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청년
고립 청년 혹은 은둔형 청년,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단순히 소심하거나 내향적인 게 아닙니다. MBTI 유형에서 극"I"이거나 혈액형에서 트리플A형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너무 쉽게 "사회부적응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더군다나 범죄자이거나 범죄자가 될 사람들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이나 범죄의 피해를 경험하여 대인관계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경우도 있고 가난, 가난과 함께 오는 감정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기회의 박탈,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기회가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기업들, 아르바이트마저도 '쪼개기'로만 구할 수 있는 현실 등이 청년들을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구직을 포기하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 이상 구직을 하지 않고 '그냥 쉰다'고 말한 2030 청년층은 29만명으로 4050보다 많습니다. 전국에 34만 명의 고립청년이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7조 5천억원이라고 추산되어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손실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게 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의 삶이 연결된 사회가 사라졌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청년들의 고립감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pixabay
착취구조를 숨기는 시험주의와 문제의 개인화
청년문제는 흔히 취업문제로 대표됩니다. 해결책은 "청년 일자리를 늘려라"로 귀결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되는 "청년 일자리"는 무엇인가요? 인턴, 계약직과 같이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가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비정규직 일자리로 청년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 취업문제만이라도 해결될까요? 오히려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까요?
공정담론이 유행입니다. 기회, 과정, 결과까지 무엇이 공정한 삶이고 평등한 사회인지 고민하지 않는 '억울하면 너도 시험치고 들어오라'는 식의 시험주의 수준의 공정이 유행입니다. '네가 실패한 건 네 책임이야. 왜 더 노력하지 않았어?'와 같이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게 하고 개인의 탓을 하게 하는 관점입니다. "노력"은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실업률,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도 최고로 많아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노력을 안 했을까요? 안 할까요? 2030 청년세대가 5060 부모세대 등 이전 세대보다 대학 진학률 낮을까요? 토익 점수 등 영어점수가 낮을까요? 자격증이 더 적을까요?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며 삼포세대라고 하더니 집과 경력을 포함해 오포세대, 거기에 희망이나 취미 그리고 인간관계를 더해 칠포세대, 거기에 건강과 외모가 더해져 구포세대가 됐고 이제는 N포 세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아홉 가지 열 가지의 항목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서로에게 원인이자 결과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집에만 있게 되니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운동을 할 수도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 희망도 없습니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사회
얼마 전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광고했던 아파트 홍보문구 기억나시나요? 이런 광고카피를 만든 아파트 시행사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가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가지고 살게 하는 온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주입하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부끄러움 없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학력, 학벌, 연봉, 명품, 브랜드아파트 등 누구나 "달성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기준들이 너무 높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과 잣대도 너무 획일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생존조차 힘들어지는 과도한 경쟁 사회에 대한 해법으로 '모두가 동등한 주체로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제시되기 보다는 이 안에서 나의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짓고 격차를 벌려야 한다는 방식의 담론과 실천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법으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끊임없는 "노오력"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 대가,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노동해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자신이 살 집이 아니라 사고팔기를 반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이 집 값을 올립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사회는 노동보다 부동산 투자/투기가 돈이 됩니다. 기본 자금이 없으면 부동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주식 혹은 코인을 하게 됩니다. 대박을 노리지만 파산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 사회가 앞당기는 소멸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소멸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전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출생률과 전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 동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서식지가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대, 20대 여성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정말 높은 비율로 이미 자신은 비혼/비출산이라고 말합니다.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없어진다는 것을 30~40대 여성들을 보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들의 생존전략이기도 하고 파업이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비서울 비수도권 지역만이 아니라 서울지역에서도 초등학교들이 문을 닫습니다.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해결하지 않으면 출생률은 올릴 수 없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 미투운동 등 여성들이 주도한 여성운동으로 지난 몇 년간 우리에게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낼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며 성차별과 성폭력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성평등 사회에 대해 말은 했으나 충분한 예산, 정책, 교육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끝났다고 말하고 당선됐습니다. 지금도 성평등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20대 여성의 자살률 상승이 충격적일 정도로 가팔라졌습니다. 모든 세대와 모든 성별 중에서 20대 여성의 자살률 상승폭이 가장 높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더 이상 나가질 기미가 없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평등운동이나 교육을 불편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머니 세대에는 성차별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여성들에게 무슨 성차별이 있냐?'고 이야기하지만 당사자들의 경험하는 차별, 억압, 폭력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연결된 정신건강과 자살문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정신건강 문제와 직결되며 자살문제와 이어집니다.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40대는 사망원인 2위가 자살입니다. 노인 자살률도 전 세계 최고입니다. 하루 평균 약 40명이 자살하는 나라입니다. OECD 국가의 평균(10만명당 10.9명)의 2배가 넘습니다(23.5명).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입니다.
