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시작된 다양성의 항해
‘모두를 위한 화장실’ 수업 후기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2026년 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다양성을 향한 항해〉라는 수업이 새로 생겼다. 한국 최초로 ‘성소수자 건강권과 의료’ 과목을 만든 윤현배 교수님이 이번에는 ‘다양성’을 제목으로 내건 수업을 연 것이다. 아직은 1학점짜리 선택과목이지만, 나는 이 시작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양성이 정식 교과목의 이름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의료·간호·사회복지·경영처럼 결국 사람을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Human Diversity 과목이 학부와 대학원 모두 1학년 1학기 필수로 제공되는 학교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전공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어린이, 노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떤 억압과 배제를 경험하는지 배우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전문지식 이전에, 사람을 만나는 감각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대학이 바로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귀국한 후 여러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서 ‘사회복지와 인권’, ‘사회문제론’ 등의 이름으로 다양성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회복지학과 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들에도 다양성 과목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양성 수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그 소중한 항해의 2주차를 맡았다. 주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2026년 4월 20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된 이 수업에는 학생 16명과 교수진이 함께했다. 수업은 짝꿍 활동지, 갤러리워크, 스펙트럼 서기, 보드게임, 미니 강연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앉아서 듣기만 하지 않았다. 읽고, 쓰고, 몸을 움직이고, 서로 대화하면서 질문 속으로 들어갔다.
이 방식은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중요하게 실천하고 있는 교육 방법이다. 연구소는 정답을 주입하는 강의보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몸과 경험을 통과해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의 언어를 들으며 배워 가는 활동형·대화형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군가의 삶을 ‘정보’로 아는 것과, 그 삶이 내 감정과 몸, 일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질문해 보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수업 역시 바로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화장실이라는 너무 익숙한 공간을 다시 보게 만들고, 그 공간에서 누가 편안하고 누가 멈추는지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왜 하필 화장실일까. 화장실은 너무 익숙해서 질문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기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늘 긴장과 계획을 동반해야 하는 곳이다. 장애, 질병, 성별정체성, 나이, 돌봄, 노동, 안전, 이동의 문제가 모두 이 작은 공간 안에 겹쳐 있다. 그래서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단지 시설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 사회에서 당연한 시민으로 상정되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묻는 캠페인으로 다뤄 왔다. 인식이 공간을 바꾸고, 바뀐 공간이 다시 우리의 인식을 바꾼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은 바로 그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이번 수업에서 학생들은 장루주머니를 사용하는 사람, 휠체어 이용자, 성별이 다른 자녀와 함께 화장실에 가야 하는 보호자, 논바이너리 당사자, 시각장애인, 고령자, 건설현장 여성노동자 등의 사례를 읽고 이야기했다. 질문은 단순했지만 깊었다. “이것이 내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이 들까.” “이 일이 반복되면 내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의 화장실은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을까.” 학생들은 그 질문을 따라가며 화장실을 편의시설이 아니라, 사회가 누구를 ‘당연한 몸’으로 상정해 왔는지 드러내는 구조로 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수업은 화장실 문제를 단지 ‘불편’의 언어로 다루지 않았다. 화장실을 쉽게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물을 덜 마시고, 식사를 줄이고, 외출을 포기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일로 이어진다. 반복되면 방광염과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설현장 여성노동자나 조선소 노동자뿐 아니라, 병원 안의 간호사들조차 장시간 근무 중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건강 문제를 겪는다는 이야기 역시 수업에서 나왔다. 화장실 접근권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권의 문제이고, 동시에 노동권의 문제다. 의대생들에게도 이것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병원과 의료현장 한가운데의 이야기였다.
돌봄의 문제 역시 분명하게 드러났다. 성별이 다른 어린 자녀와 함께 화장실에 가야 하는 보호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남성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돌봄이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설계된 사회를 보여준다. 누가 아이를 돌보는 존재로 상정되는가, 누가 보호자일 것으로 예상되는가가 공간 속에 이미 새겨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장애와 성소수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돌봄과 젠더 역할의 문제이기도 하다.
