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4월 13일, 대통령의 경제 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에 다양성(DEI1))과 고용 그리고 생산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했다. 백악관 보도자료는 이 장을 “비능력주의적 DEI 고용이 GDP에 끼친 비용”을 계량화한 부분으로 소개하고 있고, 본문은 2023년 DEI를 많이 추진한 산업이 그렇지 않은 산업보다 2.7% 덜 생산적이었으며 경제적 손실이 940억 달러, 미국 GDP의 0.34%라고 썼다. 이 보고서를 접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어떤 정치적 전제 위에서 만들어졌느냐”를 읽을 수 있는 관점이다.
이 보고서는 출발점부터 중립적이지 않다. 보고서는 1964년 민권법이 인종에 따른 채용을 금지했다면 DEI는 오히려 그것을 적극 장려했다고 말하며, DEI가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라는 틀을 만든다. 여기서 이미 다양성, 형평, 포함은 ‘차별의 시정’이 아니라 ‘역차별’로 규정된다. 데이터를 펼쳐 내기도 전에, 독자를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동성애차별 반대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의 하트모양을 얼굴에 그린 참가자가 지나가고 있다. ⓒ정의철 기자
방법론의 핵심도 매우 문제적이다. 보고서는 스스로 기업별 DEI 실행 정도를 직접 측정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뒤, 산업·주·연도 고정효과를 통제하고도 남는 “설명되지 않는 소수인종 관리자 비중”을 DEI의 대리변수로 삼는다. 쉽게 말해, 어떤 산업과 어떤 지역에서 소수인종 관리자 비율이 예상보다 빨리 늘면 그것을 곧바로 DEI의 흔적(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조치 등)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보고서의 해석 도약이다. 보고서는 소수인종 노동자나 관리자 자체가 덜 생산적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적어놓고도, 곧바로 문제는 DEI가 인종 할당을 맞추기 위해 “무자격 노동자”를 빠르게 승진시킨 데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보고서가 실제로 관찰한 것은 승진 심사표도, 인사위원회의 토론도, 개별 기업의 선발 기준도 아니다. 보고서가 가진 것은 대리변수와 상관관계뿐이다. 그 위에 “자격보다 인종”과 “무자격 승진”이라는 강한 정치적 서사를 덧씌운 것이다. 이렇듯 데이터는 분석이 아닌 낙인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 보고서의 이중잣대도 눈여겨봐야 한다. 보고서는 맥킨지의 다양성 연구를 향해 상관관계일 뿐이고, 역인과를 배제하지 못했으며, 표본도 자의적으로 골랐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대리변수, 사후적 추세 비교, 그리고 “DEI가 없었다면”이라는 반사실적 가정 위에서 훨씬 더 큰 정치적 결론을 밀어붙인다. 다양성의 긍정적 효과를 말할 때는 상관관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다양성을 공격할 때는 그보다 더 취약한 근거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셈이다. 엄밀한 경제학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엄격하고 선택적으로 관대한 정치 문서라고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후반부로 가면 이 문서의 정치성은 더 노골적이 된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2025년 조치들로 DEI가 축소됐고, 그것이 기업 세계에서 “평등한 기회”의 복귀를 뜻한다고 쓴다. 심지어 미국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 아래 “미국 능력주의의 부활”에 호응해 DEI를 철회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학술 논문이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 노선을 경제학적으로 보이는 문장들로 정당화하는 문서다.
이 보고서를 보수 언론사들이나 경제지들이 그대로 옮겨 적는 보도는 단순한 오독이 아니다. 이 문서는 처음부터 기사 제목으로 바뀌기 쉽게 쓰여 있다. “2.7% 낮은 생산성”, “940억달러 손실”, “능력주의의 부활” 같은 문장만 남기면 자극적인 기사 한 편은 금세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직접 측정은 어렵다”는 보고서 자신의 고백과 대리변수의 한계, 그리고 백악관의 노골적인 정치적 목적은 사라진다. 특히 일부 경제지들은 원래부터 노동, 돌봄, 인권, 안전, 차별 시정을 비용의 언어로 읽는 데 익숙하다. 그러니 백악관이 DEI를 “비효율”과 “비용”의 언어로 공격할 때, 그것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확인해주는 문장처럼 들린다. 받아쓰기 보도는 취재의 게으름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일치에서 나온다.