1년에 10대 10만명당 7.1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한 해 330명의 10대가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유는 공부라고 되어있습니다. 그저 '공부가 하지 싫어서'나 '성적이 안 나와서'가 아닙니다. 살인적인 경쟁, 장시간 학습(원하지 않는 일)로 인한 과로, 스트레스, 번아웃에 의한 자살로 보아야 합니다. 사회는 이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입니다. 사회문제입니다.
10대 자살률은 60대 노년층의 자살률을 제칠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60대의 자살률이 OECD 국가 60대 자살률의 두 배가 넘는데도 말입니다. 한 해 자살하는 사람 중 약 25%가 20~39세 청년입니다. 이 중 20대 자살률의 증가율은 5년간 43.9%나 됩니다. 성별로 나누어 보면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더 심각하게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16.6명에서 19.3명으로 16.5%가 상승했습니다.
젊은 연령대의 자살률 증가는 해당 연령대의 전체 사망률까지 바뀌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전 연령대의 사망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유독 20대만 사망률이 5.8%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중 20대 여성 사망률이 11.1%나 늘어났습니다. 20대 자살 원인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1위였지만 이는 2위인 경제생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살인적인 극심한 경쟁이 되는 취업난,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 번아웃, 다른 사람들과 비교(사회적 기준으로 판단, 정죄하는 문화), 빈곤, 절망 그리고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사회적 상황들에 의한 '희망 없음'이 원인입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
한국 사회에 정신질환/정신장애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등입니다. 이 질병들은 누군가 가지게 될 수 있는 질병이고 특히 한국 사회처럼 과도한 공부, 노동, 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과 장애입니다. 초기에 빠르게 진단받고 빠르게 약을 먹으면 그리고 일상을 조금만 조절할 수 있으면 일상 생활이 가능한 질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너무 심각해서 병원 방문조차 꺼려지게 합니다. 진단을 받지 않으니/못하니 약 복용을 하지 못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우울증 약 복용률이 최하위입니다. 다른 정신질환과 장애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먹고 즐거운 생각을 해보라'고 하거나 '약을 먹지 않고 의지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같은 의미로 '뇌에 힘줘'라는 말도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질병이며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먹는 것은 나쁜 게 아니며 나약한 게 아닙니다.
"이제 구조적인 차별은 없습니다"?
'이제 구조적인 차별은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정치경제적 기득권자들은 "구조적인 문제"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래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정치인과 자본가에게 문제의 원인과 책임이 있는 것이고 해결의 책임까지 있는 것인데 이를 이들이 스스로 직접 "이 사회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라고 말할 리 없습니다. 차별과 억압을 '개인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인과 자본가의 책임이 사라집니다. 개인의 노력 부족, 성실함 부족, 자기관리 부족, 자존감 부족 등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의 정권들도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정책들을 펼쳐왔지만 이번 정권은 이를 매우 대놓고 하고 있습니다.
