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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복지충북] 지켜지지 않은 오래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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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지지 않은 오래된 약속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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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적용되지 못한 인권


반드시 지켜져야 할 오래된 약속이 있다. 70년 전인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선언된 세계인권선언이다.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경험한 뒤에야 반성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이 약속은 오늘날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인권강의를 할 때 이따금씩 세계인권선언문을 활용하곤 한다. 먼저 참여자들과 함께 세계인권선언문을 읽는다. 그리고 30개 조항 중 이제 전혀 걱정 할 필요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한다. 활동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만 주면, 참여자들로부터 질문이 많이 나온다. 보통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으로는 ‘국내로 한정할지 전세계로 생각을 해야 하는지’이다. 때로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준을 설정하게끔 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별로 다른 기준을 정해주기도 한다. 또한 사람에 따라 “모든 사람”의 기준을 다르게 잡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때로는 상당히 많은 조항이 이제는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세모표시’를 많이 하기도 한다. ‘보통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보장되고 있지 않는 권리’를 세모로 표시했다고 한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보통’이라는 것과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국내’와 ‘전 세계’ 모두를 포함하고 인종, 민족, 국적,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나이, 경제력, 고용의 형태, 학력, 병력 등을 모두 고려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타깝게도 30개의 조항 중 어느 하나도 2018년 지금까지도 완벽히 지켜지고 있는 것은 없다는 의견으로 모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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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해야 하는, 확장하고 있는 개념 ‘인권’


인권은 한 마디로 정의(definition) 내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 정도로 간단히 단어의 뜻을 설명 할 수도 있고 그 원칙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분명하게 인권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 문건은 없다. 왜냐하면, 인권은 계속 확장해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인권은 여전히 차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최초의 인권선언문에서 사람을 human이 아닌 내국인이면서 비장애인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man이라 표기했듯이, 인권은 국가에 의해 허락된 시민이면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을 확보한 사람을 중심으로 보장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인종, 민족, 국적,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나이, 경제력, 고용의 형태, 학력, 병력 등에 따라 인권 보장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인권은 오랜 역사 속에서 저항과 지난한 투쟁을 통해 쟁취해온 결과물이다. 여전히 아래서부터는 저항과 투쟁, 위에서부터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인권 개념의 본질에 근거한 제도적 보완과 인권문화의 형성으로 인권은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인권개념을 정립하는데 있어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 또한 인권 개념의 본질에 근거해 포함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인권에 대한 가치를 적어놓은 글들도 당시의 시대상황과 저자들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그래서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해서 포함되지 못했던 상황들과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70년이나 된 오래된 약속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매우 슬프면서도 동시에 세계인권선언문은 오래된 규약인 만큼 보완 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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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문이 담지 못한 성소수자


70년 전 세계인권선언문을 만들었던 당시 미처 고려하지 못해서 포함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가끔 세계인권선언문을 읽고 세계인권선언문도 동성결혼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냐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16조에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남녀”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라고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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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조

1. 성인이 된 남녀는 인종이나 국적,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 남성과 여성은 결혼 시, 결혼 중, 그리고 이혼 시에 서로 똑 같은 권리를 가진다.

2. 결혼은 오직 배우자가 되려는 당사자 간의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에 의해서만 유효하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구성단위이므로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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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제16조 1항에 이렇게 적혀있으니 세계인권선언문은 동성결혼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까? 아니다. 이는 70년 전에는 세계인권선언문을 만든 당시의 사고범위가 미처 성소수자 인권의 영역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조항은 남성과 여성만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인권 보장을 위해 쓰여진 조항이다. 세계인권선언문의 정신과 그간의 성소수자와 관련한 유엔의 지침이나 권고를 살펴볼 때, 세계인권선언문이 보완되는 날이 온다면 16조에는 분명 성소수자들도 비성소수자들과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 명시될 것이 분명하다.


30년이 조금 넘은 1987년에 쓰여진 헌법의 36조를 보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동성커플은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인권의 본질은 외면한채 문자만 그대로 해석하는 오류다. 법상의 문자를 그대로 적용하려는 태도가 아닌 그 법을 만들어내는 시민으로서 인권의 본질에 근거해 문제가 있는 조항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이 제정될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환경이었더라도 오늘날은 다르다. 인권은 그 가치의 본질에 근거해 확장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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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차별금지법제정의 해로 만들자


한국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인종, 민족, 출신국가 등의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성소수자, 장애인,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도 늘고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 중 “일부”가 아닌 “모두”가 안전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정비는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권리가 바로 인권이다. “이상”을 넘어 인권을 “현실”로 앞당기기 위해서 차별금지법제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노력은 2008년부터 시작됐지만 번번히 좌절해야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첫 번째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 인권, 다양성을 침해하는 폭력적인 표현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폭력이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주어지며 허용된다. 오히려 차별금지법은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법이다. 두 번째로는 차별금지법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될 까봐 두렵다는 반응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을 통해 처벌을 받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처벌은 차별금지법의 주 목적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교육과 예방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며 국가의 반차별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자신이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불편하게만 여겼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는 자신의 Comfort Zone(편안함을 느끼는 영역)에서 한 걸음 내디뎌 밖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들이 무엇인지 직면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수반될 때 타인에 대한 이해, 인정, 공감도 시작될 수 있다. 이 과정 중에 불편한 느낌은 필수적이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이 인류의 진보이다. 2019년을 차별금지법제정의 해로 만들면 좋겠다. 차별금지법제정으로 더 이상 사회적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당하거나 혐오표현을 듣는 사람이 없는 한국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포함을 통해 새로운 다양성 존중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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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충북 93호 (2018년 12월) 

#인권교실 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