다양성(권력의 격차에 의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다양성, 인권, 포함, 돌봄은 효율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환영받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터와 공동체를 만드는 토대다. 심리적 안전, 정서적 안정, 육체적 안전이 보장될 때 사람은 비로소 질문할 수 있고, 위험을 말할 수 있고, 괴롭힘과 차별을 감수하지 않고도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장기적인 신뢰 속에서 협력할 수 있다. 능력은 소수만 살아남는 경쟁의 잔혹함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자라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다양성과 포함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차별과 괴롭힘을 방치하는 조직은 법적 비용과 평판 비용을 떠안는다. 미국 EEOC2)는 2024 회계연도에만 8만8천 건이 넘는 차별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고, 최근 발표에서는 피해자들을 위한 금전적 구제가 수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신뢰는 돈이 된다. PwC3)는 소비자들이 신뢰하는 기업에서 더 많이 구매하고, 추천하며, 신뢰를 잃은 기업의 제품 구매를 중단한다고 보고했다. 미국심리학회는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성과와 생산성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고, SHRM4)과 미국 여론조사·컨설팅 전문기관 갤럽도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가 포함되는 환경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될 때 사기, 생산성, 유지율을 높이며 결근과 안전 문제를 줄인다고 말한다. 차별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고, 장기근속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기업에 손해라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국가 운영의 차원에서는 더 분명하다. 한국의 2024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았고, 정부의 공식 지표는 한국의 자살률이 비교 대상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대체로 두 배가량 높다고 설명한다. 이런 사회에서 “포함”과 “환영”은 그저 예쁜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연결이 정신건강을 촉진하고 자해나 자살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며, 외로움과 고립이 우울과 불안, 자살 생각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역시 연결감을 자살 예방의 핵심 보호 요인으로 본다. 어떤 모습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누구나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고 도움을 청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모두가 모두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자체로 자살 예방 정책이다. DEI를 단지 기업 인사의 기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회적 인프라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가치는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 이른바 지구열화(global boiling)의 시대에 포함과 환대는 기후정치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WHO는 기후변화가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평등, 생계, 의료 접근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자체를 훼손하며, 그 피해가 취약하고 소외된 집단에게 불균형하게 집중된다고 지적한다.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는 “정의로운 전환”이 기후 행동의 수준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생계, 공정성, 세대 간 형평을 함께 지켜야 한다고 밝힌다. UN-Habitat(유엔 해비타트, 유엔 인간정주계획) 역시 도시의 기후 대응에서 협력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실제 해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결국 탄소를 줄이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은 따로 갈 수 없다. 배제 없는 전환,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전환, 취약한 존재를 먼저 보호하는 전환이야말로 기후위기를 늦출 사회적 힘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자본이 말하는 능력은 대개 오래 일할 수 있는 몸, 돌봄 부담이 없는 삶, 표준화된 말투와 이력, 기존 네트워크에 익숙한 태도를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의 본질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기준일 때가 많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정의된 능력은 노동자나 공동체를 위해 정의된 능력이 아닌 자본을 위해 정의된 능력이다. 진짜 능력은 누가 더 많이 버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은 채 자기 역량을 펼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의 번아웃 위에 세운 성과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존엄과 참여 위에 세운 지속 가능한 성과가 능력이다.

다양성 ⓒpixabay
효율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자본의 관점에선 시간을 단축하고 이윤을 늘리는 것이 효율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 높은 수익을 냈더라도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소진되고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가 밀려나고, 괴롭힘과 침묵이 조직 문화가 되었다면 그 비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전가된 것이다. 병원과 가정, 지역사회와 국가가 그 비용을 떠안는다. 사람을 버려서 얻은 속도는 효율이 아니라 폭력의 회계처리다. 반대로 접근 가능한 공간, 차별 없는 평가, 예측 가능한 노동시간, 충분한 휴식, 괴롭힘 대응 체계, 다양한 몸과 언어를 고려한 소통 구조,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당장 계산서에서는 비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장치들이 이직, 소진, 사고, 은폐, 갈등, 불신, 숙련의 유실을 줄인다. 사람을 남기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더 유능하고 더 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DEI를 해고하는 능력주의가 아니라, 능력과 효율의 뜻을 다시 쓰는 민주주의다.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안전하게, 더 공정하게, 더 함께. 사람과 생명, 돌봄과 포함을 중심에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질문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터와 공동체와 국가가 더 많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느냐고. 나는 그 질문이야말로 오늘의 정치와 경제가 다시 시작해야 할 자리라고 믿는다. 포함과 환영, 환대의 가치는 기업의 법적 비용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살을 줄이고, 고립을 줄이고, 차별을 줄이며, 기후위기 시대에 서로를 살릴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의 언어다.