수업의 또 다른 축은 ‘정상’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학생들은 스펙트럼 위에 몸을 옮겨 서며 생각했다. 인공장기, 임플란트, 의수·의족을 한 몸은 내 몸인가. 성별적합수술을 했다면 이 몸은 나의 몸인가. 이 질문들은 결국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시스젠더와 이성애, 비장애와 비질병 상태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기준처럼 말한다. 그러나 수업은 그 기준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사람에게 적용될 때 누군가를 화장실 문 앞에서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특히 성별정체성에 대한 설명은 중요했다. 이 수업은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의 경험을 단순한 선택이나 취향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로 다루었다. 내가 나를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세상이 계속 “너는 네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존재의 부정이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오직 두 가지 성별만을 정상으로 상정하는 사회다. 학생들은 이 설명을 통해 성별정체성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성찰은 이 수업이 어디까지 닿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학생은 “내게 당연했던 것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강하게 느꼈다”고 썼고, 또 다른 학생은 현재의 화장실을 “특권그룹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가장 저렴한 화장실”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학생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이 사회에 당신이 머무를 공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메시지”라고 적었다. 학생들은 단지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보드게임 ‘토끼똥 게임’은 그 변화를 더 생생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토끼가 되어 화장실을 이용하고, 노동하고, 당근을 벌고, 시설을 개선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했다. 어떤 학생은 ‘어린이’ 역할을 맡아 높은 변기와 세면대 때문에 무력감과 위축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러나 팀원들과 함께 화장실을 하나씩 바꿔 가며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단지 편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배제되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제한된 자원을 개인 몇 명에게 쓰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데 쓰는 일이 결국 공동체 전체에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썼다. 개인의 적응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 남긴 중요한 감각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은 더 넓은 실천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나에게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별이 다른 자녀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보호자의 상황이 오래 남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시각장애인이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싶다’고 적었다. 또 어떤 학생은 ‘우리 학교부터 시작해서 많은 대학들과 공공기관부터라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시범적으로 설치해 보면 좋겠다’고 썼다. 이 수업이 남긴 것은 “좋은 수업이었다”는 감상만이 아니었다. 내가 당연하게 지나온 공간을 다시 보게 되는 시선, 그리고 그 공간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수업 후반부에는 국내외 사례도 소개되었다. 영국의 체인징 플레이시스 화장실, 일본과 미국의 다양한 모델, 한국의 공항·공공시설·대학 사례까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전혀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었다. 국내 대학 중에는 이미 성공회대와 카이스트에 설치 사례가 있다. 서울대학교에서도 모두를위한화장실 설치가 논의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업은 더 중요하다. 이 수업이 추상적인 담론으로만 남지 않고, 학교 안에서 실제 변화를 상상하고 요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의 문제제기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생들이 직접 말하고, 쓰고, 요구할 때 학교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런 수업이야말로 대학이 학생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의과대학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래의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질병의 목록만이 아니라, 어떤 몸들은 사회적으로 더 자주 배제되고, 더 늦게 발견되며, 더 쉽게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감각이다. 그 감각 없이 의학은 정확할 수는 있어도 충분히 정의롭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다양성을 향한 항해〉의 시작은 작지 않다. 그리고 한국다양성연구소가 그 안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만나, 몸을 움직이고, 대화하고, 함께 상상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연구소가 해 온 교육과 캠페인이 대학 안에서도 충분히 깊고 넓게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이 대화가 더 많은 대학으로, 더 많은 공공기관으로, 더 많은 일상의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단지 새로운 시설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향한 아주 구체적인 약속이다.

대학은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시작된 다양성의 항해
‘모두를 위한 화장실’ 수업 후기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2026년 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다양성을 향한 항해〉라는 수업이 새로 생겼다. 한국 최초로 ‘성소수자 건강권과 의료’ 과목을 만든 윤현배 교수님이 이번에는 ‘다양성’을 제목으로 내건 수업을 연 것이다. 아직은 1학점짜리 선택과목이지만, 나는 이 시작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양성이 정식 교과목의 이름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의료·간호·사회복지·경영처럼 결국 사람을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Human Diversity 과목이 학부와 대학원 모두 1학년 1학기 필수로 제공되는 학교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전공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어린이, 노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떤 억압과 배제를 경험하는지 배우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전문지식 이전에, 사람을 만나는 감각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대학이 바로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귀국한 후 여러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서 ‘사회복지와 인권’, ‘사회문제론’ 등의 이름으로 다양성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회복지학과 뿐만 아니라 다른 학과들에도 다양성 과목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양성 수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그 소중한 항해의 2주차를 맡았다. 주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2026년 4월 20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된 이 수업에는 학생 16명과 교수진이 함께했다. 수업은 짝꿍 활동지, 갤러리워크, 스펙트럼 서기, 보드게임, 미니 강연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앉아서 듣기만 하지 않았다. 읽고, 쓰고, 몸을 움직이고, 서로 대화하면서 질문 속으로 들어갔다.
이 방식은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중요하게 실천하고 있는 교육 방법이다. 연구소는 정답을 주입하는 강의보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몸과 경험을 통과해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의 언어를 들으며 배워 가는 활동형·대화형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군가의 삶을 ‘정보’로 아는 것과, 그 삶이 내 감정과 몸, 일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질문해 보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수업 역시 바로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화장실이라는 너무 익숙한 공간을 다시 보게 만들고, 그 공간에서 누가 편안하고 누가 멈추는지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왜 하필 화장실일까. 화장실은 너무 익숙해서 질문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기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늘 긴장과 계획을 동반해야 하는 곳이다. 장애, 질병, 성별정체성, 나이, 돌봄, 노동, 안전, 이동의 문제가 모두 이 작은 공간 안에 겹쳐 있다. 그래서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단지 시설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 사회에서 당연한 시민으로 상정되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묻는 캠페인으로 다뤄 왔다. 인식이 공간을 바꾸고, 바뀐 공간이 다시 우리의 인식을 바꾼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은 바로 그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이번 수업에서 학생들은 장루주머니를 사용하는 사람, 휠체어 이용자, 성별이 다른 자녀와 함께 화장실에 가야 하는 보호자, 논바이너리 당사자, 시각장애인, 고령자, 건설현장 여성노동자 등의 사례를 읽고 이야기했다. 질문은 단순했지만 깊었다. “이것이 내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이 들까.” “이 일이 반복되면 내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의 화장실은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을까.” 학생들은 그 질문을 따라가며 화장실을 편의시설이 아니라, 사회가 누구를 ‘당연한 몸’으로 상정해 왔는지 드러내는 구조로 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수업은 화장실 문제를 단지 ‘불편’의 언어로 다루지 않았다. 화장실을 쉽게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물을 덜 마시고, 식사를 줄이고, 외출을 포기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일로 이어진다. 반복되면 방광염과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설현장 여성노동자나 조선소 노동자뿐 아니라, 병원 안의 간호사들조차 장시간 근무 중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건강 문제를 겪는다는 이야기 역시 수업에서 나왔다. 화장실 접근권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권의 문제이고, 동시에 노동권의 문제다. 의대생들에게도 이것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병원과 의료현장 한가운데의 이야기였다.
