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남목고 여혜경 교사·가수 하림
- 우사일 프로젝트, 아프가니스탄 언어로 진행
- ‘아프간 특별기여자’ 남목고 학생 참여해 의의
- 교사·가수 등 각각 가진 능력으로 이민자 도와
가수 하림의 작업실에서 남목고 여혜경 교사와 하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지난해 3월, 울산시 고(故) 노옥희 교육감은 울산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를 함께했다. 당시 일부 학부모의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 교육감은 수차례 학부모들을 설득한 끝에 이들의 마음을 돌려놨다. 차별 없는 교육 지원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진보 교육의 거목이자,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았던 노 교육감은 2022년 12월 8일 별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빈자리엔 노옥희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다. 빈자리를 묵묵히 메우는 이들은 남목고 여혜경 교사와 가수 하림이다. 이들은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합니다(이하 우사일)’ 노래를 아프가니스탄 청소년들과 함께 부르며 이주민에 대한 차별에 맞섰다.
‘우사일’ 번역에 나선 청소년은 2년 전 ‘아프간 특별기여자’로 울산에 정착한 남목고등학교 살림, 와리스, 다우드, 아지미다. 모국어로 함께 부르는 우사일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을 수행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여혜경 교사와 예술가의 선의지를 바탕으로,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불러온 가수 하림을 만나봤다.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우사일을 부르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나.
여혜경 : 청소년다양성훈련캠프에 참여한 이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프간어로 우사일을 번역을 시도해보게 됐다. 아이들은 해당 언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살던 나라의 언어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그 행위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우사일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좋은 성장의 시간이 될 것으로 판단했고,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주변 친구들이 느끼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 흔쾌히 참여했다.
함께 만들어 낸 번역본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아이들과 어울려 만든 창작물이 탄생하고, 아이들이 아프간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자긍심을 느끼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들을 잘 몰랐을 때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함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가까워지는 학생들과 다른 교사들을 보며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림 : 음악가적인 관점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불렀을 때 분명 유의미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예술적인 실험에 가깝다. 단순히 금액을 지불하고 번역을 의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기에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끝맺음을 지을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완전히 다른 언어인 아프가니스탄어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한국에 일하기 위해 유랑하는 사람들이다.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국의 노동 문제를 많이 알게 됐지만, 현실에서 그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 아프간에서 이민 온 친구들에게 힘이 닿는 대로 돕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
청소년다양성훈련캠프에 대해 설명하는 여혜경 교사 ⓒ투데이신문
Q. 여혜경 선생님은 청소년다양성훈련캠프에 참여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이 경험이 우사일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친 건가.
여혜경 : 평소 시민성의 가치에 대한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이번 캠프를 열었을 때, 학생들에게 해당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알렸는데, 문득 나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다양성 가치를 존중, 함양시키는지 너무 궁금해 문의했더니 교사 아닌, 학생과 똑같이 참여할 수 있을 때 등록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학생들과의 나이 차 때문에 학생들이 불편해하진 않을까 걱정됐지만 함께 여러 프로그램들을 수행하면서 수업에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특히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다양성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학생이 같이 모여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대화하는 자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때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하림씨를 연결해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Q. 하림씨도 아프간 특별기여자가 한국에 입국한다는 소식과 동시에 목소리를 내오셨는데.
하림 : 한 번은 예멘 난민들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업로드했는데 당시 악플을 엄청나게 받았다.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단순히 아프간 사람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행복하게 해달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노래다. 수 마디의 글보다 노래 하나를 올렸다. 이 노래를 누군가는 듣고 고향의 노래를 불러주는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울산에 아프간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소식을 접했고, 또 우사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들과 연결됐다. 자세히 논의하는 과정 없이 일단 ‘나는 아프간 언어로 번역된 이 노래를 불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모이고 모여 여기까지 도달하게 됐다.
하림의 작업실에 놓인 월드뮤직 악기들 ⓒ투데이신문
Q. 아프간 특별기여자나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가.
여혜경 : 역사 교사라는 특성상 전쟁과 유랑에 대해 늘 관심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에 대해 고민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멘 난민 문제의 경우 통합사회 수업에서 한 번 다뤘는데, 그 이후 아프간 학생들이 울산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것도 작년 2월에 내가 사는 울산 동부지역에 온다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그 아이들을 너무 만나고 싶었다. 분명 이 아이들이 살아가며 겪을 어려움들이 있을 텐데, 우리 학교에 온다면 내가 작게나마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난민 문제는 나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문제였다. 따라서 후원 정도의 도움만 줄 수밖에 없었는데, 내 삶에 이들이 들어온 순간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하림 : 작업실을 보면 알겠지만 외국 악기들이 많다. 월드 뮤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혼자 공부하고,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역사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전쟁, 특히 유랑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
음악가적인 관점에서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공연을 내가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노래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음악은 세상 전부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체험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래를 부르기보다, 이주노동자들도 노래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런 마음으로 아랍에서,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쓰이게 됐다.
