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백록입니다. 오늘은 故이연수 회원님의 늦은 부고를 전합니다.
자랑스러운 트랜스여성이자 멋진 인권운동가였던 이연수 님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무지개예수, 정의당 성소수자위원외,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등 많은 단체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셨고, 백록, 그린과는 섬돌향린교회에 함께 다니는 자매지간이기도 했어요.
지난 9월 29일, 이 땅에서의 뜨거웠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셨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와는 초기, 둥지가 인천에 있었던 시절부터 회원으로 인연을 맺고, 공부모임을 비롯한 여러 활동과 행사를 함께하며 추억을 쌓았습니다.
6개월 전에야 합류한 백록에게는, 연구소 회원으로서 만나뵌 경험은 없지만, 수년 째 각종 행사와 집회에 어김없이, 빠짐없이 등장하시는 얼굴과 목소리였기에 늘 동경하고 의지하던 선배 활동가, 퀴어크리스천 동지로 기억과 마음에 남아 계십니다. 장례 이후, 정기후원자 CMS 명부와 '모두를위한화장실 확산을 위한 네트워크' 메신저 방에 이름으로만 남아 계신 연수님을 마주하곤 잠시 말을 잃고 망연해지기도 했네요.
그리곤 뒤이어 거짓말처럼 1~2주 간격으로 5명의 지인, 옛 친구, 친구의 친구들의 부고를 연달아 받았어요. 4명은 자살, 1명은 약물중독 사고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퀴어 친구의 관을 어김없이 한 번은 들게 되는 일. 더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골 난 일이라 생각했었지만 두 달 새 이렇게까지 많은 주변인의 죽음을 연쇄/중첩적으로 겪는 건 난생 처음이었고, 저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스크롤이 하염없이 내려가도록 수많은 말을 가득 썼다 지우고, 다시 적다가, 고치다, 모조리 지워 버렸다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가, 또 불쑥 장황한 이야기를 토해내다 보니 가을이 다 지났습니다. 별다른 일 더 없었던 것처럼 그저 드라이한 부고만을 적고서는 도저히 마칠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도 심각한 위기 상태라는, 인생 자체에 번아웃이 와 있다는 판단에 연구소 활동 중단을 알리는 작별의 말과 이누야샤 퇴사짤까지 준비해 두기도 했지요.
백지를 노려보다 나가떨어진 어느날, 우연히 <의화단-소녀의 전쟁>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 소녀는 자신이 누구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죽었다며, 허망하고 볼품없는 삶이었단 듯 말하지만, 이어지는 먹먹한 반전이 그녀의 영혼과 지켜보는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그래요. 결코 아니었지요. 종이를 적시며 끅끅 울면서 연수 님을, 이제는 숫자도, 시기도 잘 정리되지 않을 만큼 수가 많아진, 떠난 친구와 동지들을 떠올렸습니다. 말해 주었어요. '당신 참 멋있었어. 정말 수고했어, 고마워. 덕분에 지켰어요, 그대들은 구했어요, 나를, 그것을.' 혹여나 그들이 지난 생을 송두리째 무가치했다거나 소용 없었다 여기며 절망했을까봐 두려웠거든요, 걱정했거든요. 절대로 그렇지 않잖아요. 사랑과 감사의 언어를 맘속으로 하염없이 되뇌고 외치며, 따라가 버리고 싶었던,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었던 저 자신에게도 그 말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 사는 퀴어들의 정신/마음건강 상태는 언제나 재난상황, 전시나 다름없다 말해도 과언 아닐 겁니다. 국가 통계조차 없지만,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의 압도적인 수치가 생생합니다. 모국어임에도 평생 어색하고 못내는 좀 쑥스럽기까지 한 한국말이 있는데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입니다. 끝에는 느낌표, 물음표, 쉼표, 마침표, 뭐든 자유롭게 붙게 되는데, 뭐가 붙든 끝내 생경해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그 말을 인사로 주고받는 심정이 심상하기에는 버거울 만큼 복합적이고, 불쑥 아찔하도록 크고 깊게 밀려오거든요. '안녕'이란, 그러게요 참, 대관절 무엇일까요? 근 삼 개월을 붙들고 있었던 추도사에 이제 마침표를 찍습니다.
