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포함하는 성교육 - 낡은 성교육의 현실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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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교육의 현실]
자신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한 인간으로서 갖는 존엄과 권리를 인지하고, 자신의 특권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인권교육을 비롯한 성교육과 성평등교육의 첫걸음이다. 자신이 어떠한 지정성별(태어날 때 성기 모양에 의해서 부여받는 성별)을 가지고 있든 어떠한 성정체성, 성지향을 가지고 있든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자신과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이나 사회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낡은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일부 성교육, 성평등교육, 인권교육의 담당자들은 강사에게 종종 난감한 요청을 해오곤 한다.
이미 다양한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의 성관계의 첫 경험 시기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학교에서 기존의 낡은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청소년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폭력적인 섹스를 배우고 있다. 포르노를 통해 배우는 섹스에는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는 경우는 없으며, 상대가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더라도‘밀당’으로 받아들이는 등 강간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한다. 이는 강간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강간하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한다. 포괄적이고 현실에 맞는 성교육을 통해 자신의 성적욕구에 앞서 모든 사람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우선하며 강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마땅하고 중요함에도, 아직까지도 교육현장에서 실행에 어려움에 부딪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첫 번째 예로, 여전히 성교육을 요청하면서 콘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담당자들이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청소년 시기에는 성관계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콘돔 사용을 교육하게 되면 콘돔을 사용하며 성관계를 하라는 뜻이기 때문에’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콘돔을 사용하여 원하지 않는 임신과 성병을 예방하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교육을 담당자 개인의 부적절한 판단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콘돔 교육은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1980년도에 만들어진 조작된 낙태 영상을 성교육을 목적으로 보여주는 학교와 담당자가 있는 것이 성교육 현장의 현실이다.
두 번째 예로는, 성평등 교육을 요청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담당자들도 있다. 입장을 들어보니‘청소년기는 흔들리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배우면 성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시스젠더 헤테로(자신이 인지하는 성별과 지정성별이 일치하며 이성애자)가 인권교육을 들었다고 해서 성소수자가 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자신 혹은 타인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그것을 이유로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편견과 혐오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교육을 거부하는 담당자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보이지 않는 존재’를 계속 억압하는 셈이다. 성소수자의 인구 대비 비율에 대한 통계 결과들을 종합해 보수적으로 잡아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5%정도의 성소수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담당자의 무지와 막연한 불안감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평등교육을 하며 페미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담당자들은 ‘교육 내용에 불만이 있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민원전화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매우 골치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오히려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온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익히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들이 부지기수다. 이는 학내 성별갈등마저 조장하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성평등교육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학교와 담당자는 그런 민원전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중요 가치를 배울 학습권마저 침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로는, 인권교육을 요청하면서 ‘인권은 좋지만 학생들이 저항심이 강해지거나 말을 듣지 않게 만들지는 말아달라’고 하는 담당자들도 있다. 인권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에 대해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고 정확한 정보를 분별하여 수용할 수 있으며,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가지며, 차별과 억압에 동참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타인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적 시민이 되는 과정임에도, 이와 반대되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교사 개개인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 많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대학 입시가 목적인‘교육 시스템’내에서는 자신의 교육 철학을 펼칠 수가 없다. 한 명의 교사가 약 3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형태의‘교실 시스템’은 군대와 비슷한데, 이는 교사들에게 컨트롤이 용이한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군대의 방식’을 차용하게 만든다.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가만히 앉아서 듣고 암기해야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는 교실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체벌 등의 면에서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학교의 구조가 바뀌지 않아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학생을 상대해야하는 교사의 현실로 하여금‘순종하는 학생’이 필요한 현실은 오늘날 학교 시스템의 인권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이처럼 성교육, 성평등교육, 인권교육의 요청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모든 학생 개개인을 스스로의 신체와 삶에 대한 모든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통제와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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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나라]