돌봄의 문제 역시 분명하게 드러났다. 성별이 다른 어린 자녀와 함께 화장실에 가야 하는 보호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남성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돌봄이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설계된 사회를 보여준다. 누가 아이를 돌보는 존재로 상정되는가, 누가 보호자일 것으로 예상되는가가 공간 속에 이미 새겨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장애와 성소수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돌봄과 젠더 역할의 문제이기도 하다.
수업의 또 다른 축은 ‘정상’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학생들은 스펙트럼 위에 몸을 옮겨 서며 생각했다. 인공장기, 임플란트, 의수·의족을 한 몸은 내 몸인가. 성별적합수술을 했다면 이 몸은 나의 몸인가. 이 질문들은 결국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시스젠더와 이성애, 비장애와 비질병 상태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기준처럼 말한다. 그러나 수업은 그 기준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사람에게 적용될 때 누군가를 화장실 문 앞에서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특히 성별정체성에 대한 설명은 중요했다. 이 수업은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의 경험을 단순한 선택이나 취향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로 다루었다. 내가 나를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세상이 계속 “너는 네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존재의 부정이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오직 두 가지 성별만을 정상으로 상정하는 사회다. 학생들은 이 설명을 통해 성별정체성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성찰은 이 수업이 어디까지 닿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학생은 “내게 당연했던 것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강하게 느꼈다”고 썼고, 또 다른 학생은 현재의 화장실을 “특권그룹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가장 저렴한 화장실”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학생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이 사회에 당신이 머무를 공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메시지”라고 적었다. 학생들은 단지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보드게임 ‘토끼똥 게임’은 그 변화를 더 생생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토끼가 되어 화장실을 이용하고, 노동하고, 당근을 벌고, 시설을 개선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했다. 어떤 학생은 ‘어린이’ 역할을 맡아 높은 변기와 세면대 때문에 무력감과 위축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러나 팀원들과 함께 화장실을 하나씩 바꿔 가며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단지 편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배제되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제한된 자원을 개인 몇 명에게 쓰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데 쓰는 일이 결국 공동체 전체에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썼다. 개인의 적응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 남긴 중요한 감각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은 더 넓은 실천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나에게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별이 다른 자녀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보호자의 상황이 오래 남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시각장애인이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싶다’고 적었다. 또 어떤 학생은 ‘우리 학교부터 시작해서 많은 대학들과 공공기관부터라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시범적으로 설치해 보면 좋겠다’고 썼다. 이 수업이 남긴 것은 “좋은 수업이었다”는 감상만이 아니었다. 내가 당연하게 지나온 공간을 다시 보게 되는 시선, 그리고 그 공간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수업 후반부에는 국내외 사례도 소개되었다. 영국의 체인징 플레이시스 화장실, 일본과 미국의 다양한 모델, 한국의 공항·공공시설·대학 사례까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전혀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었다. 국내 대학 중에는 이미 성공회대와 카이스트에 설치 사례가 있다. 서울대학교에서도 모두를위한화장실 설치가 논의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업은 더 중요하다. 이 수업이 추상적인 담론으로만 남지 않고, 학교 안에서 실제 변화를 상상하고 요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의 문제제기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생들이 직접 말하고, 쓰고, 요구할 때 학교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런 수업이야말로 대학이 학생들에게 먼저 건네야 할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의과대학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래의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질병의 목록만이 아니라, 어떤 몸들은 사회적으로 더 자주 배제되고, 더 늦게 발견되며, 더 쉽게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감각이다. 그 감각 없이 의학은 정확할 수는 있어도 충분히 정의롭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다양성을 향한 항해〉의 시작은 작지 않다. 그리고 한국다양성연구소가 그 안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만나, 몸을 움직이고, 대화하고, 함께 상상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연구소가 해 온 교육과 캠페인이 대학 안에서도 충분히 깊고 넓게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이 대화가 더 많은 대학으로, 더 많은 공공기관으로, 더 많은 일상의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단지 새로운 시설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향한 아주 구체적인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