연수 님, 고생 참 많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하세요. 백록입니다. 오늘은 故이연수 회원님의 늦은 부고를 전합니다.
자랑스러운 트랜스여성이자 멋진 인권운동가였던 이연수 님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무지개예수, 정의당 성소수자위원외,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등 많은 단체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셨고, 백록, 그린과는 섬돌향린교회에 함께 다니는 자매지간이기도 했어요.
지난 9월 29일, 이 땅에서의 뜨거웠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셨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와는 초기, 둥지가 인천에 있었던 시절부터 회원으로 인연을 맺고, 공부모임을 비롯한 여러 활동과 행사를 함께하며 추억을 쌓았습니다.
6개월 전에야 합류한 백록에게는, 연구소 회원으로서 만나뵌 경험은 없지만, 수년 째 각종 행사와 집회에 어김없이, 빠짐없이 등장하시는 얼굴과 목소리였기에 늘 동경하고 의지하던 선배 활동가, 퀴어크리스천 동지로 기억과 마음에 남아 계십니다. 장례 이후, 정기후원자 CMS 명부와 '모두를위한화장실 확산을 위한 네트워크' 메신저 방에 이름으로만 남아 계신 연수님을 마주하곤 잠시 말을 잃고 망연해지기도 했네요.
그리곤 뒤이어 거짓말처럼 1~2주 간격으로 5명의 지인, 옛 친구, 친구의 친구들의 부고를 연달아 받았어요. 4명은 자살, 1명은 약물중독 사고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퀴어 친구의 관을 어김없이 한 번은 들게 되는 일. 더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골 난 일이라 생각했었지만 두 달 새 이렇게까지 많은 주변인의 죽음을 연쇄/중첩적으로 겪는 건 난생 처음이었고, 저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스크롤이 하염없이 내려가도록 수많은 말을 가득 썼다 지우고, 다시 적다가, 고치다, 모조리 지워 버렸다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가, 또 불쑥 장황한 이야기를 토해내다 보니 가을이 다 지났습니다. 별다른 일 더 없었던 것처럼 그저 드라이한 부고만을 적고서는 도저히 마칠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도 심각한 위기 상태라는, 인생 자체에 번아웃이 와 있다는 판단에 연구소 활동 중단을 알리는 작별의 말과 이누야샤 퇴사짤까지 준비해 두기도 했지요.
백지를 노려보다 나가떨어진 어느날, 우연히 <의화단-소녀의 전쟁>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 소녀는 자신이 누구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죽었다며, 허망하고 볼품없는 삶이었단 듯 말하지만, 이어지는 먹먹한 반전이 그녀의 영혼과 지켜보는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그래요. 결코 아니었지요. 종이를 적시며 끅끅 울면서 연수 님을, 이제는 숫자도, 시기도 잘 정리되지 않을 만큼 수가 많아진, 떠난 친구와 동지들을 떠올렸습니다. 말해 주었어요. '당신 참 멋있었어. 정말 수고했어, 고마워. 덕분에 지켰어요, 그대들은 구했어요, 나를, 그것을.' 혹여나 그들이 지난 생을 송두리째 무가치했다거나 소용 없었다 여기며 절망했을까봐 두려웠거든요, 걱정했거든요. 절대로 그렇지 않잖아요. 사랑과 감사의 언어를 맘속으로 하염없이 되뇌고 외치며, 따라가 버리고 싶었던,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었던 저 자신에게도 그 말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 사는 퀴어들의 정신/마음건강 상태는 언제나 재난상황, 전시나 다름없다 말해도 과언 아닐 겁니다. 국가 통계조차 없지만,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의 압도적인 수치가 생생합니다. 모국어임에도 평생 어색하고 못내는 좀 쑥스럽기까지 한 한국말이 있는데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입니다. 끝에는 느낌표, 물음표, 쉼표, 마침표, 뭐든 자유롭게 붙게 되는데, 뭐가 붙든 끝내 생경해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그 말을 인사로 주고받는 심정이 심상하기에는 버거울 만큼 복합적이고, 불쑥 아찔하도록 크고 깊게 밀려오거든요. '안녕'이란, 그러게요 참, 대관절 무엇일까요? 근 삼 개월을 붙들고 있었던 추도사에 이제 마침표를 찍습니다.
연수 님, 고생 참 많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