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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논평] 젠더에 기반한 폭력으로 인한 살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

20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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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만드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이를 규제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혐오를 통해 더 많은 표를 얻으려 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계속해 누군가의 삶을 폭력으로 물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정치와 경제에 걸친 구조의 문제는 성별이분법적이고 성역할고정관념에 근거하며 이성애 중심적인 불평등한 젠더문화를 유지, 강화시키며 모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다양한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을 가진 동료시민을 낙인하고 배제하고자 했던 이 폭력의 이름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다.

 

지난 2월 4일과 5일, 세상을 달리한 고 조장미(BJ잼미)님과 고 김인혁님 역시 젠더에 기반한 폭력의 피해자다. UN여성차별철폐협약은 성별이분법, 성적지향, 장애 등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가 여성에게 주로 일어나는 폭력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 ‘여성에 대한 젠더에 기반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이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즉 폭력의 원인이되는 젠더구조를 인지하고 교차하는 권력과 차별을 확인함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개념이다. 그러나 2018년 국회는 ‘볼드모트’쯤으로 여기는 ‘젠더’ 용어를 삭제한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으로 통과시켰다. 피해의 결과에만 집중한 이 법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살인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한다.

 

이 사회의 젠더구조에는 ‘정상’의 기준과 규율이 존재한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성기모양(즉 고환유무)에 의해서 성별을 여성이나 남성 둘 중 하나로 정해준다.(지정성별) 지정된 성별에 따라 부여받는 성역할이 있다.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어울리는 성격, 외모, 직업 등에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다.(성역할고정관념) 외부성기 모양과 자신이 인지하는 자신의 성별(성별정체성)은 당연히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시스젠더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사실 외부성기 모양과 자신이 인지하는 자신의 성별정체성은 전혀 상관이 없다. 일치하든 불일치하든 우연이다. 그런데 당연하게 모두가 시스젠더여야 한다고 가정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시스젠더 여성이거나 시스젠더 남성이여야만 한다. 그리고 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남성은 반드시 서로에게 끌려야 한다. 모두가 이성애자일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는 가정이고 기대인 셈이다. 또한 이 사회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정상가족’을 이룰 것을 요구한다. 성과 성욕 그리고 재생산과 가족의 형태까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이런 우리를 획일적인 모습으로 살게 만든다.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모두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별이분법이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 여자답게/남자답게에 따라 정해져 있는 성격 성향 외모 직업 등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 출산을 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항상 가해자 여성은 항상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스젠더 여성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비하 공격하는 사례가 있다. 이성애자 남성이 동성애자 남성을 비하 공격할 수도 있다. 비혼 1인 가구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거만 하고 결혼은 하지 않는다든지 출산을 하지 않는 커플들에 대한 비난도 모든 사람들을 틀에 맞추려고 하는 폭력에 해당된다. 젠더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 비하하며 공격해서 젠더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우리사회 전반을 통해 작동하고 있으며 ‘여자는 ~해야 한다’, ‘남자는 ~해야 한다.’ 등의 일상적인 제재들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처럼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남성으로 지정받은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남성으로 인식(시스젠더)해야 하고, 남성성을 수행(성역할)해야 하며, 여성에게 끌려야(이성애자) 하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정상적인 혹은 바람직한 남성’이 갖추어야 할 외모, 태도, 성격, 목소리, 직업, 소득수준 등을 갖추지 못하면 ‘비정상’으로 낙인되고 있다. ‘너는 정상남성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계집애냐’, ‘게이냐’, ‘트랜스젠더냐’와 같은 말을 한다. 이렇듯 여성과 성소수자는  비하표현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정상적인 남성성’을 수행하며 살아가기위해 노력하는 남성들 또한 키가 크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등 ‘맨박스’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젠더구조에서  여성 또한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해야하고 여성성을 수행해야 하며, 이성애자여야 한다. 이 구조에서 페미니스트는 여성성(목소리 내지 않고 순응하는 등)을 수행하지 않고 불평등한 젠더구조를 바꾸고자 하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모든 존재의 평등을 요구하는 ‘페미니스트’를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우월주의자’라는 식으로 정치적으로도 의도적으로 저급하게 곡해하며 혐오를 선동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다’고 말을했던 고 조장미님은 ‘페미’ 낙인과 폭력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가 없었다.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평등하게 살아남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생존해내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낙인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사이버불링, 사이버렉카의 문제로 인해 ‘온라인폭력방지법’이 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지속되는 토양을 갈아엎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두 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앞서 언급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원안대로 ‘젠더폭력방지기본법’으로 변경하여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대응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포괄적성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젠더와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이는 여자답게, 남자답게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나답게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때 비로소 변화의 시작은 가능하다. 한국사회에서는 성평등교육을 인권의 영역으로, 성교육을 보건의 영역으로 분리하고 있으나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포괄적성교육가이드라인에 따라 성평등교육과 성교육은 인권과 다양성의 관점을 바탕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등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젠더섹슈얼리티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때 자기 자신의 신체와 젠더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고 다른 사람의 신체와 젠더 섹슈얼리티도 인정,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성평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시민이 될 수 있다. 이는 공교육뿐 아니라 시민교육, 평생교육을 통해 모든 시민이 접할 수 있도록 할 때 오늘날 혐오로 얼룩진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포괄적 성교육 기본법’과 같은 이름으로 모두에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성평등, 성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젠더에 기반한 폭력으로 인한 ‘죽임’ 가운데에서도 명명되지 못한 ‘젠더에 기반한 폭력’을 이제는 바로 인지하고 끝내야만 한다.


2022. 2.15.

한국다양성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