정부는 ‘인권’을 앵무새처럼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책이 마련되고 실행되는 과정에 인권은 실종되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무혐의, 무죄 또는 죄질에 비해 매우 가벼운 형벌이 선고되는데 그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관련 법령에 대한 제도적 미비는 입법부의 무능을, 이를 이유로 무책임한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는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 현실 자체가 충분히 ‘비교육적’이다. 이 사회는 성폭력을 문화적 그리고 제도적, 법적으로 용인해준다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게 하는 촘촘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인권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인 <차별금지법>조차 없다. 2007년에 논의가 시작되었고 UN에서도 여러 차례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현실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진된 교육정책에서도 ‘비교육적’으로 인권이 실종된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정권이었던 2015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만 해도 정부가 앞장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재의 정권에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것은 이 정권조차 여전히 이 정책에 대해 반성적인 입장을 내놓지도, 폐기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은 약 6억의 예산을 들여 교육부가 만들고 전국의 초중고 학교의 보건교사들에게 보낸 국가가 정한‘성교육 가이드라인’이다. 그런데 이 표준안은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성별이분법, 성역할 고정관념,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남자의 뇌’와‘여자의 뇌’가 다르다고 가르친다든지‘안전한 옷차림과 그렇지 않은 옷차림’을 구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성폭력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비난하게 만드는 ‘피해자 유발론’, 청소년 성문화 현실을 무시하는 ‘금욕주의’의 강조는 물론 청소년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가족의 형태/장애/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에 대한 배제 등 비인권적, 비전문적, 성차별적, 시대착오적, 편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성교육 표준안은 수많은 인권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성교육단체 등의 질타와 민원을 받아왔지만 정권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이 바뀐 지금까지도 폐기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 표준안을 다운받을 수 없도록 막아놓기만 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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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의 관련 부서 신설부터]
여성가족부는 한국사회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정책 주무부처임에도 성평등 교육 관련 정책 전담 부서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폭력예방교육과를 성평등교육과로 개편하여 성평등 교육 관련 정책 전반에 대한 기획, 조정, 협력 등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부는 한국사회의 교육 전체를 총괄하는 주무부처임에도 성평등 교육이나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 교육부가 만든 국가수준의학교성교육표준안을 만든 곳도‘보건’업무를 담당하게 돼있는 학생건강정책과다. 교육부와 각 지방교육청에도 성평등 교육 정책 전담조직을 설치해서 현재는 양성평등교육, 폭력예방교육, 성교육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통합과정으로 개편하고 인권과 성평등의 관점에 기초한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는‘성평등교육’이라는 한 과목을 만든다거나 특강의 형태로 만들어 1년에 한 번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교육 전체에 성평등의 가치와 철학으로 녹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을 양성하는 사범대학과 교대 그리고 유아 및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종사자(사회복지사,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등)와 의료인, 경찰, 법조인, 종교인 등의 자격 과정에 성평등 교육을 필수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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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에 대한 주체적 권리를 찾는 교육]
성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공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진로와 삶에 대해 사회가 정해놓은‘정상, 정답, 보편’이라는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며 살 수 있도록 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별과 억압, 혐오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직면하고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논할 때 흔히 처벌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게 되기 쉽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에서 절대 허용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가 이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문제와 방안, 즉 교육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함으로써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모두를 포함하는 성교육 - 낡은 성교육의 현실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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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교육의 현실]
자신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한 인간으로서 갖는 존엄과 권리를 인지하고, 자신의 특권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인권교육을 비롯한 성교육과 성평등교육의 첫걸음이다. 자신이 어떠한 지정성별(태어날 때 성기 모양에 의해서 부여받는 성별)을 가지고 있든 어떠한 성정체성, 성지향을 가지고 있든 마땅히 존중받아야할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자신과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이나 사회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낡은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일부 성교육, 성평등교육, 인권교육의 담당자들은 강사에게 종종 난감한 요청을 해오곤 한다.
이미 다양한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의 성관계의 첫 경험 시기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학교에서 기존의 낡은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청소년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폭력적인 섹스를 배우고 있다. 포르노를 통해 배우는 섹스에는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는 경우는 없으며, 상대가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더라도‘밀당’으로 받아들이는 등 강간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한다. 이는 강간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강간하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한다. 포괄적이고 현실에 맞는 성교육을 통해 자신의 성적욕구에 앞서 모든 사람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우선하며 강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마땅하고 중요함에도, 아직까지도 교육현장에서 실행에 어려움에 부딪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첫 번째 예로, 여전히 성교육을 요청하면서 콘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담당자들이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청소년 시기에는 성관계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콘돔 사용을 교육하게 되면 콘돔을 사용하며 성관계를 하라는 뜻이기 때문에’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콘돔을 사용하여 원하지 않는 임신과 성병을 예방하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교육을 담당자 개인의 부적절한 판단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콘돔 교육은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1980년도에 만들어진 조작된 낙태 영상을 성교육을 목적으로 보여주는 학교와 담당자가 있는 것이 성교육 현장의 현실이다.