Q.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많이 부족한 듯하다.
하림 :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어렸을 적, 프랑스 파리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여긴 왜 이렇게 이주민이 많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에서 접한 프랑스 파리는 낭만적이고, 머리 하얀 백인들이 앉아있는 카페들이 가득한 곳으로만 표현됐다. 그런데 실제 프랑스는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 살고 있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로부터 지금 2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그때 느꼈던 이상한 감정은 지금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단순히 아프간에서, 먼 곳에서 힘들게 고생해서 왔으니까 사랑하자는 설득은 먹히지 않는다 생각한다. 이런 인식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조금씩 천천히 변화를 도모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혜경 : 울산 동구 지역의 경우 항상 외국인이 많았다. 중공업 조선소가 있다 보니 이주민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됐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지면서 이주민 노동자들이 대거 울산 동구로 삶의 터전을 꾸리기 위해 왔을 때, 이슬람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을 느꼈던 것 같다. 선주민과 다른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아직은 미흡한 듯하다.
하림이 여혜경 교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Q. 미디어가 선입견을 만드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
하림 : 국내영화에서 만들어내는 중국인, 조선족에 대한 비하 문제 등 이런 것부터 시작해 할리우드 영화들이 만들어내는 아랍 사람들의 이미지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영화 몇 편만 살펴봐도 이들은 전부 흉악 범죄자에, 테러리스트처럼 느껴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급격히 바꿀 수는 없기에 이를 위해선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Q. 수업 중 학생들이 난민 포용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여혜경 : 아프간 학생들이 오기 전에 통합 사회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예멘 난민 문제가 교과서에 실려있었는데, 아이들은 난민 문제에 대해 포용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나의 오판이었다. 4대 6의 결과가 나왔는데 60%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아이들의 답변은 ‘세금이 나간다’, ‘우리가 도와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두렵다’였다.
이 두려움은 부정확한 정보와 이주민과의 긍정적인 경험 부재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두려움은 한 인간을 이해하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에게 이주민 학생들과의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자 한다.
Q. 두 분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왔다. 정작 본인들은 누구에게서 위안을 얻는가.
여혜경 : 누구나 다 그렇듯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이런저런 고민도 나누고 소통하면서 위로나 힘을 얻는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교사들과의 모임을 통해 그간의 행위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 그래도 내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활동을 통해 달라지는 제자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또 역사 교사이기에 역사 공부를 하면서도 힘을 얻기도 한다.(웃음)
하림 : 친구들과 친구들의 성공을 통해 위로받는다. 대중들이 보기에 친구들이라 하면 유명한 가수들일 거로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친구들은 같이 공연하며 전국을 누비는 사람들, 그리고 남들이 시킨 것도 아니고 돈도 안 되는 일을 할 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다.
주위 친구들 모두 공연 업계와 인디 음악계를 위해 각자 모두의 자리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 이 사람들이 같이 서로 조금씩, 아주 작게라도 한 걸음 나아가는 그 순간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번 우사일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주위의 호응과 관심이라는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기에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 울산 노옥희 교육감의 책 이제 다시 시작이다 ⓒ투데이신문
Q. 돈도 안 되고, 어렵기만 한 일.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하림 : 어떤 일을 대할 때 장인의 자세와 상인의 자세, 두 가지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상인의 자세는 어떤 상황이든 금전적인 이득을 우선시하는 것을 칭한다. 스스로가 상인의 자세였다면, 모금 활동에 열을 올리고 행사로 인한 수익에 집중했을 것이다. 상인의 자세가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일 뿐이다.
