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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사람이 끓는 곳 [말풍선]



에어컨을 틀고 잠든 지 보름이 넘었다. 다음 달 전기료 고지서에 얼마가 적혀 있을까. 두렵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 에어컨을 끄면 잠을 잘 수 없으니까. 밤조차 이렇다. 한낮에 불볕을 쬐며 담뱃불을 붙이고 있으면, ‘이러면서까지 이딴 걸 피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급작스럽게 뜨거워진 지구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는 올해 여름. 유엔 사무총장이 말했다.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갔고, 이제는 지구가 끓는 시대가 왔습니다.’ 에어컨을 틀고도 더워서 숨을 몰아쉬던 나는 10년 전 맞이했던 최악의 더위를 떠올렸다. 내가 경험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당시 내가 살던 원룸은 바로 전에 살던 건물에 불이 크게 난 통에 워낙 급하게 구한 곳이었다. 구석구석이 엉망이었다. 바깥을 향해 있는 창문은 고작 두 개. 크기는 사람 머리통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았고, 그마저도 먼지 잔뜩 낀 방충망이 막고 있었다.

 

집주인이 쓰라고 준 냉장고에서는 끝도 없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냉장고를 끄고 안에 든 걸 싹 다 가져다 버리자니 내 지갑 사정이 좋지 못했다. 에어컨을 구매하는 건 물론 꿈도 못 꿨다.

 

밤새 얼린 페트병에 수건을 둘러 감은 얼음 베개 세 개가 있어야 하룻밤을 간신히 보낼 수 있었다. 한 개는 머리맡에 두고, 다른 한 개는 팔로 껴안고, 마지막 한 개는 다리와 다리 사이에 끼웠다. 선풍기를 최대 출력으로 틀고 수면제를 복용했다. 더위가 다시 느껴지기 전에 잠들어야 했다.

 

10년이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해의 여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숨은 텁텁하고. 공기는 뜨겁고. 온 몸에 종일 땀이 흐르고. 피부는 가렵고. 할 수만 있다면 옷만이 아니라 피부도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올해나, 내가 겪는 여름은 최악 근처에도 못 닿을 것이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낡은 선풍기도 귀한 쪽방촌. 자식과 연락도 잘 닿지 않는 독거노인의 집. 쉼터 하나 변변치 않고 감히 개선을 입에 올리기가 겁이 나는, 힘없는 노동자의 일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여름은 지구가 끓는 시대가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 재난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