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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김지학의 세상다양] ‘쟈니스 성착취 사건’과 남성을 향하는 해로운 남성성

지난달,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he Tokyo Toilet Project) 탐방을 위해 도쿄에 방문했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란 일본재단이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공공화장실을 빠르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부야구의 협조를 받아 진행한 공공화장실 프로젝트다. 누구에게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 무장애 화장실(Barrier Free Toilet)을 만들고자 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분법적인 성별구분 역시 누군가의 화장실 접근성(Accessibility)를 해치는 장애물(Barrier)로 여겨지고 있다. 17개의 아름다운 화장실을 방문하고 일본재단의 담당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자세의 결과물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탐방을 마치고 편의점에 들렀을 때, 모두가 오가는 공간인 편의점에 태연히 진열된 이성애 남성 중심적인 성인잡지, 성인만화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에서는 앞서나가고 있는 일본 사회였으나, 철저히 이성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대상화된 여성의 몸을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에서도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은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 날은 서점에 들렀는데 요즘 일본에서 유행이라는 '여자력(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여성성)' 개발을 위한 도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순종적이고 조용한 '여성성'을 강화하는 것이 여성의 생존과 경쟁력에 필요한 기술로서 주목받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을 만큼, 일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옆으로 눈을 돌리자 일반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황족 지위를 박탈당한 마코 공주의 최근 소식이 담긴 잡지가 보였다. 황실의 남성 구성원이 일반인과 결혼하면, 황족 지위가 그대로 유지되지만 여성에게만 다르게 적용되는 일본의 현실이 다시금 상기되는 순간이었다. 여성에게 일왕을 물려주지 않고, '남자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린 나라가 일본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공고한 사회가 일본 남성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여성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더라도, 자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여겨지고 있을까? 여성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런 거다'라고 침묵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폭력에 대한 무지와 방관은 결국 자신을 향한 폭력으로 돌아온다.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 쟈니스 사무소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 사장 등이 9월 13일 창업자 고(故) 쟈니 기타가와의 성착취에 대한 피해 보상 및 재발 방지책을 발표했다. ⓒ뉴시스


성공한 남성에게 모든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는, 성공한 남성의 성착취에 관대해진다.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쟈니스 사무소(Johnny & Associates)의 쟈니 기타가와 (당시) 대표가 10대 남성 청소년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재판에서 가해 사실이 드러난 이후(1999년)에도 일본의 주요 언론들이 침묵으로 일관된 탓에 쟈니의 성착취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쟈니는 죽을 때까지 대표직을 유지했고 그의 명예와 재산도 탄탄했다. 일본 사회(남성 중심의 정치, 경제, 언론 기득권자들의 사회)가 쟈니의 성범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침묵한 까닭에 1천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은 숨죽이며 고통받았다. 피해자는 모두 10대 남성 아이돌이었다. 성폭력은 온 사회가 침묵한 가운데 60~70년간 이어졌다. 쟈니가 사망한 뒤 BBC의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전 세계적으로 사건이 알려진 후 더 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피해자는 70대다. 쟈니스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쟈니의 조카(후지시마 쥬리 게이코)가 이제야 사과했고 사퇴했다.


일본 대형 엔터 기업 쟈니스의 성착취, 피해자 1천명에 달하지만

피해 숨기고 침묵한 이유 중 하나는 '남성성'에 대한 왜곡

'해로운 남성성'은 남성은 물론 여성과 소수자로 피해 넓어진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1천명에 달하지만, 수많은 피해자가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의 상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한 성범죄(즉 권력형 성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참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들이 남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남자다운 남자'이길 강요받는 맨박스가 공고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자답게'라는 말로 폭력성을 남성성으로 여기는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수용되는 사회를 멈추어야 한다.


가해자가 스스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내재화된 우월성(Internalized Superiority)', 이러한 가해 사실에 대해 '저 사람은 그래도 된다', '그럴 수 있다'며 침묵하는 주변인의 '권력 부여하기(Privilege)', 피해자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혹은 '내가 참아야 한다'고 여기는 동시에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내재화된 억압(Internalized Oppression)', 이러한 사회를 용인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억압(Oppression)'이 작동하는 까닭에 성착취, 성폭력 사건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쟈니스 성착취 사건은 단순히 악마 같은 한 개인이 벌인 범죄가 아니다.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고 낙인되는 특정한 정체성을 가져서도 결코 아니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만연한 남성중심적이고 권력 중심적인 문화가 성폭력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동일한 유형의 성범죄가 연예계에서 일어난 적이 있고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교수, 교사 등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일어났고 계속해 일어나고 있다.


해로운 남성성은 제일 먼저 남성 스스로를 해친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고(남자는 울지 않는다 등) 과묵하도록 요구받고 폭력에 관대한 문화 속에서 공감 능력과 인간성을 상실하게 한다.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중요하다고 여길 리 없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 대화,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해로운 남성성은 두 번째로 주변의 다른 남성을 향한다. 남성의 폭력성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문화에서 '남자는 원래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며 폭력을 권장받으며 남성들 중에서 강한 남성이 약한 남성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해로운 남성성의 폭력은 세 번째로는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를 향한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여자냐, 계집애, 게이냐' 등의 말을 하며 여성과 성소수자는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강간문화'가 횡행한다. 성소수자를 향한 낙인, 편견, 혐오 역시 강력하게 유지된다.


일본 사회에서는 화장실 앞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배리어 프리/유니버설 디자인 실천이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모범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 반면, 반성 없이 오직 권력자만을 위한 역사가 켜켜이 쌓인 가운데서 가부장제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정치적으로 성공한 남성 중심의 젠더권력은 모두를 포함하는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의 기본은 여성이 안전한 사회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남성으로부터 시작되는 폭력에서, 남성 또한 안전해질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이미 성평등을 이룬 나라'라며 한쪽 성별만을 위한 예산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친밀한 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수많은 여성이 살해(매년 약 100명)당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살해(여성 대상 혐오범죄)당한다. 여성은 연애와 이별 그리고 심지어 생존에 대한 공포심을 갖지만, 이 사회는 여성이 안전한 사회에 관심이 없다.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필연적으로, 일부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층의 남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폭력에 취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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