두 번째 예로는, 성평등 교육을 요청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담당자들도 있다. 입장을 들어보니‘청소년기는 흔들리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배우면 성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시스젠더 헤테로(자신이 인지하는 성별과 지정성별이 일치하며 이성애자)가 인권교육을 들었다고 해서 성소수자가 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자신 혹은 타인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그것을 이유로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편견과 혐오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교육을 거부하는 담당자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보이지 않는 존재’를 계속 억압하는 셈이다. 성소수자의 인구 대비 비율에 대한 통계 결과들을 종합해 보수적으로 잡아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5%정도의 성소수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담당자의 무지와 막연한 불안감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평등교육을 하며 페미니즘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담당자들은 ‘교육 내용에 불만이 있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민원전화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매우 골치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오히려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온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익히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들이 부지기수다. 이는 학내 성별갈등마저 조장하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성평등교육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학교와 담당자는 그런 민원전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중요 가치를 배울 학습권마저 침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로는, 인권교육을 요청하면서 ‘인권은 좋지만 학생들이 저항심이 강해지거나 말을 듣지 않게 만들지는 말아달라’고 하는 담당자들도 있다. 인권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에 대해 비판적인 사유를 할 수 있고 정확한 정보를 분별하여 수용할 수 있으며,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가지며, 차별과 억압에 동참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타인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적 시민이 되는 과정임에도, 이와 반대되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교사 개개인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 많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대학 입시가 목적인‘교육 시스템’내에서는 자신의 교육 철학을 펼칠 수가 없다. 한 명의 교사가 약 3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형태의‘교실 시스템’은 군대와 비슷한데, 이는 교사들에게 컨트롤이 용이한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군대의 방식’을 차용하게 만든다.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가만히 앉아서 듣고 암기해야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는 교실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체벌 등의 면에서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학교의 구조가 바뀌지 않아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학생을 상대해야하는 교사의 현실로 하여금‘순종하는 학생’이 필요한 현실은 오늘날 학교 시스템의 인권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이처럼 성교육, 성평등교육, 인권교육의 요청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모든 학생 개개인을 스스로의 신체와 삶에 대한 모든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통제와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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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나라]
정부는 ‘인권’을 앵무새처럼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책이 마련되고 실행되는 과정에 인권은 실종되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무혐의, 무죄 또는 죄질에 비해 매우 가벼운 형벌이 선고되는데 그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관련 법령에 대한 제도적 미비는 입법부의 무능을, 이를 이유로 무책임한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는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 현실 자체가 충분히 ‘비교육적’이다. 이 사회는 성폭력을 문화적 그리고 제도적, 법적으로 용인해준다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게 하는 촘촘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인권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인 <차별금지법>조차 없다. 2007년에 논의가 시작되었고 UN에서도 여러 차례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현실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진된 교육정책에서도 ‘비교육적’으로 인권이 실종된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정권이었던 2015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만 해도 정부가 앞장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재의 정권에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것은 이 정권조차 여전히 이 정책에 대해 반성적인 입장을 내놓지도, 폐기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수준의 학교성교육표준안’은 약 6억의 예산을 들여 교육부가 만들고 전국의 초중고 학교의 보건교사들에게 보낸 국가가 정한‘성교육 가이드라인’이다. 그런데 이 표준안은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성별이분법, 성역할 고정관념,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남자의 뇌’와‘여자의 뇌’가 다르다고 가르친다든지‘안전한 옷차림과 그렇지 않은 옷차림’을 구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성폭력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비난하게 만드는 ‘피해자 유발론’, 청소년 성문화 현실을 무시하는 ‘금욕주의’의 강조는 물론 청소년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가족의 형태/장애/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에 대한 배제 등 비인권적, 비전문적, 성차별적, 시대착오적, 편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성교육 표준안은 수많은 인권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성교육단체 등의 질타와 민원을 받아왔지만 정권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이 바뀐 지금까지도 폐기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 표준안을 다운받을 수 없도록 막아놓기만 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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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의 관련 부서 신설부터]
여성가족부는 한국사회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정책 주무부처임에도 성평등 교육 관련 정책 전담 부서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폭력예방교육과를 성평등교육과로 개편하여 성평등 교육 관련 정책 전반에 대한 기획, 조정, 협력 등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부는 한국사회의 교육 전체를 총괄하는 주무부처임에도 성평등 교육이나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 교육부가 만든 국가수준의학교성교육표준안을 만든 곳도‘보건’업무를 담당하게 돼있는 학생건강정책과다. 교육부와 각 지방교육청에도 성평등 교육 정책 전담조직을 설치해서 현재는 양성평등교육, 폭력예방교육, 성교육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통합과정으로 개편하고 인권과 성평등의 관점에 기초한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는‘성평등교육’이라는 한 과목을 만든다거나 특강의 형태로 만들어 1년에 한 번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교육 전체에 성평등의 가치와 철학으로 녹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을 양성하는 사범대학과 교대 그리고 유아 및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종사자(사회복지사,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등)와 의료인, 경찰, 법조인, 종교인 등의 자격 과정에 성평등 교육을 필수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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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에 대한 주체적 권리를 찾는 교육]
성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공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진로와 삶에 대해 사회가 정해놓은‘정상, 정답, 보편’이라는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며 살 수 있도록 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별과 억압, 혐오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직면하고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논할 때 흔히 처벌 중심적으로만 생각하게 되기 쉽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에서 절대 허용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가 이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문제와 방안, 즉 교육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함으로써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