차별과 억압의 문제뿐만 아니라 폭력 역시 폭력이 일어날 수 있고 용인되는 사회구조와 문화가 아니라 오롯이 가해자/범죄자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가해자의 정신장애, 경제력, 패배감, 가족의 형태 등을 이용하여 '그럴만한 배경이 있는 위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피해자에게도 '그런 일을 당할만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면 더 편합니다. 구조와 문화의 문제가 아닌 개인과 개인의 문제, 갈등, 사고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꿔야 할 구조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이는 서로 연결된 "모든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해야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각자도생의 사회를 살아야 하는 거죠. 기득권자들은 장애인, 여성, 노동자, 청년, 노인 등 모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사실 모든 문제는 사회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정답사회에서 벗어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젠 구조적 차별을 직면, 인지, 인정하고 제도와 문화의 변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 사회는 모두가 '공부-대학-취업-결혼-집 마련-자녀 공부-노후자금' 하나의 정답을 따라 살아야 하는 "정답사회"입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모습대로 행복하고 만족하게 그러면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째 기회가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입니다. 나에게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양육자가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이젠 어떤 양육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안전망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불평등한 경제구조 해소를 위해 조세제도 개편을 통한 보편적 복지 그리고 재분배 정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빈곤한 사람들과 싸우는 국가가 아니라 빈곤과 싸우는 국가가 돼야 합니다. 노동자들과 싸우는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국가가 돼야 합니다. 노동 착취를 끝내고 존엄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정책을 펼치는 국가가 돼야 합니다. 기업이 최대한의 이윤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개인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가 돼야 합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 아무리 야근을 시키고 위험한 노동을 시켜도 닥치고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를 시장에 납품하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교육과 시민교육을 모두에게 제공하는 국가가 돼야합니다. 교육문제와 노동문제는 연결돼 있습니다. 청년문제는 사회문제이고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모두를 죽이고 외롭게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끝내고 인간중심, 생명중심, 서로돌봄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인류의 소멸을 막고, 모든 세대의 자살을 줄이며, 고립 청년 고립 노인 등 모두의 고립과 고독을 해소하고 누구나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민중의소리에서 칼럼보기
고립청년
고립 청년 혹은 은둔형 청년,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단순히 소심하거나 내향적인 게 아닙니다. MBTI 유형에서 극"I"이거나 혈액형에서 트리플A형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너무 쉽게 "사회부적응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더군다나 범죄자이거나 범죄자가 될 사람들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이나 범죄의 피해를 경험하여 대인관계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경우도 있고 가난, 가난과 함께 오는 감정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기회의 박탈,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기회가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기업들, 아르바이트마저도 '쪼개기'로만 구할 수 있는 현실 등이 청년들을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구직을 포기하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 이상 구직을 하지 않고 '그냥 쉰다'고 말한 2030 청년층은 29만명으로 4050보다 많습니다. 전국에 34만 명의 고립청년이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7조 5천억원이라고 추산되어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손실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게 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의 삶이 연결된 사회가 사라졌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착취구조를 숨기는 시험주의와 문제의 개인화
청년문제는 흔히 취업문제로 대표됩니다. 해결책은 "청년 일자리를 늘려라"로 귀결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되는 "청년 일자리"는 무엇인가요? 인턴, 계약직과 같이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가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비정규직 일자리로 청년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 취업문제만이라도 해결될까요? 오히려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까요?
