 선택하는 일.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더 깊게 살아내며, 인간이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오늘 다시 이어가야 할 5·18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