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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김지학의 세상다양] 사형은 권력을 강화할 뿐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전직 복싱선수였고 된장 공장의 노동자였던 장기 사형수 이와오 하카마다는 지난 9월 무려 58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일본 법원은 “수사 기관에 의한 증거 조작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여전히 사형을 집행한다. 사형을 집행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집행 사실을 고지한다고 한다. 하카마다는 58년간 매일 사형을 두려워하며 살아야만 했다. 하카마다는 오랜 복역 생활로 얻은 지독한 후유증과 함께 88세의 노인이 되었다. 1968년 하카마다는 상사와 상사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경찰의 잔인한 고문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다. 이후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이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재판이 이어지며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까지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증거 조작 정황이 계속 발견되며 일본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구명운동이 이어졌다. 하카마다가 손쉽게 범인으로 지목되고 증거가 조작되는 과정에서, 진짜 범인은 잊혔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형제인가? 증거 조작과 불공정한 재판은 누구를 위한 과정이었을까?


58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일본의 사형수 이와오 하카마다


사형제는 손쉽게 대중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국가는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사형제의 칼날은 누구를 제외하고 누구만을 향하는가? 동일한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일상의 문화를 바꾸고 있는가? 국가권력에 의해 집행되는 사형제는 권력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며, 사회를 바꾸지도 못한다. 손쉽게 책임을 외면할 뿐이다. 이러한 사형제의 효과 때문에 일본은 관례적으로 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형을 집행해왔다. 국가는 엉망인 사회는 내버려두고 ‘사형을 시킬 만한 범죄’ 유형을 정하며 ‘누구를 사형시킬 것인가’도 정한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라는 질문에 쉬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권력에 휘둘리는 불공정한 법에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사형제를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미 일본이 그렇듯, 누가 어떤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국민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 역시 그렇게 악용된 사형제를 수십 년간 경험한 나라다. 독재정권이 “정치범”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적(민주화 세력)을 제거하거나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형을 썼다.


사형제를 다시 생각하게 했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 ⓒ자료사진


사형제를 부활시키겠다는 정치인들은 그 주장을 통해 인기를 끌고 싶을 뿐 근본적으로 강력범죄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도 계획도 없다. 모두의 삶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는(전세계 자살률 1위, 전세계 노동사망률 1위 등)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과 자본가들이 많다.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 범죄, 죄악은 누가 무엇으로 단죄할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의 재산을 부풀리기 위해 주가조작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수천명 수만명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살로 내몰기도 한다. 그들의 범죄가 육체적 물리적 폭력보다 작은 범죄일까?


재심전문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밝혀낸 억울한 사건들을 통해 한국에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복역하게 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할 수 있다. 누가 처벌당할 가능성이 클까? 부자일까 가난한 사람일까? 청소년들의 경우에도 소위 말하는 “정상가정”이 아니거나 빈곤층일 때 6호 시설이나 소년원에 갈 가능성 더 높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높은 형벌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연구가 사형제의 범죄 억제력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사형이라는 극형은 일시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고 강한 만족감을 줄 수 있지만, 이는 결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강력 범죄가 줄어들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그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종, 민족, 성별,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유무, 경제력, 외모, 바디사이즈, 학력, 학벌 등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며 서로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차별할 이유를 만들고, 착취해도 되는 대상으로 위치시키며, 이를 정당화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도, 행복할 수 없다.


사형제는 정말 범죄를 줄이고 예방하나


잔인한 경쟁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밟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살 수 있고 내 가족이라도 돌볼 수 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폭력적이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폭력이 발생하는 확률도 극단적인 범죄의 비율도 계속 증가하게 된다. 공정하다고 착각하는 경쟁이 아닌 빈곤을 줄이고 폭력을 줄이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입시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수 있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연습하고 훈련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온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가치가 ‘모두와 평등하게 함께 사는 세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중에게 잠깐의 만족감만을 주고,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는 커녕 권력의 강화 효과만 일으키는 사형제를 거부하자.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평등하고 안전하게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그게 더 현실적이고 달성 가능한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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