다만, 돈이 아주 많다면 행복할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수익과 기회비용으로 직결된 상인의 자세로는 행복할 수 없다. 결국, 정녕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선, 잘 살기 위해선, 마음속 장인의 자세를 끌어올려야 한다. 돈이 아닌 행위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장인이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그저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 장인의 자세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여혜경 : 학교에 근무하는 한 명의 직장인이 아닌, 교사 자체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통해 아이들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자유, 평등, 정의, 인권, 다양성 등 여러 부분을 습득할 수 있다. 예술가가 대중들에게 예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듯, 교사도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걸 학생들이 잘 배우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가짐이 다양한 활동들을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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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하림의 작업실에서 남목고 여혜경 교사와 하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지난해 3월, 울산시 고(故) 노옥희 교육감은 울산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를 함께했다. 당시 일부 학부모의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 교육감은 수차례 학부모들을 설득한 끝에 이들의 마음을 돌려놨다. 차별 없는 교육 지원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진보 교육의 거목이자,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았던 노 교육감은 2022년 12월 8일 별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빈자리엔 노옥희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다. 빈자리를 묵묵히 메우는 이들은 남목고 여혜경 교사와 가수 하림이다. 이들은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합니다(이하 우사일)’ 노래를 아프가니스탄 청소년들과 함께 부르며 이주민에 대한 차별에 맞섰다.
‘우사일’ 번역에 나선 청소년은 2년 전 ‘아프간 특별기여자’로 울산에 정착한 남목고등학교 살림, 와리스, 다우드, 아지미다. 모국어로 함께 부르는 우사일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을 수행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여혜경 교사와 예술가의 선의지를 바탕으로,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불러온 가수 하림을 만나봤다.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우사일을 부르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나.
여혜경 : 청소년다양성훈련캠프에 참여한 이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프간어로 우사일을 번역을 시도해보게 됐다. 아이들은 해당 언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살던 나라의 언어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그 행위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우사일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좋은 성장의 시간이 될 것으로 판단했고,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주변 친구들이 느끼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 흔쾌히 참여했다.
함께 만들어 낸 번역본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아이들과 어울려 만든 창작물이 탄생하고, 아이들이 아프간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자긍심을 느끼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들을 잘 몰랐을 때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함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가까워지는 학생들과 다른 교사들을 보며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림 : 음악가적인 관점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불렀을 때 분명 유의미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예술적인 실험에 가깝다. 단순히 금액을 지불하고 번역을 의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기에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끝맺음을 지을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완전히 다른 언어인 아프가니스탄어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한국에 일하기 위해 유랑하는 사람들이다.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국의 노동 문제를 많이 알게 됐지만, 현실에서 그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 아프간에서 이민 온 친구들에게 힘이 닿는 대로 돕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
청소년다양성훈련캠프에 대해 설명하는 여혜경 교사 ⓒ투데이신문
Q. 여혜경 선생님은 청소년다양성훈련캠프에 참여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이 경험이 우사일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친 건가.
여혜경 : 평소 시민성의 가치에 대한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이번 캠프를 열었을 때, 학생들에게 해당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알렸는데, 문득 나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다양성 가치를 존중, 함양시키는지 너무 궁금해 문의했더니 교사 아닌, 학생과 똑같이 참여할 수 있을 때 등록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학생들과의 나이 차 때문에 학생들이 불편해하진 않을까 걱정됐지만 함께 여러 프로그램들을 수행하면서 수업에도 영감을 많이 받았다. 특히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다양성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학생이 같이 모여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대화하는 자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때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하림씨를 연결해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Q. 하림씨도 아프간 특별기여자가 한국에 입국한다는 소식과 동시에 목소리를 내오셨는데.
하림 : 한 번은 예멘 난민들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업로드했는데 당시 악플을 엄청나게 받았다.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단순히 아프간 사람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행복하게 해달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노래다. 수 마디의 글보다 노래 하나를 올렸다. 이 노래를 누군가는 듣고 고향의 노래를 불러주는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울산에 아프간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소식을 접했고, 또 우사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들과 연결됐다. 자세히 논의하는 과정 없이 일단 ‘나는 아프간 언어로 번역된 이 노래를 불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모이고 모여 여기까지 도달하게 됐다.
하림의 작업실에 놓인 월드뮤직 악기들 ⓒ투데이신문
Q. 아프간 특별기여자나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가.
여혜경 : 역사 교사라는 특성상 전쟁과 유랑에 대해 늘 관심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에 대해 고민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멘 난민 문제의 경우 통합사회 수업에서 한 번 다뤘는데, 그 이후 아프간 학생들이 울산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것도 작년 2월에 내가 사는 울산 동부지역에 온다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그 아이들을 너무 만나고 싶었다. 분명 이 아이들이 살아가며 겪을 어려움들이 있을 텐데, 우리 학교에 온다면 내가 작게나마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난민 문제는 나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문제였다. 따라서 후원 정도의 도움만 줄 수밖에 없었는데, 내 삶에 이들이 들어온 순간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하림 : 작업실을 보면 알겠지만 외국 악기들이 많다. 월드 뮤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혼자 공부하고,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역사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전쟁, 특히 유랑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
음악가적인 관점에서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공연을 내가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노래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음악은 세상 전부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체험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래를 부르기보다, 이주노동자들도 노래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런 마음으로 아랍에서,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쓰이게 됐다.