각주
1)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다양성, 형평성, 포함)
2) 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평등고용기회위원회 - 미국의 연방 기구
3) PwC(PricewaterhouseCoopers)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 세계적인 다국적 회계·컨설팅 법인
4)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 미국 인사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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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4월 13일, 대통령의 경제 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에 다양성(DEI1))과 고용 그리고 생산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했다. 백악관 보도자료는 이 장을 “비능력주의적 DEI 고용이 GDP에 끼친 비용”을 계량화한 부분으로 소개하고 있고, 본문은 2023년 DEI를 많이 추진한 산업이 그렇지 않은 산업보다 2.7% 덜 생산적이었으며 경제적 손실이 940억 달러, 미국 GDP의 0.34%라고 썼다. 이 보고서를 접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어떤 정치적 전제 위에서 만들어졌느냐”를 읽을 수 있는 관점이다.
이 보고서는 출발점부터 중립적이지 않다. 보고서는 1964년 민권법이 인종에 따른 채용을 금지했다면 DEI는 오히려 그것을 적극 장려했다고 말하며, DEI가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라는 틀을 만든다. 여기서 이미 다양성, 형평, 포함은 ‘차별의 시정’이 아니라 ‘역차별’로 규정된다. 데이터를 펼쳐 내기도 전에, 독자를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동성애차별 반대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의 하트모양을 얼굴에 그린 참가자가 지나가고 있다. ⓒ정의철 기자
방법론의 핵심도 매우 문제적이다. 보고서는 스스로 기업별 DEI 실행 정도를 직접 측정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뒤, 산업·주·연도 고정효과를 통제하고도 남는 “설명되지 않는 소수인종 관리자 비중”을 DEI의 대리변수로 삼는다. 쉽게 말해, 어떤 산업과 어떤 지역에서 소수인종 관리자 비율이 예상보다 빨리 늘면 그것을 곧바로 DEI의 흔적(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조치 등)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보고서의 해석 도약이다. 보고서는 소수인종 노동자나 관리자 자체가 덜 생산적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적어놓고도, 곧바로 문제는 DEI가 인종 할당을 맞추기 위해 “무자격 노동자”를 빠르게 승진시킨 데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보고서가 실제로 관찰한 것은 승진 심사표도, 인사위원회의 토론도, 개별 기업의 선발 기준도 아니다. 보고서가 가진 것은 대리변수와 상관관계뿐이다. 그 위에 “자격보다 인종”과 “무자격 승진”이라는 강한 정치적 서사를 덧씌운 것이다. 이렇듯 데이터는 분석이 아닌 낙인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 보고서의 이중잣대도 눈여겨봐야 한다. 보고서는 맥킨지의 다양성 연구를 향해 상관관계일 뿐이고, 역인과를 배제하지 못했으며, 표본도 자의적으로 골랐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대리변수, 사후적 추세 비교, 그리고 “DEI가 없었다면”이라는 반사실적 가정 위에서 훨씬 더 큰 정치적 결론을 밀어붙인다. 다양성의 긍정적 효과를 말할 때는 상관관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다양성을 공격할 때는 그보다 더 취약한 근거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셈이다. 엄밀한 경제학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엄격하고 선택적으로 관대한 정치 문서라고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후반부로 가면 이 문서의 정치성은 더 노골적이 된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2025년 조치들로 DEI가 축소됐고, 그것이 기업 세계에서 “평등한 기회”의 복귀를 뜻한다고 쓴다. 심지어 미국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 아래 “미국 능력주의의 부활”에 호응해 DEI를 철회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학술 논문이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 노선을 경제학적으로 보이는 문장들로 정당화하는 문서다.
이 보고서를 보수 언론사들이나 경제지들이 그대로 옮겨 적는 보도는 단순한 오독이 아니다. 이 문서는 처음부터 기사 제목으로 바뀌기 쉽게 쓰여 있다. “2.7% 낮은 생산성”, “940억달러 손실”, “능력주의의 부활” 같은 문장만 남기면 자극적인 기사 한 편은 금세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직접 측정은 어렵다”는 보고서 자신의 고백과 대리변수의 한계, 그리고 백악관의 노골적인 정치적 목적은 사라진다. 특히 일부 경제지들은 원래부터 노동, 돌봄, 인권, 안전, 차별 시정을 비용의 언어로 읽는 데 익숙하다. 그러니 백악관이 DEI를 “비효율”과 “비용”의 언어로 공격할 때, 그것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확인해주는 문장처럼 들린다. 받아쓰기 보도는 취재의 게으름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일치에서 나온다.
