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부터 나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다. 빛을 받아 아름답게 부서지는 반짝임의 편린들. 아름다웠다. 목걸이나 팔찌는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썩 탐나지 않았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그 언저리에서 반짝여줄 피어싱이었다. 그러나 학창시절 내내 말 그대로 ‘공부만 하는 애’였던 나에게 탈색이나 귀 뚫기 따위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엔 급우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는 게 두려워서 못 했다. 중학생 때에는 저질렀다간 선생님한테 비 오는 날에 먼지 날릴 때까지 얻어터질 것 같아서 포기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만 가면 내 맘이다’라고 되뇌며, 꾹꾹 참았다.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대학에 진학한 나. 오래도록 참아온 첫 피어싱을 했다. 양쪽 귓불 가운데에 하나씩 콕 콕 별을 심었다.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타투(문신)에 관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이 타투에 대해 가진 편견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에 타투는 무수히 많은 갈래의 아름다움 중 내가 원하는 것을 피부에 새김으로써 온전히 소유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예술 행위로 보였다. 그러나 타투를 하는 데에도 상당한 망설임이 필요했다. 금전적인 여유도 별로 없었거니와, 사회에 갓 진출하는 입장에서 면접관에게 밉보이는 게 두려웠다. 무엇보다 타투를 하고 난 뒤에 후회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결국엔 하고 싶은 건 하게 되더라.
걱정한 것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 팔에 사슴 뼈와 꽃이 있든 말든, 정말 신경 안 쓰더라. 당시 친했던 직장 동료 말로는, 뒷담화 주제로 오른 적도 거의 없었던 모양.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실무자 직급에서의 얘기였다.
박람회 부스 디스플레이 준비로 무척 바빴던 여름날. 모 상무가 내게 물었다. ‘타투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얘는 언제 새긴 앤데요, 이런저런 의미가 있었구요~’ 하면서 각 타투의 도안과 시술 즈음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상무는 ‘그거 다 의미 억지로 부여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잔소리에 시동을 걸었다. 상무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터라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 상무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소리들을 줄줄 읊으며 내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여자가 타투는 좀 아니지 않나?’ ‘나중에 애 낳고 후회할 것 같은데.’ ‘남자친구네 부모님이랑 상련례할 때 인상 안 좋게 남는 거 아냐?’
하고 싶은 말이 500개 정도 목젖까지 차올랐으나 조용히 헤헤 웃었다. 어쩌겠는가. 나는 사원이고 너는 상무이신데.
다만 속이 매우 시끄러웠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도 어느덧 30대. 대체 몇 살을 먹어야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있는 걸까? 몸, 차림새에 원치 않은 간섭을 받음으로써 포기하는 자유는 나에게 결코 사소하지 않다. 나는 피어싱을 한 귀가 좋다. 타투가 새겨진 내 피부가 좋다. 반짝이는 금발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꽉 채우고 싶다. 이게 큰 욕심인가? 저질렀다면 숨겨야 하고, 드러내면 남이 하는 헛소리를 얌전히 들어줘야 하는 건가?
나는 결심했다. 내가 한 선택에 당당해지기로. 나답게 살기로. 예전 직장의 모 상무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부하직원들 억압할 거 다 억압하면서, 필요할 땐 MZ로 싸잡아서 ‘크리에이티브한 거’ 한 20년 정도 전에 맡겨놓은 듯이 주문하는 흔한 K직장의 꼰대일 뿐. 그들의 시선에 나를 맞춰주다가는 내가 온전히 나를 가지려면 환갑은 지나야 할 것 같다.
돈 있고. 저녁에 약속 없다.
가자, 미용실. 탈색하러.
아주 옛날부터 나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다. 빛을 받아 아름답게 부서지는 반짝임의 편린들. 아름다웠다. 목걸이나 팔찌는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썩 탐나지 않았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그 언저리에서 반짝여줄 피어싱이었다. 그러나 학창시절 내내 말 그대로 ‘공부만 하는 애’였던 나에게 탈색이나 귀 뚫기 따위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엔 급우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는 게 두려워서 못 했다. 중학생 때에는 저질렀다간 선생님한테 비 오는 날에 먼지 날릴 때까지 얻어터질 것 같아서 포기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만 가면 내 맘이다’라고 되뇌며, 꾹꾹 참았다.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대학에 진학한 나. 오래도록 참아온 첫 피어싱을 했다. 양쪽 귓불 가운데에 하나씩 콕 콕 별을 심었다.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타투(문신)에 관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이 타투에 대해 가진 편견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에 타투는 무수히 많은 갈래의 아름다움 중 내가 원하는 것을 피부에 새김으로써 온전히 소유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예술 행위로 보였다. 그러나 타투를 하는 데에도 상당한 망설임이 필요했다. 금전적인 여유도 별로 없었거니와, 사회에 갓 진출하는 입장에서 면접관에게 밉보이는 게 두려웠다. 무엇보다 타투를 하고 난 뒤에 후회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결국엔 하고 싶은 건 하게 되더라.
걱정한 것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 팔에 사슴 뼈와 꽃이 있든 말든, 정말 신경 안 쓰더라. 당시 친했던 직장 동료 말로는, 뒷담화 주제로 오른 적도 거의 없었던 모양.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실무자 직급에서의 얘기였다.
박람회 부스 디스플레이 준비로 무척 바빴던 여름날. 모 상무가 내게 물었다. ‘타투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얘는 언제 새긴 앤데요, 이런저런 의미가 있었구요~’ 하면서 각 타투의 도안과 시술 즈음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상무는 ‘그거 다 의미 억지로 부여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잔소리에 시동을 걸었다. 상무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터라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 상무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소리들을 줄줄 읊으며 내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여자가 타투는 좀 아니지 않나?’ ‘나중에 애 낳고 후회할 것 같은데.’ ‘남자친구네 부모님이랑 상련례할 때 인상 안 좋게 남는 거 아냐?’
하고 싶은 말이 500개 정도 목젖까지 차올랐으나 조용히 헤헤 웃었다. 어쩌겠는가. 나는 사원이고 너는 상무이신데.
다만 속이 매우 시끄러웠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도 어느덧 30대. 대체 몇 살을 먹어야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있는 걸까? 몸, 차림새에 원치 않은 간섭을 받음으로써 포기하는 자유는 나에게 결코 사소하지 않다. 나는 피어싱을 한 귀가 좋다. 타투가 새겨진 내 피부가 좋다. 반짝이는 금발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꽉 채우고 싶다. 이게 큰 욕심인가? 저질렀다면 숨겨야 하고, 드러내면 남이 하는 헛소리를 얌전히 들어줘야 하는 건가?
나는 결심했다. 내가 한 선택에 당당해지기로. 나답게 살기로. 예전 직장의 모 상무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부하직원들 억압할 거 다 억압하면서, 필요할 땐 MZ로 싸잡아서 ‘크리에이티브한 거’ 한 20년 정도 전에 맡겨놓은 듯이 주문하는 흔한 K직장의 꼰대일 뿐. 그들의 시선에 나를 맞춰주다가는 내가 온전히 나를 가지려면 환갑은 지나야 할 것 같다.
돈 있고. 저녁에 약속 없다.
가자, 미용실. 탈색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