Q.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많이 부족한 듯하다.
하림 :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어렸을 적, 프랑스 파리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여긴 왜 이렇게 이주민이 많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에서 접한 프랑스 파리는 낭만적이고, 머리 하얀 백인들이 앉아있는 카페들이 가득한 곳으로만 표현됐다. 그런데 실제 프랑스는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 살고 있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로부터 지금 2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그때 느꼈던 이상한 감정은 지금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단순히 아프간에서, 먼 곳에서 힘들게 고생해서 왔으니까 사랑하자는 설득은 먹히지 않는다 생각한다. 이런 인식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조금씩 천천히 변화를 도모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혜경 : 울산 동구 지역의 경우 항상 외국인이 많았다. 중공업 조선소가 있다 보니 이주민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됐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지면서 이주민 노동자들이 대거 울산 동구로 삶의 터전을 꾸리기 위해 왔을 때, 이슬람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을 느꼈던 것 같다. 선주민과 다른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아직은 미흡한 듯하다.
하림이 여혜경 교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Q. 미디어가 선입견을 만드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
하림 : 국내영화에서 만들어내는 중국인, 조선족에 대한 비하 문제 등 이런 것부터 시작해 할리우드 영화들이 만들어내는 아랍 사람들의 이미지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영화 몇 편만 살펴봐도 이들은 전부 흉악 범죄자에, 테러리스트처럼 느껴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급격히 바꿀 수는 없기에 이를 위해선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Q. 수업 중 학생들이 난민 포용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여혜경 : 아프간 학생들이 오기 전에 통합 사회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예멘 난민 문제가 교과서에 실려있었는데, 아이들은 난민 문제에 대해 포용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나의 오판이었다. 4대 6의 결과가 나왔는데 60%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아이들의 답변은 ‘세금이 나간다’, ‘우리가 도와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두렵다’였다.
이 두려움은 부정확한 정보와 이주민과의 긍정적인 경험 부재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두려움은 한 인간을 이해하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에게 이주민 학생들과의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자 한다.
Q. 두 분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왔다. 정작 본인들은 누구에게서 위안을 얻는가.
여혜경 : 누구나 다 그렇듯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이런저런 고민도 나누고 소통하면서 위로나 힘을 얻는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교사들과의 모임을 통해 그간의 행위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 그래도 내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활동을 통해 달라지는 제자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또 역사 교사이기에 역사 공부를 하면서도 힘을 얻기도 한다.(웃음)
하림 : 친구들과 친구들의 성공을 통해 위로받는다. 대중들이 보기에 친구들이라 하면 유명한 가수들일 거로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친구들은 같이 공연하며 전국을 누비는 사람들, 그리고 남들이 시킨 것도 아니고 돈도 안 되는 일을 할 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다.
주위 친구들 모두 공연 업계와 인디 음악계를 위해 각자 모두의 자리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 이 사람들이 같이 서로 조금씩, 아주 작게라도 한 걸음 나아가는 그 순간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번 우사일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주위의 호응과 관심이라는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기에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 울산 노옥희 교육감의 책 이제 다시 시작이다 ⓒ투데이신문
Q. 돈도 안 되고, 어렵기만 한 일.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하림 : 어떤 일을 대할 때 장인의 자세와 상인의 자세, 두 가지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상인의 자세는 어떤 상황이든 금전적인 이득을 우선시하는 것을 칭한다. 스스로가 상인의 자세였다면, 모금 활동에 열을 올리고 행사로 인한 수익에 집중했을 것이다. 상인의 자세가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일 뿐이다.
다만, 돈이 아주 많다면 행복할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수익과 기회비용으로 직결된 상인의 자세로는 행복할 수 없다. 결국, 정녕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선, 잘 살기 위해선, 마음속 장인의 자세를 끌어올려야 한다. 돈이 아닌 행위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장인이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그저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 장인의 자세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여혜경 : 학교에 근무하는 한 명의 직장인이 아닌, 교사 자체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통해 아이들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자유, 평등, 정의, 인권, 다양성 등 여러 부분을 습득할 수 있다. 예술가가 대중들에게 예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듯, 교사도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걸 학생들이 잘 배우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가짐이 다양한 활동들을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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