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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중립도, 평화도 아닙니다
“나는 중립이야” “나는 여자 때리지 않아” "나는 페미 아니야" 이런 표현을 사용해보거나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많은 언론을 비롯해, 심화된 갈등이 있는 경우에 ‘중립’을 선언하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며 갑자기 '평화주의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중립도, 평화도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국가 폭력, 자본구조에 의한 폭력, 관습과 문화에 의한 폭력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폭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립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구조의 문제를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하며 개별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하며 진짜 문제를 숨깁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지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를 만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구조적인 폭력은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 냅니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중립’이라 잘못 표현한 방관을 하는 것은 폭력적인 구조가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는 셈이 됩니다.
개인을 탓하거나 공격하는 방식은 문제를 개별적인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진짜 문제인 구조를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젠더이슈'는 구조의 문제이고 국가의 책임이에요
혐오는 '기분나쁜 말'과 같은 감정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억압에 의해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 혐오는 구조에 의한 억압과 폭력이 전제되는 용어죠. 그래서 구조의 변화를 통해서 혐오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팔리는 이슈로 정치를 하고 언론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젠더갈등’이라는 용어는 구조의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의 해방을 상상하는 것을 막습니다.
'젠더갈등'이라는 용어는 진짜 문제의 본질을 숨기고 그저 여성과 남성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젠더문제는 구조의 문제이며 국가의 책임임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말들만 지속할 뿐 구조를 변화시킬 의지가 없어보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으로 억압된 사회에서 이 국가는 제대로된 성교육이나 성평등교육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여자의 뇌' , '남자의 뇌'를 구분하는 국가수준의성교육표준안만 보더라도 여전히 할 의지조차 없어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립’을 외치며 방관하는 것은 이 구조가 유지되는데 기여하는 것이 됩니다.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변화시켜야 할 일입니다. ‘젠더갈등’으로 잘못 명명된 이 문제의 본질인 여러 구조(국가 착취, 노동 착취, 인권보다는 자본, 안전보다는 효율성, 시험주의와 줄세우기, 가족중심의 복지시스템과 돌봄노동의 불인정, 권위주의, 젠더박스)를 직시하고 구조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성과 교차성을 바탕으로 한 성평등교육의 재편을 함께 논의함으로써 모두가 구조의 폭력에서 벗어나 자신을 긍정하고 탐구하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젠더로 구분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요
피곤한 ‘말말말’들에 신경쓰지 않으려다보니 의도치 않게 방관자가 되시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말말말’에 대한 그 피곤함..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관을 하는 것은 구조적인 폭력에 공모하는 것이며,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에 가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상’을 규율하는 구조의 폭력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탐색할 기회조차 박탈하며 ‘정상’으로 살아가기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방관이라는 나를 향한 폭력을 끝내고자 한다면 개입하면 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불편함을 견디며, 나와 연결된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도 해방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모두를 위한 성교육]은 사람들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자존감과 자기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자기방어 훈련과 비폭력대화 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는 모두를 위한 성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스웨덴의 성교육 활동가와의 대담’을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영유아를 포함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성교육의 의무화를 일찍이 시작한 스웨덴의 경우, 이제는 젠더폭력을 넘어 ‘젠더로 구분되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구조적인 변화를 먼저 만들어갔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할 점이 많을 것 같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운동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 우리의 운동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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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중립도, 평화도 아닙니다
“나는 중립이야” “나는 여자 때리지 않아” "나는 페미 아니야" 이런 표현을 사용해보거나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많은 언론을 비롯해, 심화된 갈등이 있는 경우에 ‘중립’을 선언하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며 갑자기 '평화주의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중립도, 평화도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국가 폭력, 자본구조에 의한 폭력, 관습과 문화에 의한 폭력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폭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립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구조의 문제를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하며 개별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하며 진짜 문제를 숨깁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지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를 만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구조적인 폭력은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 냅니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중립’이라 잘못 표현한 방관을 하는 것은 폭력적인 구조가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는 셈이 됩니다.
개인을 탓하거나 공격하는 방식은 문제를 개별적인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진짜 문제인 구조를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젠더이슈'는 구조의 문제이고 국가의 책임이에요
혐오는 '기분나쁜 말'과 같은 감정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억압에 의해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 혐오는 구조에 의한 억압과 폭력이 전제되는 용어죠. 그래서 구조의 변화를 통해서 혐오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팔리는 이슈로 정치를 하고 언론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젠더갈등’이라는 용어는 구조의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의 해방을 상상하는 것을 막습니다.
'젠더갈등'이라는 용어는 진짜 문제의 본질을 숨기고 그저 여성과 남성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젠더문제는 구조의 문제이며 국가의 책임임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말들만 지속할 뿐 구조를 변화시킬 의지가 없어보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으로 억압된 사회에서 이 국가는 제대로된 성교육이나 성평등교육을 해본적이 없습니다. '여자의 뇌' , '남자의 뇌'를 구분하는 국가수준의성교육표준안만 보더라도 여전히 할 의지조차 없어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립’을 외치며 방관하는 것은 이 구조가 유지되는데 기여하는 것이 됩니다.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변화시켜야 할 일입니다. ‘젠더갈등’으로 잘못 명명된 이 문제의 본질인 여러 구조(국가 착취, 노동 착취, 인권보다는 자본, 안전보다는 효율성, 시험주의와 줄세우기, 가족중심의 복지시스템과 돌봄노동의 불인정, 권위주의, 젠더박스)를 직시하고 구조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성과 교차성을 바탕으로 한 성평등교육의 재편을 함께 논의함으로써 모두가 구조의 폭력에서 벗어나 자신을 긍정하고 탐구하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젠더로 구분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요
피곤한 ‘말말말’들에 신경쓰지 않으려다보니 의도치 않게 방관자가 되시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말말말’에 대한 그 피곤함..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관을 하는 것은 구조적인 폭력에 공모하는 것이며,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에 가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상’을 규율하는 구조의 폭력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탐색할 기회조차 박탈하며 ‘정상’으로 살아가기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방관이라는 나를 향한 폭력을 끝내고자 한다면 개입하면 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불편함을 견디며, 나와 연결된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도 해방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모두를 위한 성교육]은 사람들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자존감과 자기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자기방어 훈련과 비폭력대화 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는 모두를 위한 성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스웨덴의 성교육 활동가와의 대담’을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영유아를 포함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성교육의 의무화를 일찍이 시작한 스웨덴의 경우, 이제는 젠더폭력을 넘어 ‘젠더로 구분되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구조적인 변화를 먼저 만들어갔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할 점이 많을 것 같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운동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 우리의 운동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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