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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김지학의 세상다양] ‘서육남’ 윤석열 사단은 어떻게 자멸했는가

윤석열 정권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자멸해 버렸다. 윤석열이 자신만의 세상에 빠졌기 때문인데, 이는 주변에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두고 정보를 오직 하나의 소스(출처)를 통해서만 얻었다는 데 원인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시점(2022년)에 그는 ‘서육남(서울대 60대 남성)’이라는 말과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주변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만을 배치시켰다. https://vop.co.kr/A00001614933.html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때려잡아야 마땅한 반국가세력’으로 여겼고 대응했다. 윤석열은 “짐이 곧 국가”라는 근대 절대왕정의 군주마냥 행동했다. 자신이 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대해 발표한 담화에서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야당이든 노동조합이든 시민단체든 국민들이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간첩이고 빨갱이였다. https://vop.co.kr/A00001665039.html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5.12. ⓒ뉴시스

실력만 본다며 ‘서육남’으로 구성된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정부 내 인사 인선 기준은 오로지 “실력”이라며 “지역, 여성, 연령”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역, 여성, 연령’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게 어찌 보면 마치 다양성과 포함(Diversity and Inclusion)에 가치를 둘 것처럼 둔갑했다. 그러나 이어진 발언은 “국민들께 보여주기 위한 트로피 인사(보여주기식 사회적 소수자 기용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는 안 할 것”이라고 당당히 공언했고, 결과는 ‘서육남’이었다. 참고로 보여주기식 사회적 소수자 기용을 뜻하는 표현은 토큰(token)이다. 트로피(trophy, 상패)라고 하지 않는다.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을 소수 채용하는 것을 토크니즘(tokenism)이라고 한다. “토큰”으로 기용된 사회적 소수자들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이란 사회적 정체성 사이에 권력이 불균형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관점이다. 포함이란 누구도 사회적 정체성만으로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사회를 만들겠다는 실천이다.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를 원칙적으로 배척하고 편협한 정부조직을 만들어 그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윤석열은 그렇게 자멸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2015년 11월 4일 캐나다에서 트뤼도 총리(당시 43세)가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취임식 날 그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 갈 장관 3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50:50이었으며 캐나다 선주민, 난민, 이주민, 장애인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장관들이 임명되었다. 연령도 30대부터 60대까지 지역도 10개 주와 3개 준주 출신 인사가 포진하며 지역 안배를 이뤘다. 트뤼도 총리에게 성평등·다양성 내각을 꾸린 이유를 묻자, “2015년이니까요”라고 말했고 “캐나다를 닮은 내각”이라고 표현했다.

2015년이 아닌 2025년에도 한국사회는 아직 “한국을 닮은 내각”을 갖지 못했다. 한국을 닮은 내각 그리고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50:50이다. 정확히는 여성 인구가 조금 더 많다. 20대가 약 14%, 30대가 약 15%, 40대는 약 18% 정도다. 이주민과 장애인의 비율은 약 5%정도다. 등록하지 않았거나 못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더 많다. 이주민과 장애인의 인권이 향상되면 통계와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이주민과 장애인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성소수자 인구도 약 5-10%정도로 보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어디든 성소수자의 인구 비율이 그렇다.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내 주변에 성소수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 출신지역, 가족의 형태, 고용의 형태, 소득·경제력, 학력·학벌 등까지 더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한국을 닮은 내각과 정부”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실제로 시민들의 모습과 닮았는가? 그렇지 않다. 300명의 국회의원과 18명의 장관은 거의 대부분 고학력·고학벌·고소득층·법조인·비장애인·비성소수자·50-60대·남성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선 기준으로 말한 “실력”이 어찌하여 사회적 특권그룹에 속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사회가 “실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가질 수(쌓을 수)있는 사람이 한정적인 것은 아닌지, 또 “실력”이라는 것의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트뤼도 총리도 내각을 구성할 때 “능력”을 강조한 적이 있어 흥미롭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 위주로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며 “장관들이 담당 부처의 정책 결정권자로 실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대표하는 그 그룹과 함께 그 그룹에 의해 그 그룹을 위해 일하겠다는 뜻이다.

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국민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투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누군가를 배제한, 다양성 외면한 정부의 파멸은 당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체성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 수 있는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게 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P&G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다양성과 포함(Diversity and Inclusion)에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의 일터를 자신에게 안전한 곳(Safe environment)으로 느끼고 소속감(Belongness)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럴 수 있는 곳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일의 효율성, 창의성, 자발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의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만약 기업의 리더들이 오직 고학력·고학벌·비장애인·비성소수자·50-60대·백인·남성으로만 구성돼 있다면 그 기업이 모든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양성을 토크니즘(tokenism)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단순히 ‘왜 이렇게 여성의 수가 적냐’거냐 ‘왜 장애인이 한 명도 없냐’와 같은 질문으로 여기며 그저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포함(Inclusion)은 그동안 정체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겨 온 사람들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정의, 공정, 평등의 문제다.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의 성공과 실패, 생사가 걸린 문제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관점을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내 주변에 포진해 놓는 것이다. 조직 내 다양성은 다양한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갖게 하며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윤석열의 실패 원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김건희 말만 들었다’, ‘종교인의 말만 들었다’, ‘충암파의 말만 들었다’와 같은 분석을 한다. 결국 같은 말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어느 조직이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는 계속 소외·배제된다는 것이고 이는 그 조직을 점점 쇠퇴하게 만들고 결국 멸종하게 만든다.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와 실천은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 윤석열의 시계는 처음부터 거꾸로 갔다. 절대왕정시대에 머문 그의 관점은 처음부터 당당히 다양성을 외면하였으며, 포함이 아닌 배제를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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