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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김지학의 세상다양] 성착취 사건을 대하는 당신의 자세 ‘나는 아니야’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OUT 말하기 대회를 하고 있다. 2024.08.30. ⓒ뉴시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포


상상을 초월하는 딥페이크(Deep Fake) 성범죄의 범위와 깊이가 드러나며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초중고, 대학과 군대 그리고 가정에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포르노에 합성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규모가 상당하다. ‘여성을 위한 한국은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전국을 들썩이게 한 후 5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같은 일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SNS에 있는 사진이나 졸업앨범에 있는 사진을 이용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여성의 과도한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특권


누군가는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게 치안이 제일 좋은 국가’라며 ‘성범죄를 걱정하는 여성들은 너무 예민해서 과도한 걱정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은 다르다. 여성들의 삶을 들어보면 대한민국의 치안은 남성들에게만 전세계에게 제일 좋은 것이다. 성적인 표현으로 언어적 성폭력을 당해보지 않은 여성, 엉덩이 만지기 등 의도적인 신체접촉의 육체적 성폭력을 당해보지 않은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요즘 애들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성적 대상화’


누군가는 ‘우리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10~20대 남성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냐고 말한다. 10~2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40대고 내가 청소년기였을 때는 포르노를 구하는 게 지금에 비해 상당히 어려웠다. 그때도 잡지에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지인의 사진을 붙여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 복무를 할 때도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딥페이크를 할 수 있는 기술만 있었다면 했을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인식하거나 대하는 태도는 이 사회에 만연하다. 지금의 10~20대가 특별히 더 나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이 슬프고 충격적이다.


기술의 성장, 철학적 빈곤의 조우가 만든 지옥


누군가는 IT(Information Technology) 강국인 것의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하나씩 들고 있고 어딜가나 무선 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 한 몫 한다는 주장이다. IT 강국인 게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기기로, IT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 “내용”을 채우지 못한 한국 사회의 철학적 빈곤과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기는 가부장제의 문화 그리고 그것이 돈이 되는 가부장제 자본주의가 만난 것이다.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대학생 연합 단체들 대학생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대응 긴급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타인의 얼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딥페이크' 성 착취물의 확산과 관련해 정부와 수사기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08.29 ⓒ민중의소리



제대로 된 성교육 없는 나라, 성착취가 놀이문화가 되는 현실


나는 어느 날 한 댓글을 보기 전까지, 화장실 불법 촬영물에 대해, 다른 사람이 소변/대변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댓글은 ‘비싸게 구는 년들이 오줌, 똥을 싸는 모습을 보면 하찮아 보여서 좋다’는 내용이었다. 용변을 보는 모습에 이른바 ‘섹시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정복할 수 없는 상대를 망가뜨림으로써 쾌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직장 동료와 학교 친구들을 상대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피해자를 ‘벗겨서 망가뜨리겠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그저 섹스를 위한 도구(몸뚱이)로만 여기고 자신의 마음대로 지배, 통제할 수 없을 때는 망가뜨림으로써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여성과 성적 행동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망가져 있는 상태다. 이렇게 왜곡된 인식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힘들다. 성범죄자가 되기 쉬운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면 건강한 관계를 맺기 힘들다. 타인의 몸과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성교육,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모든 교육기관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탐구할 수 있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고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 성평등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성범죄자들은 정신병자’라며 ‘사형을 시켜야 한다’, ‘고추를 잘라라(물리적 거세를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정신병, 정신질환, 장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고 유지시키는 표현이다. 그리고 사회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은 외면한 채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성범죄가 만연한 사회를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만드는 표현이다.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나는 아니다’라는 말로 자신과 사회를 분리하려는 태도로 사회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러한 자세는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현재의 구조를 유지시키는데 기여한다. 자신을 사회문제와 분리해 생각하며 방관하는 것은 잘못된 사회구조가 유지되게 하는 큰 원동력이다.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가지는 성별특권(남성특권)을 알게 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시작이다. 무관심과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책감을 느끼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행동하자. 서로에게 작은 롤모델이 되자.


전희영 전국교직원조합(전교조)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학교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4.08.29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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