다양성(권력의 격차에 의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다양성, 인권, 포함, 돌봄은 효율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환영받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터와 공동체를 만드는 토대다. 심리적 안전, 정서적 안정, 육체적 안전이 보장될 때 사람은 비로소 질문할 수 있고, 위험을 말할 수 있고, 괴롭힘과 차별을 감수하지 않고도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장기적인 신뢰 속에서 협력할 수 있다. 능력은 소수만 살아남는 경쟁의 잔혹함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자라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다양성과 포함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차별과 괴롭힘을 방치하는 조직은 법적 비용과 평판 비용을 떠안는다. 미국 EEOC2)는 2024 회계연도에만 8만8천 건이 넘는 차별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고, 최근 발표에서는 피해자들을 위한 금전적 구제가 수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신뢰는 돈이 된다. PwC3)는 소비자들이 신뢰하는 기업에서 더 많이 구매하고, 추천하며, 신뢰를 잃은 기업의 제품 구매를 중단한다고 보고했다. 미국심리학회는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성과와 생산성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고, SHRM4)과 미국 여론조사·컨설팅 전문기관 갤럽도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가 포함되는 환경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될 때 사기, 생산성, 유지율을 높이며 결근과 안전 문제를 줄인다고 말한다. 차별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고, 장기근속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기업에 손해라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국가 운영의 차원에서는 더 분명하다. 한국의 2024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았고, 정부의 공식 지표는 한국의 자살률이 비교 대상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대체로 두 배가량 높다고 설명한다. 이런 사회에서 “포함”과 “환영”은 그저 예쁜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연결이 정신건강을 촉진하고 자해나 자살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며, 외로움과 고립이 우울과 불안, 자살 생각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역시 연결감을 자살 예방의 핵심 보호 요인으로 본다. 어떤 모습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누구나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고 도움을 청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모두가 모두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자체로 자살 예방 정책이다. DEI를 단지 기업 인사의 기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회적 인프라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가치는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 이른바 지구열화(global boiling)의 시대에 포함과 환대는 기후정치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WHO는 기후변화가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평등, 생계, 의료 접근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자체를 훼손하며, 그 피해가 취약하고 소외된 집단에게 불균형하게 집중된다고 지적한다.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는 “정의로운 전환”이 기후 행동의 수준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생계, 공정성, 세대 간 형평을 함께 지켜야 한다고 밝힌다. UN-Habitat(유엔 해비타트, 유엔 인간정주계획) 역시 도시의 기후 대응에서 협력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실제 해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결국 탄소를 줄이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은 따로 갈 수 없다. 배제 없는 전환,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전환, 취약한 존재를 먼저 보호하는 전환이야말로 기후위기를 늦출 사회적 힘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자본이 말하는 능력은 대개 오래 일할 수 있는 몸, 돌봄 부담이 없는 삶, 표준화된 말투와 이력, 기존 네트워크에 익숙한 태도를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의 본질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기준일 때가 많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정의된 능력은 노동자나 공동체를 위해 정의된 능력이 아닌 자본을 위해 정의된 능력이다. 진짜 능력은 누가 더 많이 버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은 채 자기 역량을 펼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의 번아웃 위에 세운 성과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존엄과 참여 위에 세운 지속 가능한 성과가 능력이다.
다양성 ⓒpixabay
효율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자본의 관점에선 시간을 단축하고 이윤을 늘리는 것이 효율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 높은 수익을 냈더라도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소진되고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가 밀려나고, 괴롭힘과 침묵이 조직 문화가 되었다면 그 비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전가된 것이다. 병원과 가정, 지역사회와 국가가 그 비용을 떠안는다. 사람을 버려서 얻은 속도는 효율이 아니라 폭력의 회계처리다. 반대로 접근 가능한 공간, 차별 없는 평가, 예측 가능한 노동시간, 충분한 휴식, 괴롭힘 대응 체계, 다양한 몸과 언어를 고려한 소통 구조,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당장 계산서에서는 비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장치들이 이직, 소진, 사고, 은폐, 갈등, 불신, 숙련의 유실을 줄인다. 사람을 남기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더 유능하고 더 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DEI를 해고하는 능력주의가 아니라, 능력과 효율의 뜻을 다시 쓰는 민주주의다.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안전하게, 더 공정하게, 더 함께. 사람과 생명, 돌봄과 포함을 중심에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질문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터와 공동체와 국가가 더 많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느냐고. 나는 그 질문이야말로 오늘의 정치와 경제가 다시 시작해야 할 자리라고 믿는다. 포함과 환영, 환대의 가치는 기업의 법적 비용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살을 줄이고, 고립을 줄이고, 차별을 줄이며, 기후위기 시대에 서로를 살릴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의 언어다.
각주
1)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다양성, 형평성, 포함)
2) 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평등고용기회위원회 - 미국의 연방 기구
3) PwC(PricewaterhouseCoopers)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 세계적인 다국적 회계·컨설팅 법인
4)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 미국 인사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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