공정담론이 유행입니다. 기회, 과정, 결과까지 무엇이 공정한 삶이고 평등한 사회인지 고민하지 않는 '억울하면 너도 시험치고 들어오라'는 식의 시험주의 수준의 공정이 유행입니다. '네가 실패한 건 네 책임이야. 왜 더 노력하지 않았어?'와 같이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게 하고 개인의 탓을 하게 하는 관점입니다. "노력"은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실업률,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도 최고로 많아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노력을 안 했을까요? 안 할까요? 2030 청년세대가 5060 부모세대 등 이전 세대보다 대학 진학률 낮을까요? 토익 점수 등 영어점수가 낮을까요? 자격증이 더 적을까요?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며 삼포세대라고 하더니 집과 경력을 포함해 오포세대, 거기에 희망이나 취미 그리고 인간관계를 더해 칠포세대, 거기에 건강과 외모가 더해져 구포세대가 됐고 이제는 N포 세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아홉 가지 열 가지의 항목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서로에게 원인이자 결과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집에만 있게 되니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운동을 할 수도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 희망도 없습니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사회
얼마 전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광고했던 아파트 홍보문구 기억나시나요? 이런 광고카피를 만든 아파트 시행사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가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가지고 살게 하는 온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주입하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부끄러움 없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학력, 학벌, 연봉, 명품, 브랜드아파트 등 누구나 "달성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기준들이 너무 높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과 잣대도 너무 획일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생존조차 힘들어지는 과도한 경쟁 사회에 대한 해법으로 '모두가 동등한 주체로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제시되기 보다는 이 안에서 나의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짓고 격차를 벌려야 한다는 방식의 담론과 실천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법으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끊임없는 "노오력"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 대가,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노동해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자신이 살 집이 아니라 사고팔기를 반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이 집 값을 올립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사회는 노동보다 부동산 투자/투기가 돈이 됩니다. 기본 자금이 없으면 부동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주식 혹은 코인을 하게 됩니다. 대박을 노리지만 파산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 사회가 앞당기는 소멸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소멸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전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출생률과 전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 동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서식지가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대, 20대 여성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정말 높은 비율로 이미 자신은 비혼/비출산이라고 말합니다.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없어진다는 것을 30~40대 여성들을 보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들의 생존전략이기도 하고 파업이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비서울 비수도권 지역만이 아니라 서울지역에서도 초등학교들이 문을 닫습니다.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해결하지 않으면 출생률은 올릴 수 없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 미투운동 등 여성들이 주도한 여성운동으로 지난 몇 년간 우리에게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낼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며 성차별과 성폭력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성평등 사회에 대해 말은 했으나 충분한 예산, 정책, 교육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끝났다고 말하고 당선됐습니다. 지금도 성평등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20대 여성의 자살률 상승이 충격적일 정도로 가팔라졌습니다. 모든 세대와 모든 성별 중에서 20대 여성의 자살률 상승폭이 가장 높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더 이상 나가질 기미가 없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평등운동이나 교육을 불편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머니 세대에는 성차별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여성들에게 무슨 성차별이 있냐?'고 이야기하지만 당사자들의 경험하는 차별, 억압, 폭력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연결된 정신건강과 자살문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정신건강 문제와 직결되며 자살문제와 이어집니다.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40대는 사망원인 2위가 자살입니다. 노인 자살률도 전 세계 최고입니다. 하루 평균 약 40명이 자살하는 나라입니다. OECD 국가의 평균(10만명당 10.9명)의 2배가 넘습니다(23.5명).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입니다.
1년에 10대 10만명당 7.1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한 해 330명의 10대가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유는 공부라고 되어있습니다. 그저 '공부가 하지 싫어서'나 '성적이 안 나와서'가 아닙니다. 살인적인 경쟁, 장시간 학습(원하지 않는 일)로 인한 과로, 스트레스, 번아웃에 의한 자살로 보아야 합니다. 사회는 이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입니다. 사회문제입니다.
10대 자살률은 60대 노년층의 자살률을 제칠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60대의 자살률이 OECD 국가 60대 자살률의 두 배가 넘는데도 말입니다. 한 해 자살하는 사람 중 약 25%가 20~39세 청년입니다. 이 중 20대 자살률의 증가율은 5년간 43.9%나 됩니다. 성별로 나누어 보면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더 심각하게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16.6명에서 19.3명으로 16.5%가 상승했습니다.
젊은 연령대의 자살률 증가는 해당 연령대의 전체 사망률까지 바뀌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전 연령대의 사망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유독 20대만 사망률이 5.8%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중 20대 여성 사망률이 11.1%나 늘어났습니다. 20대 자살 원인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1위였지만 이는 2위인 경제생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살인적인 극심한 경쟁이 되는 취업난,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 번아웃, 다른 사람들과 비교(사회적 기준으로 판단, 정죄하는 문화), 빈곤, 절망 그리고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사회적 상황들에 의한 '희망 없음'이 원인입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
한국 사회에 정신질환/정신장애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등입니다. 이 질병들은 누군가 가지게 될 수 있는 질병이고 특히 한국 사회처럼 과도한 공부, 노동, 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과 장애입니다. 초기에 빠르게 진단받고 빠르게 약을 먹으면 그리고 일상을 조금만 조절할 수 있으면 일상 생활이 가능한 질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정신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너무 심각해서 병원 방문조차 꺼려지게 합니다. 진단을 받지 않으니/못하니 약 복용을 하지 못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우울증 약 복용률이 최하위입니다. 다른 정신질환과 장애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먹고 즐거운 생각을 해보라'고 하거나 '약을 먹지 않고 의지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같은 의미로 '뇌에 힘줘'라는 말도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질병이며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먹는 것은 나쁜 게 아니며 나약한 게 아닙니다.
"이제 구조적인 차별은 없습니다"?
'이제 구조적인 차별은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정치경제적 기득권자들은 "구조적인 문제"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래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정치인과 자본가에게 문제의 원인과 책임이 있는 것이고 해결의 책임까지 있는 것인데 이를 이들이 스스로 직접 "이 사회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라고 말할 리 없습니다. 차별과 억압을 '개인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인과 자본가의 책임이 사라집니다. 개인의 노력 부족, 성실함 부족, 자기관리 부족, 자존감 부족 등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의 정권들도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정책들을 펼쳐왔지만 이번 정권은 이를 매우 대놓고 하고 있습니다.
차별과 억압의 문제뿐만 아니라 폭력 역시 폭력이 일어날 수 있고 용인되는 사회구조와 문화가 아니라 오롯이 가해자/범죄자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가해자의 정신장애, 경제력, 패배감, 가족의 형태 등을 이용하여 '그럴만한 배경이 있는 위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피해자에게도 '그런 일을 당할만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면 더 편합니다. 구조와 문화의 문제가 아닌 개인과 개인의 문제, 갈등, 사고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꿔야 할 구조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이는 서로 연결된 "모든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해야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각자도생의 사회를 살아야 하는 거죠. 기득권자들은 장애인, 여성, 노동자, 청년, 노인 등 모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사실 모든 문제는 사회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정답사회에서 벗어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젠 구조적 차별을 직면, 인지, 인정하고 제도와 문화의 변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 사회는 모두가 '공부-대학-취업-결혼-집 마련-자녀 공부-노후자금' 하나의 정답을 따라 살아야 하는 "정답사회"입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모습대로 행복하고 만족하게 그러면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째 기회가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입니다. 나에게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양육자가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이젠 어떤 양육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안전망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불평등한 경제구조 해소를 위해 조세제도 개편을 통한 보편적 복지 그리고 재분배 정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빈곤한 사람들과 싸우는 국가가 아니라 빈곤과 싸우는 국가가 돼야 합니다. 노동자들과 싸우는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국가가 돼야 합니다. 노동 착취를 끝내고 존엄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정책을 펼치는 국가가 돼야 합니다. 기업이 최대한의 이윤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개인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가 돼야 합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 아무리 야근을 시키고 위험한 노동을 시켜도 닥치고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를 시장에 납품하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교육과 시민교육을 모두에게 제공하는 국가가 돼야합니다. 교육문제와 노동문제는 연결돼 있습니다. 청년문제는 사회문제이고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모두를 죽이고 외롭게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끝내고 인간중심, 생명중심, 서로돌봄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인류의 소멸을 막고, 모든 세대의 자살을 줄이며, 고립 청년 고립 노인 등 모두의 고립과 고독을 해소하고 누구나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민중의소리에서 칼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